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음악실 쉘부르 이 종환 사단 가수 이애영
대전 중구 보문산 명소 “나루터”
음식의 장인 연 숙희 “콩나물 탕” 달인 주방장( 전 영강식당 대표)

   2019년 1월 1일 정초 대전 보문산 공원로 514번길(중구 대사동:042-222-7007) 종전의 케이블카 앞에 위치한 “나루터”(이영애 사장)를 지인과 함께 찾았다. 이곳은 다양한 메뉴를 라이브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만남의 장소, 추억의 장소로 유명해진 곳이다.

70~80년대 이종환 사단 쉘부르 이영애 통기타 가수가 운영하는 대전 보문산  "나루터"에서 손님을 위한 즉석 라이브 '적우가수' "하루만"을 열창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70~80년대 이종환 사단 쉘부르 이영애 통기타 가수가 운영하는 대전 보문산 "나루터"에서 손님을 위한
즉석 라이브'적우가수' "하루만"을 열창하는 이영애 대표 모습이 아름답다

필자는 지역이 근방이다 보니 가끔씩 귀동냥으로 친구와 함께 어죽도 먹으로 갔었고, 막걸리도 마시러 간곳이다. 은행시절에는 호기심으로 5월5일 ‘어린이날’ 보문산 입구에 자리를 잡아서 중앙시장 ‘평화완구’에서 완구를 갖고 와서 20%의 마진을 남기고 동료와 같이 ‘완구장사’를 하던 추억의 장소이다. 그날 팔아서 남은 수익금으로 후배들과 동기들과 함께 ‘술’을 사주고 나면 빈털터리가 되어서 집사람에게 면목이 없이 핀잔을 들었던 마음속의 추억이 서린곳이기도 하다.

정초 지인과 함께 찾은 이곳에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사람 선화동에서 ‘영강식당’(연숙희대표)의 주인이 이곳에 근무한다고 해서 찾은 곳이다. 연숙희 대표는 “콩나물 탕”의 달인으로서 ‘영강식당’을 운영하다가 홀연히 사라진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 여사장이었다.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 '영강식당' 前(전)연숙희 대표"콩나물 탕의 달인"그는 현재 '보문산 나루터'에서 주방장 으로 이영애 대표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 '영강식당' 前(전)연숙희 대표"콩나물 탕의 달인"그는 현재 '보문산 나루터'에서
주방장 으로 이영애 대표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제는 세월이 깊이 만큼 연륜 또한 깊어졌지만, 그 옛날의 모습은 아직도 ‘청춘’인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들어서자 마자 반기는 이영애 사장과 바로 알아차린 연숙희 前(전) 대표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정초 첫날부터는 마시고 싶진 않았지만 연대표의 한잔 하라는 말에 소주 한병을 시켜 이런 저런 얘기를 하였고, 즉석에서 라이브로 들려 주는 이영애 대표의 녹슬지 않은 보이스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들려주었던 노래는 ‘적우’ 여자 가수의 “하루만”이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적우가수 / 하루만

돌아갈 곳이 없는데

또 다른 사랑 없는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냥 있어주면 되는데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엔

곁에 있어줘야 하잖아

떠나려는 니 맘 알겠지만

잡고 싶은 내 맘 알아줘

하루 만 하루만 사랑해

하루만 내 곁에 있어줘

시간 지나 먼 훗날엔

이 상처 지울 수 있게

하루 만 하루만 곁에 있어줘

아파도 내 사랑 너니까

널 보내줄게 떠나가 줄게

하루만 내 사랑아

떠나가는 사랑의 아픔을 정말 애절하게 표현한 노래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중구 태평동에서 카페 335를 운영하고 있는 김국향 대표 우송대학교 외식카페 과정에서 1등을 차지하여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향후 연숙희 대표의 사사를 받아 "콩나물 탕'의 전수자로 향토음식 후계를 이어가고자 한다.
중구 태평동에서 카페 335를 운영하고 있는 김국향 대표 우송대학교 외식카페 과정에서 1등을 차지하여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향후 연숙희 대표의 사사를 받아 "콩나물 탕'의 전수자로 향토음식 후계를 이어가고자 한다.

하루만이라도 함께 있기를 바라면서 감성 보이스의 이영애 대표 노래가 간절하게 들리는 이유는 ‘사랑’ 과 ‘외로움’‘이별’이라는 단어가 교차했기 때문 일게다.

이 영애 대표가 살아왔던 시기는

70~80년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시기이다. 정치ㆍ사회적으로 암울했고 경제적으로는 가난을 이기고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서 고도성장을 이뤄 내던 시기이기도 했다. 문화적으로는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대표 되는 열정과 낭만의 청년문화를 창출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중 통기타는 가수 송 창식에서 장범준까지 40여 년간 사랑을 받아오며 시대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던 추억의 포크송을 다루던 악기였다.

1973년 DJ 이종환의 쉘부르가 종로 2가에 들어서며 통기타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고 한다.

가수로 데뷔 할 수 있는 등용문 역할을 했던 그런 쉘부르에 가수 이애영씨가 있었다.

대전 보문산의 명소 '나루터' 메뉴판 이영애 대표는 장사가 어울리지 않는다.장사를 모르고 노래를 부른다.그런 그는 때때로 타인의 술수에 속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또한 나의 몫이라고 말한다.
대전 보문산의 명소 '나루터' 메뉴판 이영애 대표는 장사가 어울리지 않는다.장사를 모르고 노래를 부른다.
그런 그는 때때로 타인의술수에 속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또한 나의 몫이라고 말한다.

이애영씨가 태어난 곳은 충청도 홍성이라고 한다. 그는 한국 모던 포크의 대명사인 라이브 음악실 쉘부르에서 활동하던 이종환 사단의 한명으로 현재 대전 중구 대사동에 종전의 케이블카 앞에 ‘나루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 보문산의 명소로 자리잡은 시간만큼이나 아픔또한 크게 자리잡을 영광의 상처속에서도 굴하지 굿굴하게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오늘도 나루터를 방문하기 위해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직접 서빙을 하고 있는 곳이다. 때론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이영애의 독무대가 펼쳐진다.

홀로 통기타를 치면서 삶의 열정을 뿜어내는 이애영씨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통기타와의 인연♡

“70년대 초 20대 초반이던 저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 놀러 갔다가 라이브카페 쉘부르를 가게됐어요, 행운권을 추첨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중 제가 당첨된 걸 알았죠, 그때 사회자가 유명한 허참 씨 였어요. 행운권 당첨으로 무대에 설 기회를 얻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평소 통기타를 취미로 독학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몰래 숨어서 치곤 했지요. 시대적으로 가수란 직업은”딴따라“라는 인식이 강해 드러 내놓고 음악을 할수 없었어요. 그런 저에게 그날의 무대는 제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됐지요.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이 종환씨의 눈에 띄어 즉석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돼 ‘쉘부르’에서 노래하게 됐으니까요”

♡추억속의 음악실 ‘쉘부르’♡

“라듸오 DJ전설”이자 ‘통키타 가수들의 대부’ 이종환씨 주변엔 항상 재주꾼들이 몰려들었어요.스타를 발굴해내는 안목도 탁월해 재능 있는 가수들이 음반을 발표 할 수 있게 길을 터주었고 양 희은 김 정호 쉐그린 등 많은 가수가 쉘부르 무대를 통해 스타가 되었지요“

대전 중구 보문산공원로 514번지에 위치한 '나루터'음식점 어슴프레한 정초에 찍은 사진이 유난히 밝아보인다.(외부전경)
대전 중구 보문산공원로 514번지에 위치한 '나루터'음식점 어슴프레한 정초에 찍은 사진이 유난히 밝아보인다.(외부전경)

“우리는 이종환씨를 ‘대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답니다.이종환씨기 소문도 많고 말도 많았지만,음악을 대하는 열정 하나는 최고 였어요”

“쉘부르에서는 활동하는 사람들중 몇 명을 뽑아 ”쉘부르 기획작품집“이라는 앨범을 만들었어요.저는 그 곳에서 노래를 한지 3개월만에 앨범에 참여하게 됐어요.저보다먼저 쉘부르에 들어왔어도 앨범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답니다.

아마도 자신이 직접 캐스팅한 저를 위한 이종환씨의 배려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제 목소리를 무척 좋아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원래 어디 얽매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앨범에 참여하고 나니 희망도 생겼지만 어디에 속해있는 삶이 힘겨워졌어요, 그냥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대전으로 내려와 버렸어요. 얼마가 지나고 이종환씨에게 죄송하다는 편지를 썼어요. 며칠후 전보가 왔어요‘같이 고생합시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마음이 약해져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계기가 됐죠”

“그 후 이종환씨가 ‘이수미 자해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해지고 음악실 쉘부르의 종로 시대가 끝났어요. 이종환씨가 풀려나고 명동에 카페 쉘부르가 문을 열었죠.거기서 한동안 버텼는데 술 마시는 곳에서 노래 부르기가 힘들었어요. 보이시한 외모와 목소리,170㎝의 큰 키 등이 남자냐 여자냐를 시작으로 취객들의 시빗거리가 됐죠. 도저희 버틸수 없어 이종환씨에게 대전으로 가겠다고 했어요. 그때가 1970년대 후반 이었어요”

대전 보문산 명소 '나루터' 내부전경
대전 보문산 명소 '나루터' 내부전경

♡대전에서 ‘RESTART'♡

"대전에 내려와 노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쉘부르 출신이라는 것이 많은 도움을 줬지요.라이브 카페에서도 노래하고 저를 찾아 주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달려가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러다가 라이브카페를 차렸어요. 손님들과 음악적 영감을 나누며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할 생각에 기대가 컸죠“

“진짜 7080 문화를 살려 보고 싶었어요. 그러난 이미 클럽문화나 부킹문화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어 많은 라이브 카페들이 퇴폐업소로 변질 된 후였어요. 순수했던 그 시절의 통기타 문화가 사라진 거죠”

“라이브카페를 운영하면서 어려움이 찾아왔어요. 변질된 문화로 인해 장사가 체질에 맞질 않았죠. 그때 너무 지쳐 택시운전을 시작했어요, 자유로운 것을 좋아해서 운전을 좋아했어요.혼자 여행도 다니고 많은 생각을 할수 있었죠. 힘든 시기를 좋아하는 운전을 통해 치유해 나간 것 같아요”

♡외로움을 달래는 ‘섬’♡

“라이브 카페를 접고 혼자 유천동에 작은 규모의 카페를 차렸어요.정현종의 ‘섬’을 좋아해서 상호를 ‘섬’으로 정했어요. 카페에는 작은 무대도 준비했어요. 노래는 멈출수가 없었거든요”

“사람들은 누구나 외롭쟎아요. 저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외로움을 타요.그런 분들을 위해 노래하고 싶었어요. 나를 위한 노래를 요”

“저는 노래 부를 힘이 있을 때까지 노래 부를 거예요. 부르고 싶을 때 부르고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요”

나루터 음식점 내부에 걸려 있는 "빈잔' 시가 세월을 대변해주고 있다.
나루터 음식점 내부에 걸려 있는 "빈잔' 시가 세월을 대변해주고 있다.

♡ 그때를 추억하는 ‘나루터’♡

이 애영씨는 2016년 11월 23일 손맛 좋은 후배와 함께 보문산 아래에 음식점 ‘나루터’를 개업했다고 한다. 나루터는 느낌상 막걸리와 모듬전을 먹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어죽도인기다. 생물 메기와 동자개(빠가사리)만을 사용하는 이애영씨의 고집 때문이라고 한다.

나루터는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점심장사를 시작해 밤 10시까지 운영하고 있다. 밤 8시 30분부터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올 경우 이애영씨의 독무대가 펼쳐진다. 노래를 찾아 이곳에 오는 이들이 적지않다고 한다. 낮에는 가족단위로 저녁에는 친구, 연인, 직장회식, 각종모임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아~아~ 언제 만나랴 ! 사랑하는 사람아~ 애 달픈 절규가 느껴진다.
"아~아~ 언제 만나랴 ! 사랑하는 사람아~ 애 달픈 절규가 느껴진다.

보문산 아래 자리잡은 ‘나루터’는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찾는 이들과 옛 추억을 찾아 음악에 이끌려 온 이들까지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노래 부른것에 후회한적은 없어요, 살면서 말도 못하게 힘든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노래 부를 때가 가장 행복했답니다. 낙후된 보문산을 다시 명소로 만들고 싶어요. 통 기타가 오랜 시련 속에서도 아직 사랑받는 것 처럼요‘ 이라는 기사의 문구를 각색해 보았다.

 

이애영씨는 제2의 “나루터‘를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싶어한다. 항상 긍정의 아이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도 마음에 와 닿는다. 새로운 동무 길라잡이 연숙희 대표와의 만남을 통해서 메뉴개발과 함께 사람 냄새가 나는 보문산의 명소를 꿈꾼다.

한잔의 술로 마음껏 기분이 up된 상기된 모습에서 필자 또한 이영애 대표의 젊었던 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인생이 ‘생로병사’라고 하지만 이속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한 ‘희노애락’을 하며 살고 있는지 자못 철학적인 답을 회피 한체 내일을 준비하는 프로정신을 느끼고,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하며 자리를 떴다. 겨울 하늘의 찬 공기가 입속의 하얀 온기와 함께 뽀얗게 뿜어져 나온다.

이영애 대표와 연숙희 주방장이 건강하길 기원하면서 보문산의 명소 ‘나루터’가 대전 시민들에게 오래동안 기억에 남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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