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미수전’ 개발 전 세종시 등 50여 점

강용식 전 한밭대 총장이 10월 7일~13일까지 대전중구문화원 전시실에서 ‘88세 미수전’을 테마로 개인전을 열었다.

강용식 전 총장
강용식 전 총장

강 총장은 오래전부터 미술애호가로 알려져 왔다. 유명 작가들의 그림을 수집했고 직접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창작에 대한 평생의 열정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간 한두 점 쌓인 그림이 60여 점에 이르렀다.

강용식 전 총장으로부터 그림 사랑에 대해 들어봤다.

 

강용식 개인전
강용식 개인전 ‘88세 미수전’

 

Q. 이번 전시 테마는 무엇인가요?

A. 제가 올해 88세를 맞아 ‘미수전’ 으로 준비했습니다. 금강산과 설악산 그림과 세종시 전월산 그림을 전시합니다. 전월산 밑에는 국회가, 원수산 밑에는 정부청사가 들어설 계획입니다. 세종시는 하나의 역사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유채꽃이 있는 그림은 태안의 가의도입니다.

 

설악가야계곡
연주담

 

Q. 건축공학자이신데,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제가 대전 사범학교 다닐 당시에는 6년제였는데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특차입학했지요. 이동훈 선생님이 미술 선생님이셨는데 저에게 미술에 재능이 있다며 미대에 진학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홀어머니에 외아들이었던 저는 서울의 미대를 진학할 형편이 못돼 충남대 건축학과로 진학했지요. 현직에서 물러난 후 취미 생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치매 예방에도 좋고, 잡념도 사라지고, 서서도 작업할 수 있고, 여러모로 좋습니다.

 

강이 보이는 전원
강이 보이는 전원

 

Q. 강 총장님이 생각하는 삶의 모토는 무엇인가요?

A. 나는 열심히 일하면서 봉사하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한밭대학교도 총장에 출마했을 때 다섯 명 중 93%의 표를 받아 당선됐어요. 그리고 두 번째도 과반수로 당선돼 총 8년 동안 총장을 하는 동안에 학교 부지를 옮겼고, 옮기면서 대학 이전에 대한 특별법 등 법을 세 개를 고쳤어요. 그렇게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집을 짓고, 학교 재정이 튼튼해야 노벨상도 나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5000만 원을 기부해 학술문화연구재단을 설립했어요. 그것이 지금 100억이 넘었어요. 학술문화재단 자금으로 교수들 연구비도 주고 기자재도 구입하는 등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희생과 봉사 정신 없이는 못 하는 거죠. 제 리더십의 비결도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입니다. 저는 우리 민족을 사랑합니다. 우리나라가 남북이 분단돼 있고, 동서갈등이 너무 심하죠.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등에 이용당하고 무시당하고 사는데 리더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파도
파도

 

Q. 총장님이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들이 무엇인지요?

A. 한밭대학교가 삼성동에 있었는데, 제가 총장을 맡으면서 유성 덕명동으로 이전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이전하는 과정에서 7전 8기 아닌 8전 9기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요. 정부에서 예산이 없다며 이전에 대한 승인을 안 해줘서 1년 동안 계속 문교부를 찾아가 건의했습니다. 전국총장협의회에서도 한밭대학교 이전에 대한 당위성을 계속 설명해 그 당시 문교부장관이었던 정원식 장관이 대학부지만 구하면 이전 승인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땅을 사려고 하니 마땅한 땅이 없어 72군데를 돌아다녔답니다.

강용식 개인전 ‘88세 미수전’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감정 평가를 통해 한밭대 부지를 사게 됐죠. 거기가 그 당시 9만 2000평이었는데 땅이 부족해 주변 사유지도 매입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나오는 돈이 일반 회계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도저히 땅값을 지불할 수 없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김영삼 대통령을 중앙데파트 커피숍 등에서 만나 ‘대학이전특별법’을 건의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 대학이전특별법이 생겨 130억에서 15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토지를 매입하고 건축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만 존재했던 한시적인 이 법 덕분에 한밭대학교가 지금의 덕명동에서 개교 92주년을 맞으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거죠. 대학 이전을 하고 보니 재정이 튼튼한 외국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도 나오는 걸 보고 한밭대 학술문화연구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초대 총장 겸 초대 학술문화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사비 5000만 원을 들여 종잣돈을 만들었는데 3년 전에 100억 원 이상을 돌파했습니다. 뿌듯했죠. 또 대전공업대학에는 13개 학과가 있었는데 제가 한밭대 초대 총장 재임 시에 12개 학과를 신설해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켰습니다. 한밭대학교를 명문대학으로 발전시키는 주역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전국 국립대학총장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했고, 전국산업대학교 총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제도를 만들어 대학 발전에 힘을 보탰습니다. 이때 한밭대 상징물을 소나무와 독수리와 백목련으로 정했습니다. 또한 1987년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 시절은 대전충남충북지구를 모두 관할했는데 한국로타리 문화재단에 내는 기부금이 전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의 실적을 올렸습니다. 믿음과 진실, 봉사정신으로 살다 보니 이룰 수 있었던 성과였습니다. 그 당시 저의 총재 표어가 ‘사랑과 봉사로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였답니다. 로타리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했지요.

 

강용식 개인전 ‘88세 미수전’
강용식 개인전 ‘88세 미수전’

행정수도를 처음으로 제안한 강 총장에게서는 ‘개발 전 세종시’ 그림에서도 엿보이는 세종시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신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평생 의지가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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