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의거와 4·19혁명을 바로 알자.

빛고을시민공원에 있는 4.19기념탑에 헌화하는 3.15의거 기념사업회 이정재 회장
빛고을시민공원에 있는 4.19기념탑에 헌화하는 3.15의거 기념사업회 이정재 회장

 3.15의거와 4.19혁명. 학생과 시민들이 부정선거와 이 후, 자행된 폭력진압에 항거한 일련의 사건으로 나열되지만, 정치, 사회의 제도적 재편성이 완성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됨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1960년 정·부통령 선거 도중, 민주당 조병옥 후보의 사망사건이 발생하였다. 여당인 자유당은 이승만과 이기붕을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고자 대대적인 부정 선거를 자행하였고, 이 에 항거하여, 최초로 광주에서 3.15의거가 발생하였고, 같은 날, 경상남도 마산에서 부정 선거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에 무력진압과 총격으로 수 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 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발견되었다.

 4월18일에 고려대학교 학생 시위가 일어났으나, 그 당시, 학생들이 귀가 도중 자유당의 사주를 받은 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였다.

 4월19일 학생과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에 경찰 발포와 함께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4.19 혁명으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며 교수진들이 행진을 벌였으며, 결과적으로 이승만의 하야 발표로 정권의 몰락과 이기붕 일가는 자살하였다. 이 후, 허 정 과도정부가 수립되고, 내각 책임제와 양원제 개헌으로 7.29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3.15의거 기념사업회 회장, 광주 시민.사회 총연합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정재 회장이 '역사바로세우기'를 주장하면서 광주광역시교육감에 출마하였다. 이정재 회장은 3.15의거 기념탑의 빠른 설치를 소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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