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다시 시작하는 행동력을 통해 가치가 빛날 수 있는 것 후배들이여! 실패는 적게 하라

(전)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정책위 부의장 김성찬
(전)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정책위 부의장 김성찬

"네가 실수를 만드는 게 아니야. 실수가 널 만들지.
실수는 널 더 똑똑하게 하고, 널 더 강하게 하고, 널 더 자립적으로 만들어."
‘해리엇’은 자신의 글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꿈을 펼치기 주저하는 ‘앤’에게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은퇴한 광고 에이전시 보스 ‘해리엇’은 자신의 사망 기사를 미리 만들기 위해 사망 기사 전문기자인 ‘앤’을 고용한다. ‘해리엇’은 완벽한 사망 기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항으로 ‘고인은 동료들의 칭찬을 받아야 하고, 가족의 사랑을 받아야 하며, 누군가에게 우연히 영향을 끼쳐야 하고, 자신만의 와일드카드가 있어야 한다’는 4가지 요소를 같이 찾자는 제안을 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는 젊은 시절,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성공한 커리어를 누렸지만 자신의 주변을 소흘히 했던 주인공의 허전함을 위트 있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삶의 조언을 담은 의미 있는 대사가 많이 보인다. 약 5년 전에 개봉한 영화임에도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성취에 대한 어려움을 주인공의 단절된 성격에 투영하여 보여준다. ‘실패’와 ‘극복’을 거치면 성공이라는 공식을 영화 전반에서 꾸준하게 제시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 보면 실패를 피하려고만 애쓰며 살아왔다. '왜 꼭 실패를 하며 성공을 해야 돼?'라는 생각으로 최소한의 실패와 최대한의 성취를 추구했다. 그것은 실패에 대한 '패배의식'보다 재기에 대한 동력상실이라는 '두려움'때문이었다. 그것은 결과에 대한 잘못된 예단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삶은 실패라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배운다. 그래서 모두 실패를 소중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얻고, 배움에서 끝내면 그 실패는 '실패한 또 하나의 실패'가 된다.

"앞으로 크게 자빠져! 실패해.
어마어마하게 실패해.
실패해야 배울 수 있어.
실패해야 사는 거야.
네 인생은 시작도 안 했어."

이 영화는 '실패'라는 결과 보다 과정을 통해 다시 시작하는 '행동'을 말하고 있다.

실패는 그것을 통해 다시 시작하는 '행동력'을 통해서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다.
행동력만이 또 다른 실패를 낳고 낳으며 성공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성공담을 통해 듣는 '실패'는 얼핏 ‘나도 저들처럼 실패를 통해 성공에 다다를 수 있어!’라는 희망과 꿈을 갖게 해 준다. 시선을 조금 틀어서 보면 실패가 성공의 담보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성공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실패’가 성공의 자양분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실패’라는 레토릭을 너무 당연시하고 미화하는 듯한 모습들은 나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실패를 거듭하며 다시 일어서 성공하는 경우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쉽지도, 많지도 않다.

다각적으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변곡점에서 부단히 꿈을 좇는 후배들에게 그래도 실패는 적게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실패가 꼭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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