하늘 아래, 탁 트인 서피랑 공원을 시작으로 시선을 좀 더 아래로 내리면, 옹기종기 다닥다닥 작고 예쁜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항남동과 중앙동이 어우러진 마을 아래 바다와 만난 곳, 강구안항구까지 한눈에 넣어보려 작은 눈을 애써 크게 떠보았다. 광복 이후 일본식 지명을 없애면서 길야정을 항남동으로 고쳤고, 1995년 통영군과 충무시가 통합하여 통영시가 되면서 지금의 통영시 항남동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가장 번화하고 부유한 동네였던 이 곳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일본식 건축물을 통해 그 때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강구
가을하늘 물들이는 주황빛 노을의 색 ‘통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가끔씩 인터뷰를 할 때면 듣게 되는 질문이다.‘통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서피랑이요. 서피랑 서포루에 올라서면 보이는 풍경이 저는 너무 좋아요.’여객선터미널, 멈춰진 조선소, 미륵산, 그리고 저 멀리 통영대교까지, 서포루에 올라서면 모두를 한눈에 품을 수 있어 좋다. 도시와 사람 그 속의 일상이 서글프고 아파도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기분이 드는 이 곳.이른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서포루에 오른 적이 있다. 99계단을 하나씩 밟아 오르다 45계단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푹푹 꺼지는 모래사장, 신발 사이사이로 들어가는 모래, 밤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바삭한 모래 위 해변에 앉아 동그란 보름달 내려앉은 수면 위를 바라보면, 일렁이는 달빛물결에 나는 또 멍하니 가슴이 따뜻해진다.답답하고 복잡한 일이 있을 때면 송정 바닷가, 작은 상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샀다. 크고 작은 파도의 울림을 들으며 한 모금 쭉 마시고 나면 오늘의 근심은 이내 사라지고 나는 ‘그만 잊자.’ 했다. 통영의 밤바다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난무한 번잡한 도시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침의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다가 좋다 대답했던 어린 소녀는 마흔이 된 지금도 여전히, 바다가 좋다.탈탈탈 돌아가는 오래된 선풍기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어느 여름날, 엄마와 나는 밤의 해운대, 백사장 위의 돗자리에 누웠다. 간질거리듯 시원한 바닷바람은 그날의 우리를 위로했고 여름밤은 그렇게 또, 지나갔다.나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2009년 겨울, 통영으로 오기 전까지 30년, 단 한 번도 그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해운대와 광안리, 송도와 다대포, 송정과 일광까지 부산의 바다는 언제라도 쉬이 찾아 기댈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