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저널리스트대학교육원 일본 교수회 부학장/자르끄르 요리연구소 대표

 (和)의 정신, 비기기를 선호하는 일본인

한일문화교류학 강신영 교수
한일문화교류학 강신영 교수

2022년 11월 중동 카타르에서 FIFA가 주관하는 월드컵대회가 개최되었는데 대회개막을 앞두고 일본 내에서는 16강 진출이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이 속한 E조는 월드컵 4회 우승을 달성한 독일,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국 스페인에다 남미의 강호 코스타리카가 속해 있어 국가별 전력을 고려하면 결승토너먼트 진출이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일본이 첫 번째 경기인 독일과의 대결에서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자, 일본열도는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아사히· 요미우리신문 등 유력 언론들은 1면 머리기사에서「사무라이 저팬」이 강력한 우승 후보인 전차군단을 물리치고 도하의 기적을 연출했다고 대서특필했고, 지상파 방송들도 연일 현지 분위기와 승리 장면을 되풀이해 내보내면서 마치 16강 진출을 기정사실로 하는 듯한 흥분에 들떠있었다. 이같이 월드컵처럼 온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국가 간에 자존심을 건 승부가 걸린 중요한 경기에서는「사무라이 저팬」을 외치며 승리를 기원하는 일본인들이지만 국내에서 개최되는 스포츠 경기일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학교, 직장, 커뮤니티 등에서 친선 목적으로 축구, 야구, 배구 등 대중적인 스포츠 종목을 선정해 경기하게 되는데 일본인들은 승부에 집착해 이기는데 진력하기보다는 비기는 것을 오히려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외국인인 필자의 눈으로 볼 때는 승부에 강하게 집착하는 모습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였다. 우리의 경우는 우스갯소리로 가위 바위 보개임을 하더라도 이겨야 하고 비록 친선 목적의 경기일지라도 반드시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비길 경우에는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남게 되는데 일본인들은 의외로 무승부로 끝나는 것을 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교포 지인으로부터 이러한 일본인들의 성향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재일 교포는 일본인 지인들과 가끔 골프 모임을 가졌는데 일본인들은 게임의 승부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스코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휴일 지인들과 기분 전환 겸 오락으로 반나절 즐긴다는 자세로 골프에 임하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승부 근성이 강해 4명이 플레이하는 골프일지라도 반드시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래서 친구 혹은 동료 간에 골프할 경우에도 첫 번째 홀은 실제 타수에 상관없이 가장 좋은 스코어를 기록한 동반 플레이어에 맞추어「올파」혹은「올보기」등으로 스코어를 기록하는 등 타수에 무척 신경을 쓴다. 반면 일본에서는 그린에 올린 볼이 홀까지 거리가 짧아 홀인 할 성공 확률이 높을 경우에도 컨시드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볼이 들어갈 때까지 카운트한다. 그러다 보니 홀에서 1미터 내외의 짧은 거리일지라도 홀인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 두세 타 오버는 기본이고 한홀에서 트리플 보기 혹은 더블스코어도 다반사로 나온다. 한국인들은 일본에서 골프를 치면 한국에서 기록한 스코어보다 평균 10~15타 정도가 더 나오고 심할 경우에는 18홀 기준 전체타수가 130타를 넘을 때도 있어 약간 당혹스러울 때가 있었다. 일본처럼 적당히 봐주는 것 없이 정상적으로 타수를 기록한다면 130타 이상 스코어도 당연할 것이나 한국에서는 후하게 타수를 기록하다 보니 골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초보자들도 100타 이하 스코어가 가능한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통상 오전 8시를 전후해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는데 식당에서 가볍게 일본 술(日本酒) 혹은 생맥주를 한잔씩하고 라운딩을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다. 내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소량의 음주도 골프에 방해된다고 생각해 음주를 삼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기 싫어하고 내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최고 스코어를 기록해 1등을 하겠다는 집념이 강한 데 반해 일본인들은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플레이를 느긋하게 즐긴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밥값 내기 등 내기골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일본인들은 내기를 거의 하지 않으며, 한다 해도 재미 삼아 소액에 그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올림픽 메달 색깔에도 일본인들의 성향이 드러난다. 우리를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에게 서포트 라이트와 찬사가 집중되지만,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편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다소 차이가 있다. 물론 일본에서도 금메달을 딴 선수가 더욱 주목받는 것은 마찬가지이긴 하나 은메달, 동메달을 딴 선수들도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 못지않게 평가를 받는다. 일본 국민들은 1등을 차지해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만큼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들에 대해서도 실력을 인정하고 높게 평가해 준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이 승부를 회피하는 성향은 경기종목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는 학교에서 개최하는 운동회의 경우 1등을 가리는 개인 달리기를 하지만 일본에서는 팀워크를 강조하는 릴레이를 많이 한다. 매년 초 일본 전역에서 개최되는 역전마라톤도 혼자서 전 구간을 달려서 누가 1위를 차지하는 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구간별로 나누어 개인이 맡은 구간만을 완주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성향은 개인의 경기 역량보다는 전체의 팀워크와 협력을 강조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인들은 승부를 가리는 것을 꺼리고 이기는 것보다는 비기는 것을 선호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일본인들이 강조하는「와」(和)의 정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본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개「야마토타마시이」(大和魂) 혹은 「와」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와」를 한자어를 풀어쓰면 「벼」(禾)에 「입」(口)라는 뜻으로 밥을 나누어 먹는다를 의미한다. 가족이나 식구처럼 밥을 나누어 먹을 정도로 화합하고 같이 어울리는 존재를 일컫는데 일본인들은 「와」라는 단어에 건국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사면이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에서는 서로가 화합하고 도우면서 살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한다는 세계관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영토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하면 모두가 바다에 떨어져 죽게 된다는 공포심을 안고 있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도 서로 협력하거나 돕고 살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화합을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히 여기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다. 일본 기업이나 학교에서 화합을 강조하는 사훈이나 교훈을 걸어놓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누구 할 것 없이 암묵적으로 수용하는 정서가 화합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일본에서 국가의 틀이 정립되기 이전에 권력 싸움에 지친 사람들이 상호 간의 차이점을 수용하면서 서로가 화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상태에서 생겨난 단어가「와」(和)가 아닌가 추정된다. 고대 일본은 한반도 등 대륙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이 주축이 되어 본격적으로 국가건설을 시작한 야요이시대(弥生時代)를 거쳐 고분시대(古墳時代)에 이르게 되는데 이즈음 야마토(大和)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로 볼 때 「와」(和)는 서기 7~8세기 「닛폰」(日本)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이전에 고대 일본인들이 공동체를 결집하고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했고 이후 일본을 상징하는 특유의 문화로서 전승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인의 「와」 정신은 일상생활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단어는 일본 음식을 「와쇼쿠」 (和食)라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이 명절 등 계기 시 착용하는 전통의상을 「와후쿠」(和服) 라고,  한다. 일본 과자를 「와카시」(和菓子) 라고 하고 다다미가 깔린 방을 「와시츠」(和室) 로 부른다. 이처럼 일상생활 곳곳에 화합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기에 일본인들은 화합 정신을 어기고 이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응징하고 집단에서 따돌림을 하는 특성이 있다. 「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이를 훼손하는 처신을 하면 일본인들은 극도로 경멸하거나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다. 「와」 정신을 해치는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심하다할 정도로 배척하고 경원시하는 것이 일본 사회의 철칙이다. 예를 들어 지역공동체의 규율을 위반하는 자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치 엄중한 제재가 가해지는데 에도시대의 「무라하치부」(村八分) 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촌락의 결정 사항을 위반한 자에 대해 화재나 장례를 제외하고는 협력하지 못하도록 제재하였다. 이렇게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촌민은 상호 협력하여 촌락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촌락 공동체 내에서 「와」의 정신을 해치거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에 대해 집단으로 이지메를 가한 것인데 지금도 이러한 흔적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예를 들어 쓰레기 분리수거 원칙을 어기고 규정에 맞지 않게 쓰레기를 버릴 경우에는 아파트 관리원이 붉은 매직펜으로 규정 위반 사항을 명기해 되가져 가도록 경고한다. 이럴 경우 누가 이런 염치없는 행동을 했는지 아파트 주민들은 대략 알게 되므로 규칙을 어긴 주민은 상당한 곤경에 처하고 결과적으로 「와」의 정신을 어긴 주민으로 지탄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원정 관람을 위해 경기장을 찾아온 일본인들은 경기 종료 후 응원석 주변의 쓰레기를 말끔히 청소함으로써 세계 각국 매스컴의 찬사를 받았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행동은 국내에서는 물론 외국에 나가서도 비난을 받지 않도록 처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발현된 것이 아닐까 한다.

한편, 일본인들의 무승부 선호 성향이 영토교섭에서 나타난 사례가 있다. 일본과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홋카이도(北海道) 북쪽 인근에 위치한 북방영토(北方領土) 반환을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해 오고 있다. 북방영토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잘 알고 있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무승부라는 의미의 「히키와케」(引分) 라는 단어를 사용해 일본인들의 마음을 파고들려고 했다. 2012년 3월 푸틴은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북방영토 문제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영토 문제도 유도처럼「히키와케」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고 발언했다. 협상도 유도 경기와 마찬가지로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것보다 「히키와케」처럼 양국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무승부도 의미가 있다는 점을 내세워 교묘하게 일본 국민들의 마음속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유도 고단자로 알려진 푸틴이 유도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역이용해 「히키와케」를 빗대어 북방영토 교섭 의사를 은연중에 내비쳐 일본의 의표를 찌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인들이 무승부를 선호하는 것은 이기는 것을 싫어한다기보다는 굳이 상대방을 물리쳐 기분 나쁘게 하기보다는 비김으로써 서로가 기분을 상하지 않고 화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할 것이다. / 한국전통음식학술연구소&자르끄르요리연구소 강신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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