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의 행복

영화 ‘달콤한 인생’ 포스터
영화 ‘달콤한 인생’ 포스터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이처럼 기온이 내려갈 때의 가장 좋은 건강법에 온천욕이 있다.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다. 더욱이 그 온천수가 전국적으로도 소문난 곳이라고 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오래전부터 충남 아산의 온양온천과 대전광역시의 유성온천이 온천욕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얼마 전 참 오랜만에‘50년 동지들’을 만났다. 내 나이 10대 말에 온양온천에서 호텔리어로 근무했다.

당시 인연을 맺은 같은 업종의 친구와 선배들이었다. 세월은 우리들에게서도 젊음과 열정까지 노략질해갔다. 하지만 피부 하나만큼은 여전히 건재해 보였다. 당시 조석으로 온천욕을 담보삼아 피부를 가꾼 덕분이라며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동네목욕탕을 찾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술을 사랑하는 민족이다 보니 늘 숙취와 싸운다. 숙취 퇴치엔 목욕이 제일이다. 덕분에 이따금 아들이 등을 밀어주는 호사까지 누렸다.

당시 아들은 대학생이었다. [달콤한 인생]은 지난 2005년에 개봉한 영화다. 이 영화의 압권은 지금도 명대사로 회자되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가 아닐까 싶다. 조폭 보스로 나온 배우 김영철이 부하인 선우(이병헌)에게 한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와서 목욕탕에 간 적이 있다. 아내는 달랑 목욕값만 줬다. 그래서 대중탕을 나오면서 근처의 맛나고 시원한 속풀이 음식으로 소문난 올갱이(다슬기) 해장국집에 들를 수 없었다.

집에 들어서면서 그런 불만을 표출하려 괜스레 구시렁거렸다. 아내가 의아스럽다는 듯 물었다. “목욕탕에서 누구랑 싸우기라도 했어?”나는 대뜸 폭발했다. “넌 나에게 목욕 값만 줬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던 아내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월은 강물 같아서 그때 대학생이었던 아들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지 오래다. 지난 주말, 아들과 딸네가 모처럼 가족 동행으로 집에 왔다.

유성의 모 쇼핑몰로 자리를 옮겼다. 망중한을 즐기며 손자 손녀와도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리던 아들이 말했다.

“겨울이 오면 우리 가족 모두 온천욕 가요.”혹자는 온천욕 하면 일본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소문난 이른바 ‘온천의 성지’는 부지기수다. 어디가 되었든 가족과 함께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넉넉하다.

더욱이 골비단지(몹시 허약하여 늘 병으로 골골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에 다름 아닌 이 할아버지의 등을 손자가 시원하게 벅벅 밀어준다는 건 분명 늘그막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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