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22) 창평면 유천리

담양뉴스는 지역사회와 더욱 가깝고 밀착된 마을뉴스, 동네뉴스, 골목뉴스 서비스 제공을 위해 ‘뚤레뚤레 동네한바퀴’ 코너를 신설하고 마을의 자랑거리와 소식,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소개합니다. 참여를 희망하는 마을은 우선적으로 취재, 소개해 드립니다.(취재문의 : 담양뉴스 381-8338)/편집자 주

▲고환석, 이형순, 고광석 님(고재구 전통 쌀엿)
▲고환석, 이형순, 고광석 님(고재구 전통 쌀엿)
▲창평면 유천리
▲창평면 유천리

이번 ‘동네한바퀴’는 어느 곳을 방문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인으로 부터 창평면에 있는 유촌(柳村)마을을 추천받았다. 

유촌마을은 임진왜란 고경명·고인후 의병장 자손들로 가문에서 30여명 정도가 문과 진사와 무과 영장을 지냈다고 한다. 마을의 역사도 오래되어 작년에는 고재한 이장님을 비롯, 마을주민들이 합심하여 1400년 역사의 마을 유래비 까지 세웠다. 내가 살고있는 곳에서 가까이 있는 마을임에도 이 마을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 가치를 몰랐으니,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는 마을일 것 같았다. 

유천리는 신라 경순왕 때부터 조선 세조 때까지 500년간 언양 김씨가 모여 살면서 많은 인물들을 배출했고, 수원 부사를 역임한 김천일 의병장도 이곳 태생이다. 또한 고경명 의병장 삼부자의 '불천위'(不遷位:나라에서 큰 공훈을 인정하여 제사를 영원히 모시도록 허락함) 제사를 지내고 있다. 

큰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집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상호가 적힌 표지판들도 계속 이어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 마을은 한집에서 한가지 사업을 하는 마을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걷다가 눈길을 끄는 곳이 있어 들렸다. ‘고재구 전통쌀엿’ 집이었다. 원래 부모님이 하시던 것을, 지금은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그만둔 두 형제가 뜻을 모아 운영하고 있었다. 직접농사 지은 유기농 쌀과 소나무 연료로 전기장판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고 있다. 
“어떻게 형제가 함께 하시게 된 건가요?” 

▲고재구 전통 유기농 쌀엿
▲고재구 전통 유기농 쌀엿

“제(고광석)가 하자고 하니까 동생(고환석)이 받아들여 줬어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을 도와 엿을 만들어서 기술이 습득되고 애착도 생긴 거죠.” 
“자녀들에게도 물려줄 건가요?” 
“본인들이 하겠다고 하면 기꺼이 하라고 할건데. 도시에서와 같은 스트레스도 없고, 돈 많이 벌겠다는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전통을 이어가서 후세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고재구 전통쌀엿 집을 나와 이어서 학봉 고인후 종가댁에 들렸다. 
넓은 집터가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종부 고영준 선생 부부의 노고가 적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사모님께서 직접 만드신다는 홍차와 녹차가 섞인 차의 향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4년 전, 농어촌공사에서 ‘전국 종가집 요리 12선’을 선별해 프라자호텔에서 3일간 요리 시연도 하셨다니 맛이 정말 궁금했다. 
“사모님, 전통을 지키면서 조상들을 모시느라 고생 많으시죠. 많이 힘들죠?” 
“아니요.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괜찮습니다.” 
“제사 규모는 어떤가요?” 
“불천위 제사는 14대손 26촌 간의 친척들이 모이시니까 많을 때는 70분, 요즘은 40분 정도가 오시죠. 옛날에는 소를 잡았다고 하고요. 제가 시집올 때는 돼지를 잡았어요. 젊었을 때는 부엌일을 도와주는 분이 계셨는데 연로하셔서 그만하시겠다고 해서 떠나신 후로는 제가 혼자 맡아 하고 있죠.” 
그렇게 많은 일을 하시는데도 얼굴에 짜증이 없는 편안한 모습이신 것이 존경스러웠다.

▲고인후 종가
▲고인후 종가
▲고인후 종가 사당
▲고인후 종가 사당

한편 학봉 고인후 선생 후손인 춘강 고정주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 조약이 맺어지자 규장각의 직각 벼슬을 내던지고 창평으로 내려와 고려시대부터 공부방으로 사용했던 상월정(上月亭)에서 인재양성 교육을 시작했고, 그것이 창평 보통학교로 발전하여 지금의 창평초등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종부(고영준)님의 안내로 최초의 소총 무장의병을 이끈 고광순 의병장기념 사당 ‘포의사(褒義祠)’에 들렸다. 고광순 의병장은 ‘불원복’(不遠復:나라를 곧 되찾게 될 것이니 힘껏 싸우라는 격려를 담은 태극기/등록문화재 394호)의 군기를 세우고 의병을 훈련 시켰고, 기삼연 의병장과 함께 정읍·순창·구례 등지에서 대일항전을 벌였다. 이에 일본군이 마을을 둘러싸고 종택을 불태우고 보복했다. 고광순 의병장은 구례 연곡사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 끝에 장렬히 전사했다.

포의사에서 더 위로 올라가니 오른쪽으로는 ‘호남의(義)정신관’이 넓고 멋지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문대대로 충의(忠義)를 지킨 전라도 명문가 고인후 종가의 정신을 본받도록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교육하면 좋을 것 같다.

▲포의사-고광순 의병장 기념관
▲포의사-고광순 의병장 기념관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왼쪽에 ‘충의사’라는 광주전남 조선 5란(五亂) 호국충혼탑이 있었다. 충의사 호국충혼탑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 정묘호란, 정희량·이인좌의 난 등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 걸고 싸우신 광주전남 출신 의사 2,143명의 구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바로 옆에 체험관과 교육관이 있어 호남의 의(義) 정신을 배우고 체험하는 장으로 안성맞춤이다. 

마을 탐방을 마치면서 유촌마을은 진정 충의와 절개의 마을이란 걸 깨닫게 되었고, 그런 나라를 위하는 정신이 후손과 지역주민에게 계속 대물림되고 널리 유포되기를 기원했다. / 양홍숙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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