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시 무풍지대 아냐

#1

국두(菊豆)는 1900년에 개봉한 중국영화다. 염색 공장주인 양금산은 나이 오십이 넘어 젊은 처녀 국두를 돈으로 사 와 폭행을 일삼는다. 매일 아침 국두의 모습을 훔쳐보던 금산의 조카 천청은 상처투성이인 그녀에게 분노와 애정을 느낀다.

금산이 집에 없는 어느 날 천청과 국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랑을 맺고, 다음 해 여름 아들 천백이 태어난다. 사실을 모르는 양금산은 아이의 탄생을 기뻐하고 천청은 아버지로서 자기 아이를 대하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한다.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이 영화를 보면 중국이 아무리 공산주의 국가라곤 하지만 그 저변에는 더럽게 변질된 천민자본주의, 그것도 돈을 매개로 하여 여자까지 사고파는 추악함을 발견하게 된다.

#2

태국 인터넷에는 ‘명문대 출신 신부 신솟으로 100만바트(약 3800만원)를 내라고 한다’ 등 고민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고 한다. 신부 스펙을 입력하면 신솟을 자동 계산해 주는 앱까지 생겨났다.

이 체면치레용 옛 풍습은 오늘날 사랑에 빠진 젊은 태국 남녀를 비극으로 몰아가고 있다. 신솟 준비 과정에서 파혼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신부를 포기 못 하는 남성은 결국 돈을 마련하려 범죄에 손을 댔다가 뉴스에 나온다. 태국은 한국과 함께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빠르게 감소하는 국가다.

작년 합계출산율이 1.16명으로 개발도상국 중 가장 낮다. 유엔은 태국 출산율이 올해 이미 0명대에 진입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위에서 말한 ‘신솟’은 결혼할 때 남자가 여자에게 반드시 줘야 하는 돈이다. 따라서 가난한 남자는 결혼조차 불가능하다.

#3

2022년 7월부터 중국의 인구가 감소세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2023년에는 인도에 역전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확실시되었고 그 전망은 아주 정확히 적중하여 2023년 2월 드디어 인도에 인구 숫자가 추월당하게 되므로 중세 송나라 이래 수백 년 동안 지녀왔던 ‘지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라는 자부심까지 붕괴되었다.

아무튼 중국이나 태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현상은 특히 자녀를 결혼시킬 때 체면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문화가 여전함에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하겠다. 이 때문에 결혼에 골인하는 과정이 너무 피곤하고 험난하다.

오늘 지인으로부터 자녀가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았다. 위 #1과 #2에서 다룬 바처럼 중국이나 태국 역시 돈이 없으면 결혼은 언감생심이다. 우리나라 역시 무풍지대가 아닌지 오래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들과 딸 모두 결혼식을 ‘3무 결혼식’으로 해결했다. 예단과 폐백, 주례사를 과감히 생략한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 자녀의 결혼은 가장 중대한 가정사이다.

하지만 갈수록 결혼시키기가 힘들어지는 건 왜일까? 이 또한 의식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체면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문화는 이제 과감히 버려야 한다. 체면은 목숨보다 소중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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