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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완 박사 칼럼] 지적 양식(糧食)과 행복한 삶 (20회)
[임주완 박사 칼럼] 지적 양식(糧食)과 행복한 삶 (20회)
  • 임주완
  • 승인 2022.06.2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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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두 보살과 스님

북한산의 두 보살과 스님

 

 한양도성의 북소문에 해당하는 자하문(창의문) 쪽에서 세검정 터를 지나 골이 깊은 계곡을 따라 북한산성 대남문 아래 골짜기에 들어선 뒤 승가사로 올라 그 뒷편 진흥왕 순수비의 선비봉에서 문수봉으로 가는 능선길로 문수봉에 올랐다가 문수암에서 샘물로 목을 축이고는 대남문을 지나고 부터는 성벽길로 보국문을 지나 대동문을 거친 후 정능골로 하산을 한 적이 있었다.

 

 전란 등의 유사시 조정의 피란처로 사용되었던 기존의 남한산성과 강화도 성곽은 거리상 접근성의 한계로 인하여 숙종 때 북한산성을 새롭게 축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북한산성의 대남문에서 남쪽으로 계곡을 바라보면서 오른 쪽 큰 바위로 형성 된 정상이 비교적 부드럽게 생긴 둥근 봉우리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상징하는 문수봉이고, 왼편의 뾰죽뽀죽하게 창칼처럼 늘어선 봉우리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을 상징하는 보현봉이다. 대남문은 유사시 궁을 빠져나온 왕이 자하문을 통해 산성으로 피란을 가는 북한산성의 정문으로 볼 수 있으며 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출입하는 성문은 구파발쪽에 위치한 대서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산을 여러차례 등산도 하고 북한산성을 따라 답사를 하기도 하면서 그 일대를 섭렵하다보니 대서문에서는 오른쪽으로 개울 건너의 등산하기 까다로운 정상부가 좁고 뾰죽한 봉우리는 원효대사가 남향하고 앉아 기도했다는 자리가 있고, 그 아래 절벽이 움푹 들어간 곳에는 원효암이라는 암자도 있어 봉우리 이름도 원효봉이다. 또한 대서문에서부터 왼쪽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면 나타나는 봉우리는 그 정상에 백여명의 사람들이 족히 앉아 있을 수 있을 만큼 넓고 평탄한 너럭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의 이름은 의상봉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왕과 조정의 신하들이 출입하는 대문의 양쪽에는 문수와 보현이라는 두 보살이 지키고 있고, 성을 지켜야 하는 병사들이 드나드는 성문의 양 옆을 우람하게 버텨서고 있는 곳은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라는 두 분의 승려이다.

 

 불교가 국교로 성행했었던 고려시대가 아닌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의 유사시 임금의 피란처인 행궁(行宮)도 있었던 북한산성의 두 성문 옆을 지키는 봉우리들의 이름이 공맹(孔孟)이나 주안(朱晏)이 아니라, 두 보살과 신라의 고승들이 됐는지의 대해서 궁금증이 자못 뇌리에 맴돈다.

<활기 정신건강증진연구원장 철학박사 임주완>

<齊和 노장사상연구소장>

<活起 풍수원구원 대표>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