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자 맞선을 봤다.

회계학을 전문으로 하는 나에게

무우. 배추. 통일벼. 담배농사 등 열심히 해서 다수확상을 탔다는 이야기를 아주 신나게 했다.

어려서부터 농사지어서 지겹다고 생각한 나에게 아주 긍정적이다는 인상을 주었다.

긍정의 힘이 한달만에 결혼으로 이어졌다.

남편은 회사에 다니지만 늘 산으로 가고자 했다.

2007년 귀농을 결정하고 담양으로 가기로 했다.

비싼 땅이지만  사서 처음 콩, 깨, 고추, 고구마, 땅콩 순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다 실패했다.

담양기술센타에서 강소농공부를 하면서 

작물선택에 시간이 많이 걸려 야생화를 

선택했다.

야생화 다음 계절에도 어김없이 살아나는 

매력때문이었다.

15년동안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15동안 이룬 터전을 불법까지 저질러서 밟아놓고 큰소리치고 있다.

야생화들이 불쌍해서 죽기살기로 싸웠다.

일본의 원자력이 터져 가족들은 떠났지만

소와 함께 남아서 살고있는 농부가 생각났다.

내가 힘들었을 때 

이듬해 봄 다시 살아나는 

야생화가 살렸듯이 

나도 야생화를 위해서 죽을힘과

1억원이라는 소송비를 썼으니

최선을 다했다.

내가 이름을 부르니 꽃이 되는

야생화

너도 내 이름을 사모님이라고 부드럽게

부르는구나.

사 모 님

귀농해서 처음 대접받은 기분이다.

폭력과 불법과 욕설이 난무한 세상에

부드럽게 아주 작은목소리로 사모님하는

너의 작은 소리가 

모든 카르마가 녹아버렸다.

나도 너처럼 

작은 소리로 부드럽게 

너의 이름을 부르는 귀부인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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