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서재능경력대학원 재능인증 ‘한국전통음식 폐백 한과학’ 부문 박사학위취득
정성과 정직을 인생철학으로 궁중 이바지 음식 만들기 23년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외로움은 열정으로 달랬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어느 집 아들이 결혼을 하면 축하한다는 말보다 기특하다는 말이 더 먼저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인륜지대사로 여기지 않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적령기가 되도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23년 전부터 결혼식의 폐백 음식을 만든 안명자 선생은 시대의 흐름이 낯설고 안타깝지만 전통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마지막 자존심처럼 남아있다. 유행이 시대 따라 변해도 폐백의 전통은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 또한 폐백 음식 장인인 안명자 선생의 자존심과 닮아있다.

신한서재능경력대학원 재능인증 ‘한국전통음식 폐백 한과학’ 부문 안명자 박사
신한서재능경력대학원 재능인증 ‘한국전통음식 폐백 한과학’ 부문 안명자 박사

弊帛(폐백)을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弊(폐)는 선물로 서로 주고받는 예이고 帛(백)은 비단이다. 폐백은 예의로서 비단을 선물로 올림을 뜻한다. 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뵐 때 올리는 대추나 乾雉건치(말린 꿩고기)는 일반적인 예물이다. 폐백 음식은 가풍(家風)에 따라 풍습이 다르지만 혼례 때 신부가 시부모나 그 밖의 시댁 어른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는 구고(舅姑)의 예(禮)를 올리기 위하여 준비해 가는 특별한 음식이다. 그래서 재료 하나하나에 온갖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혼이 실려야 한다.

안명자 박사
안명자 박사

Q. 폐백 일을 하게 된 계기와 처음 폐백을 시작 했을 때의 여건

A.폐백 일을 하기 전에는 수를 놓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습니다. 폐백 음식들이 하나하나 작품처럼 보여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뜨개질도 하나를 완성할 때까지 잠을 설치기 예사였는데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폐백 음식도 완성할 때까지 밤잠을 설치는 게 다반사 였습니다.

23년 전 처음부터 배우는데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오전 선생님 오후 선생님이 다르게 진을 다 빼면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고단했지만 행복했습니다. 서울로 광주전문대로 자격증반을 다니면서 1년 내내 아침 6시 첫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9시30분 첫 수업에 닿으려면 첫차에 내려서 택시로 이동을 해야 시간을 겨우 맞출 수 있어서 극성떨면서 배우러 다녔습니다. 내 손길로 결혼하는 부부의 인생 시작을 축하한다는 생각에 잘 배우고 싶었습니다. 폐백 음식은

40살이 넘어 시작했습니다. 이른 나이가 아니어서 더 열심히 배웠습니다. 시작할 때는 23년 동안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좋아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시간이 흘러왔습니다.

사람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던가. 남편이 벌어다준 돈을 쓰는 것도 눈치가 보여 내가 돈을 벌자 결심한 순간, 여기 저기 다니며 배우고 단련된 솜씨가 짭짤한 사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폐백음식
폐백음식

음식을 만들다 보니 무엇보다 정성과 정직해야된다는 것이 나의 인생철학입니다.

황혜성 선생님 문하생으로 이바지 떡 8가지를 배웠습니다. 황혜성 선생님은 (1920~2006) 창덕궁 낙선재에서 조선 왕조의 마지막 주방 상궁 한희순 으로부터 궁중 음식을 전수받아 중요 문형 문화재 제 38호 제 2대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로 활약 하셨습니다.

전통방식 그대로의 정갈한 맛과 품격이 돋보이는 고급스러운 폐백음식으로 소문난 안명자 선생은 “정성스럽게 잘 만든 폐백이바지음식에는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만든 폐백이바지음식은 맛도 차림새도 품격이 다르다”고 한다.

안명자 선생의 폐백음식은 아름다운 인연을 맺어주고 양가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자손의 번영과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정성이 가득하여 짜임새가 돋보이고 아름다운 조화를 뽐낸다.

양로원 봉사
양로원 봉사

Q. 전통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라 특별한 기억은

A. 3년 전인가 5키로짜리 대형 문어 때문에 생고생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문어를 공수해왔습니다. 신선한 문어는 폐백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라 주방에 넣어놓고 나왔는데 그 밤에 녀석이 슬그머니 기어 나는 게 아니겠어요. 얼마나 무서운지 힘이 보통 센 게 아니잖아요. 목을 떼어도 살아서 나오는데 기겁을 했습니다. 집어넣으면 또 나오기를 반복하는데 여기저기 전화해서 방법을 물어보는데 다들 알아서 하라네요. 경험들이 없어서 그랬을 거에요.

결국 진을 다 빼고 끓는 물에 겨우 넣은 후에야 진정이 됐습니다. 그날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에요.

한번은 정성스레 부쳐놓은 전이 쉬어버렸어요. 아침에 확인하니 눈앞이 캄캄했어요. 사실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지만 그 음식을 결혼식장에 가져갈 수 없었어요. 인륜지 대사에 양심을 팔아먹을 수는 없었어요. 진땀을 빼면서 다시 만들었습니다. 잠깐의 방심도 허락 안 되는 누군가의 인생에 출발을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만들었어요. 비록 몸은 고되지만 그게 마음은 속 편했어요.

안명자 박사 신한서재능경력대학원 재능인증 ‘한국전통음식 폐백 한과학’ 부문 박사학위 수여식
안명자 박사 신한서재능경력대학원 재능인증 ‘한국전통음식 폐백 한과학’ 부문 박사학위 수여식

첫 번째 고객은 지금은 어디서 살고 계신지 모르지만 폐백 음식 만들기 전날 살얼음판을 잘 못 디뎌서 팔을 땅에 짚으면서 그만 팔이 부러졌어요. 닭고기에 이쑤시개 수백 개를 하나하나 꽂아서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데 팔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미련스럽게 참고 했어요. 물론 다 만들고 나서 통증으로 며칠 내내 시달려야 했지만 마음은 너무 가벼웠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해냈다는 생각에 통증이 오래가지 않은 거 같아요.

도우미 없이 혼자서 일을 하려니 힘에 부치기 일쑤였지만 억척같이 해냈다. 23년 전은 1호 75만원 하던 시절이라 적지 않은 가격에 폐백 음식이라 고객도, 안명자 선생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폐백음식은 맛도 일품이지만 멋스럽게 꾸며진 차림새도 품격을 더한다. 눈에 띄는 꽃문양은 곶감을 일일이 포를 떠서 만든다. 한참을 들여다봐야 곶감인줄 알 정도로 장인 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먹기에도 아까운 음식들 한 세트를 만들려면 꼬박 3-4일이 걸린다.

폐백음식 만드는 과정
폐백음식 만드는 과정

밤잠을 설치는 건 예사고 신선도를 유지해야 돼서 당일 날 시간을 맞춰 배송해 드리는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

한지도 음식마다 다르게 깔아야 한다. 전국의 지역마다 음식이나 풍습이 달라서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했다. 오징어 문어 문양 배울 때는 전주에 가서 1주일씩 배웠다. 전국으로 다니면서 배우다보니 집을 비우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가족들 눈에는 대단한 일로 보여 지지 않아서 불편한 마음을 나누기도 했지만 안명자 선생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폐백 음식은 혼을 실어 만들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는 명절 음식은 그 만큼 정성을 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시간과 비용의 투자가 많았다. 전통 방식이라 음식의 재료가 바뀌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더 예쁜 모양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차림새 코디하는 방법도 끊임없이 연구를 했다. 보자기 장인에게 보자기 싸는 방법도 따로 배웠다. 보자기는 재질의 특성상 살짝 감아주지만 풀어지지 않고 모양은 예뻐야 되서 그 방법도 예술이다. 한지 한 장을 깔 때도 정성이 남달라야하고 보자기 또한 중요한 소품이라 작품 만들듯이 배웠다. 고운 보자기에 정성담긴 손길로 음식을 싸주면 신랑 신부가 더 잘 살 것 같은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혼을 실으면서 전국으로 소문이 나고 이 댁에서 저 댁으로 안명자 선생의 손길이 필요하게 되었다.

폐백 음식 장인으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병천 고등학교 한식조리과 아이들에게도 강의를 했다. 학생들이 수업에 재미있게 참여하면서 열정을 보여줘서 안명자 선생도 더 극성맞은 선생님이 되셨다고 한다. 서양음식에 이미 빠져있는 청소년세대의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한식을 배우려는 의지를 보여서 안명자 선생은 그 마음만으로도 감동이 일었다고 하신다. 전통이 사라져가는 시대, 그 아이들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방점을 찍으셨다.

그래서 사명감을 또 한 번 담금질하게 되셨다.

떡이 빵처럼 흔해진 시대, 전통의 떡은 사라지고 이제 떡인지 빵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존재감을 잃고 있다. 어린 시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을 손으로 찢어가며 뜨거운 온도에 이 손 저손 번갈아 가면서 그게 최고인양 먹던 떡의 맛이 있다. 세월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는 맛이다.

박사학위수여식에서 함기철 이사장과 가족들
박사학위수여식에서 함기철 이사장과 가족들

안명자 선생은 그 전통의 맛을 살리고 품격을 지키고 싶은 분이다.

23년 이제는 눈감고도 만들 수 있어요. 내가 어렵게 배우고 지켜온 전통을 후대들이

명맥을 이어주기를 바라지만 바램으로 그칠까 걱정입니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아요. 손맛으로 만드는 전통 음식은 아무리 좋은 기계도 흉내 낼 수 없는 혀끝을 감도는

깊은 맛이 있어요. 사람의 손길이 아니면 해낼 수 없지요.

안명자 선생의 재능을 인정해 지난 5월 26일 신한서재능경력대학원(총장/이사장 함기철)에서는 재능경력인증 ‘한국전통음식 폐백 한과학’ 부문 박사학위를 수여 하기도 했다.

박사학위식에 참석한 내빈들
박사학위식에 참석한 내빈들

전통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시절, 안명자 선생의 뒤를 이을 후대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면

괜한 바램일까? 조금은 느려도 더 깊이 있는 그 맛을 따라 가보는 여유가 절실 할 때다.

폐백 자리에서 족두리에 연지곤지 찍고 수줍게 웃는 신부의 모습이 동화책속의 한 페이지처럼 남아서는 안 된다. 전통이 살아야 그 뒷심으로 우리의 미래도 단단해진다. 안명자 선생의 지난 발자취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발걸음이 더 값지고 아름다운 때가 되었다.

안명자 박사
안명자 박사

안명자 박사 프로필

- 1953년 2월생

- 2000년 여성회관 한식 조리과 수료

- 2002년 8월 사단법인 한국 국공립대학 평생교육원 협의회로부터 전통폐백지도사 자격증 획득

- 2002년 광주 전남대 전통폐백 지도사 자격증 취득

- 2003년 전통예절 다도학과 수료, 폐백예절교육원 지도강사

- 2004년 금산농업기술센타 전통음식 지도강사, 선문대

전통예절 다도학과 과정

- 2006년 현 어머니회 폐백이바지 지도강사

- 2007년 병천고등학교 산학겸임 교사로 임명

- 2008년 사단법인 궁중병과연구원 떡 전문과정수료

- 2010년 다문화가정 전통떡체험 지도강사

- 2013년 2월 한국차문화협의회로부터 차문화예절지도사 지도사범자격증 획득

- 2018년 8월 대한민국 문화재청 소관과 규정정관에 의해 사단법인 대한민국 남북통일 예 술인협회 전통음식부문 명장으로 위촉

- 2019년 5월 사단법인 대한민국 남북통일 예술가협회가 주최한 제11회 대한민국 남북통 일 세계환경 예술대전에서 전통음식부문 대상수상

-2020년 5월 신한서재능경력대학원 재능경력인증 ‘한국전통음식 폐백 한과학’ 부문 박사학위취득

- 2020년 6월부터 중앙불교대학원 다복문화원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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