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저널리스트대학교육원 일본 교수회 부학장 강신영/ 한일 교류학 교수

한국저널리스트대학교육원 일본 교수회 강신영 부학장 / 한일 교류학 교수
한국저널리스트대학교육원 일본 교수회 강신영 부학장 / 한일 교류학 교수

(16화) 사무라이 정신으로 왜곡되는 일본인들의 자살문화

2007년 5월 마쓰오카 도시카쓰(松岡 利勝) 일본 농림수산상이 정치헌금 스캔들과 관련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직 대신이 전후 최초로 자살함에 따라 매스컴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등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 愼太郞) 도쿄도 지사는 “그는 역시 사무라이였다”고 그의 죽음을 평가했다. 또한 그의 고향인 구마모토현(熊本懸)에서 취재에 응한 시민들의 반응도 “그는 사나이였다”며 마치 자살을 미화하는 듯한 인터뷰 내용도 있었다. 이에서 보듯이 사회 저명인사의 자살을 평가하는 일본사회의 반응은 다른 나라들과는 사뭇 차이가 있음을 알수 있다. 이는 마치 전쟁에서 패한 사무라이가 죽음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통해 자신의 불명예를 씻는다는 사무라이식 사고방식이 깔려있다 할 것이다. 사무라이는 수치를 당하는 것을 가장 불명예한 것으로 여겼는데 사무라이정신에 지배당하고 있는 일본사회에서 일반시민들도 예외일수는 없다. 대개 일본인들은 자신이 감추어온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나 체면이 땅에 떨어질 경우 주변사람들의 얼굴을 볼수 없고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수치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자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사무라이들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 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에도시대(江戶時代)에는 사무라이들에게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특권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백성들에게 철저히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하고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이에 따라 사무라이들은 스스로 반드시 지켜야할 규약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규율을 어겨서는 안된다」, 「백성들에게 손가락 받을 짓을 해서는 안된다」, 「규율을 어길시에는 할복할 것」등 엄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종의 서양에서 사회지도층 인사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책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일본판이라고 할만하다. 

 

이처럼 지배층에게는 높은 윤리적, 도덕적 의무를 부과하고 하층민에게는 충성과 의리를 강조하는 풍조는 백성들이 좋아하는 가부키 연극에도 나타나고 있다. 1701년 발생한 실제사건을 모티브로해서 무대에 올린 「츄우신구라」(忠臣藏)가 그것이다. 극중에서 억울하게 주군을 잃은 47명의 사무라이들은 오랜 준비 끝에 장렬하게 주군의 원수를 갚은후 막부의 명령으로 집단할복 하게 되는데 이러한 비장한 사무라이의 복수극은 지금도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사무라이식 충성과 의리를 테마로 한 영화, 드라마는 여전히 안방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자칫 일본인들의 뇌리속에 사무라이식 자살이 미화될 수도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의 상사를 보호하기위해 자살을 선택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전후 일본정치사에 최대 오직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는 록히드사건과 관련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 角榮) 전 총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운전수가 자살한 것은 유명하다. 1989년 리크루트 스캔들 당시에도 다케시타 노보루(竹下 登) 총리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비서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 있었다. 이들 사건은「츄우신구라」에 등장하는 사무라이들처럼 자신이 섬기던 주군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던졌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한편, 일본인들이 사무라이식 죽음을 택하는 것은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이 한순간에 부정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주변사람들로 부터 비난당할 것이 우려되는 경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모든 사람들은 죽으면 「호도케사마」(仏様)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식으로 하자면 성불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죽으면 죄도 없어진다’는 속담도 있는데 생전에 죄가 있는 사람도 죽으면 죄를 물을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유독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많다. 1999년 5월 파산한 일본장기신용은행의 전 부행장이 자살한데 이어 얼마지나지 않아 오사카 지점장도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자살한 전 부행장은 도쿄지검 특수부가 은행의 비리관련 수사로 주변을 압박해 옴에 따라 자신이 출두할 경우 상사는 물론 부하직원들에게도 피해가 미칠 것을 우려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오사카 지점장도 유사한 이유로 인해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데 두 사건에서 공통적인 점은 회사나 조직원들에게 피해가 가지않도록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일본인들은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지켜야한다는 강박관념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주변에 자신의 수치가 드러날 경우에는 견디지 못하고 최후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23년 5월 일본의 유명한 가부키 배우인 이치카와 엔노스케(市川 猿之助, 48세)가 양친과 더불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는데 엔노스케는 목숨을 건졌으나 부모는 숨졌다. 엔노스케 일가의 자살 시도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일본의 모 주간지가 엔노스케가 주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갑질과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보도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가부키 명문가의 배우로서 평생동안 쌓아온 명성과 자부심이 일거에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수치심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들어 일본에서는 죽음을 대신해 조용히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자신이 살고 있던 장소에서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실종되어 버린다는 것인데 그 숫자가 해마다 10만여명에 달한다. 범죄를 저질러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거나 수치스런 일을 벌여 주변에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연락을 끊고 조용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민등록제도가 오래전부터 실시되고 있어 실종자들을 파악하는데 이용되기도 하는데 일본의 경우에는 주민등록제도에 해당하는 마이넘버카드를 수년전부터 발급하기 시작하였으나 아직도 등록율이 저조해 경찰에 실종자 신고를 한다해도 대상자를 찾기가 쉽지않은 것이 현실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본인이 사라지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신분세탁을 통해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는 전혀 색다른 곳에서 새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본에서 실종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거품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이후 부터이며 이후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경제불황기가 지속되면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거나 사라지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은 의리를 중시하거나 수치당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사회의 특성에서 비롯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국가권력이 자살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강요한 사례가 있는데 이는 다름아닌 「카미카제특공대」(神風特攻隊)라는 특수부대였다. 「카미카제특공대」는 2차대전 말기 전황이 일본측에 불리하게 전개되자 일본 군부가 이를 만회할 군사작전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세계 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비열한 작전을 만들어내었는데 바로 사무라이식 죽음을 전쟁에 악용한 것이었다. 사무라이는 전쟁에 패할 경우 할복으로 수치심을 대신하였는데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어린 병사들에게 사무라이가 할복하듯이 무모하게 적함을 향해 돌진하도록 자살공격을 강요한 것이었다. 할복의식을 하는 사무라이에게는 두잔의 술잔을 허용했는데 카미카제특공대원들도 출격전에 두잔의 술잔을 받아들고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을 행했던 것이다. 미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죽어간 젊은이들은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했던 것이 아니라 패전위기에 처한 일본 군부가 시키는 대로 무작정 전쟁터에 내몰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이 진실이다. 일본군부가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기위해서 젊은이들이 야마토(大和)정신으로 무장해 자발적으로 전선으로 달려간 것이라고 선전한 것에 불과했다. 패전위기를 모면하기위해 야마토정신으로 포장해 일본국민들을 집단적으로 마인드컨트롤 한 것이었다. 실제로 요미우리신문의 주필 겸 회장인 와타나베 쓰네오(渡邊 恒雄)는 이전에 증언을 통해 자신이 사병으로「카미카제특공대」를 옆에서 지켜보았다면서 “더이상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려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사무라이정신으로 무장된 일본군이 수치심을 당하기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해 옥쇄했다고 주장한 것은 허구이며 전쟁을 정당화하고 젊은이들의 죽음을 미화하기위한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사무라이식 자살을 미화하는 영향탓에 나타나는 일본만의 특이한 사회현상으로 서구에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무리신쥬」(無理心中)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는 가족 동반자살로 해석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방과의 합의가 없는 경우가 많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혹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동반자살하는 행위인데 이 또한 일본의 왜곡된 자살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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