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뼈대를 키운 ‘역사의 눈’전일빌딩


호남의 심장부 광주의 대동맥이 시작되는 곳 금남로 1가 1번지는 반세기가 넘는 우리 현대사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눈’전일빌딩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하며 젊음을 불살라왔다.
20대 초반이었던 1958년 내가 대학을 중퇴하고 언론계에 첫발을 내딛은 곳이 바로 이곳 금남로 1가 1번지다. 그 당시는 전일빌딩이 세워지기 전으로 일제시대 일본판 신문이던 광주일보가 발행되던 곳이었으나 광복이 되면서 그 자리에 호남신문사가 들어서고 나는 이 순 한글판 호남신문의 2기 견습기자로 입사했으니 어쩌면 이곳은 내 생애의 운명과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그 당시 이곳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 건물이었으며 나는 ‘견습딱지’가 막 떨어진 초년기자의 몸으로 4.19의거의 학생대열을 따라다니며 취재를 했고 곧 이어진 5.16군사혁명의 쓰라린 현실을 몸으로 부딪치며 끝내는 신문사 폐간이라는 눈물겨운 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운명은 나를 이곳에 다시 붙들어주었으니 호남 신문이 있던 자리에 전남일보가 들어서고 나는 이 전남일보에서 잔뼈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전일빌딩’은 옛 전남일보의 줄인 말인 ‘전일회관(全日會館)’의 별칭이다. 이 새 사옥이 들어서고 전일방송국이 9층 10층에 개국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호남유일의 매스컴센터가 되었다. 그러니까 창업주인 남봉(南鳳) 선생이 젊은 시절 이곳 호남신문에 몸담아 있다가 씁쓸하게 나오면서 전남일보를 창간해 권토중래의 꿈을 이루고 금남로시대를 연 것이 1962년, 이로부터 6년뒤인 1968년 10월 전일빌딩을 준공하게 되었으니 반세기를 헤아리는 긴 세월이다.
나는 호남신문기자로 이곳에서 격동의 현장을 지켜봤고 좌절과 슬픔을 견디면서 전남일보의 편집간부로 성장하며 역사의 아픔과 보람을 함께했다. 그 가운데서도 80년 5월에 겪은 울분과 비통함은 내 생애의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이 나라 민주화 운동의 지울 수 없는 상처로 한 세대가 지나도록 치유가 되지 않고 있는 5.18광주항쟁-그 피 맺힌 진실을 가슴에 품고 있는 분수대와 이 눈물겨운 민주의 광장을 지금도 내려다보고 있는 ‘역사의 눈’금남로 1가 1번지의 전일빌딩-나는 그 당시 이 빌딩 안에서 숨막히던 그 때의 현장을 지켜본 신문사 편집국장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오죽했으면 신문발행을 강제로 중단당하고 10일만에야 첫 신문을 발행하면서 군부 계엄당국의 검열을 피해가기 위해 “민주시민의 긍지... 무등산은 알고 있다”며 우회적인 표현을 했던가. 제대로 하자면 ‘민주시민의 분노’라든지 ‘울분’이라든지 그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했어야 할 것을 애써 ‘긍지’라는 말을 그것도 한문글자 그대로 큰제목을 넣었으니 검열하는 군인이 제대로 그 뜻을 이해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계엄당국으로부터 비협조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편집국장자리에서 쫓겨나야 했고 10층에 있던 전일방송(VOC)의 국장으로 옮겨 간지 4개월 만에 언론통폐합이라는 거센 회오리바람을 맞아야 했다. 80년 11월 29일자로 전남일보는 28년 9개월이라는 연륜을 접고 종간했으며 전일방송 또한 개국 10년 만에 KBS로 흡수되었다. 이 때 전일빌딩 10층 옥상에서 전남일보와 전일방송의 초록색 두 사기(社旗)를 전사원이 지켜보면서 내리던 기억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로부터 전일빌딩은 1년여 동안 주인을 잃은 빈집(?)이었으나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이 통합된 새로운 신문 광주일보의 이름을 달고 옛집으로 다시 돌아왔으니 그 때가 1982년 봄, 이로부터 20년 동안 나는 광주일보의 주필과 전무이사 그리고 부사장을 거쳐 대표이사 사장까지 맡았으니 내 삶의 마지막 뼈대가 된 셈이다.
어쩌면 이 민족과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있는 무등산처럼 광주의 대동맥을 굽어보고 있는 금남로 1가 1번지의 전일빌딩은 우리 모두가 지켜내야 할 ‘역사의 눈’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수대 광장의 회화나무는 죽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말이다.

최송흐< 전 광주일보 사장>

지형원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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