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껴안아야
추석을 앞두고 흉사(凶事)가 먼저 찾아왔다. 사촌 동생이 그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었다. 하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는 게 인생이다.
부음을 받고 서둘러 대전복합터미널로 갔다. 한가위 연휴답게 버스 노선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평소엔 즉시 발차(發車)에 승객이 반도 안 차는 버스가, 그것도 2시간이나 기다려서야 겨우 탑승했다.
다른 방면으로의 버스(고속.시외)는 아예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도 목도했다. 꽉 막힌 차로로 인해 대전복합터미널로의 입차(入車)가 원천 봉쇄된 듯 보였다. 하기야 얼추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추석 명절이니 오죽하랴만.
고인이 안치된 병원에 들어서니 추석 연휴임에도 제법 많은 문상객들이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집에서부터 입고 간 검은 양복과 검은색 넥타이였기에 즉시 상주석으로 옮겼다. 고인에게 먼저 절을 한 뒤 문상객을 맞았다.
이튿날 발인과 화장, 유골의 봉안까지 마치니 오후 6시가 훌쩍 넘었다. 아산시외버스터미널로 달려갔으나 모든 버스 노선이 올스톱된 상태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전국적 차량정체 탓이니 어쩔 수 없었다.
온양온천역으로 간 뒤 전철에 올랐다. 아산역에서 하차하여 천안아산역에서 대전행 KTX를 가까스로 구입했다. 귀가하자마자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해일로 몰려왔다. 이튿날은 마침내 설날.
오매불망 기다렸던 아들네가 방문했다. 수술 후 더욱 골비단지(몹시 허약하여 늘 병으로 골골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였던 아내까지 얼굴에 단박 화색이 돌았다. 오전에 수통골까지 찾아가서 예약한 누룽지 오리백숙을 가져와 점심을 먹었다.
맛있게 잘 먹는 손자의 모습은 아내와 나에게 연신 함박웃음을 만들었다. 식사를 마친 뒤 가양동 처가에 가니 장모님께서 내 손자를 더 반기셨다. 이어선 유성의 자동차 카페 카레이지를 찾았다.
각종의 진귀한 차량을 보자 평소 차 장난감 마니아인 손자는 더욱 신이 났다. 거기서 나와 한밭수목원으로 이동했다. 한가위 연휴답게 많은 사람이 와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가족 자전거를 대여하여 엑스포시민공원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한밭수목원의 화룡점정인 분수와 팔각정 역시 인파로 북적였다. 아들이 예약한 열차표에 맞추자면 서둘러 저녁을 먹어야 했다.
주변에 문을 연 식당이 없어 용전동까지 갔다. 비싼 한우를 먹었는데 셈까지 아들이 치렀다. 아들네를 배웅하고 집까지 걷기로 했다. 아내에게 물었다. “모처럼 손자를 껴안아보니 감회가 어때?”
“너무 좋았어!” 추석에는 가족과 만난다. 그래서 더 좋다. 그런데 가족은, 특히 손자라고 하면 껴안고 체온까지 느껴야 실정법 위반이 안 된다. 하여간 올 추석은 희비쌍곡선(喜悲雙曲線)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