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나나 똑같은 인생

목화 꽃도 어느새 시들어가고 있다
목화 꽃도 어느새 시들어가고 있다

= “목화 따는 아가씨 찔레꽃 필 때 복사꽃 피는 포구 십리포구로 임 마중 가던 순이야 뱃고동이 울 때마다 열아홉 설레이는 꽃피는 가슴 강바람 산바람에 검은 머리 날리며 목화 따던 아가씨~” =

가수 남진이 지난 1971년에 발표하여 히트한 [목화 아가씨]다. 이 노래가 발표된 지도 어언 50년이 넘었다. 목화(木花)는 아욱과의 한해살이풀이다. 높이는 60cm 정도인데 잔털이 있고 곧게 자라면서 가지가 갈라진다.

가을에 흰색 또는 누런색의 오판화(五瓣花)가 잎겨드랑이에서 핀다. 열매는 삭과(蒴果)를 맺으며 씨는 검은색이고 겉껍질 세포가 흰색의 털 모양 섬유로 변한다. 솜털을 모아서 솜을 만들고 씨는 기름을 짠다.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식물이다.

근무하는 곳에 지금 한창 목화가 성장하고 있다. 남진의 히트곡 [목화 아가씨]가 던지는 화두는 ‘강바람 산바람에 검은 머리 날리며 꽃피는 가슴으로 설레이는 열아홉 처자(處子)’ 순이가 방점이다.

세월을 억지로 되돌릴 순 없다. 다만 정서적으론 얼마든지 가능하다. 열아홉 무렵부터 지금의 아내와 열애에 빠져들었다.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모정(母情)까지 그녀는 충분히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그녀가 나를 만나러 우리 동네에 들어서면 저 멀리 초입부터 번쩍번쩍 광채가 났다. 잘 빠진 몸매에 짧은 미니스커트까지 인기몰이였다.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제아무리 고왔던 꽃도 결국엔 화무십일홍이다
제아무리 고왔던 꽃도 결국엔 화무십일홍이다

“저 아리따운 아가씨가 경석이 애인이래.” “와~ 정말 멋지다!” 어떤 젊은이는 그렇게 멋진 내 애인을 연신 뒤돌아보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그만 시궁창에 빠지기도 했다.

그녀는 결국 나의 아내가 되었고 아들과 딸까지 선물했다. 아내는 오늘도 병원에 간다. 며칠 전 촬영한 MRI 결과와 그로 인해 발견한 증세의 치료를 위한 목적이다.

세월엔 장사가 없다더니 그 시절엔 목화 꽃보다 고왔던 아내도 이젠 세월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이는 비단 아내뿐 아니다. 같이 늙어가는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이제는 힘든 일을 조금이라도 하면 육체가 감당을 못한다.

주량도 퍽 줄었다. 빨리 취하며 이튿날에도 힘이 많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간 야속한 세월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진시몬의 히트곡 [너나 나나] 가사처럼 ‘너나 나나 나나 너나 똑같은 인생’으로 늙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앞으로도 ‘지지고 볶고 살아보아도’ 불변할 것은, 아무리 고삭부리 아내일지언정 나의 눈에는 아내가 여전히 그 시절 ‘열아홉 목화 따던 아가씨’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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