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마을’은 광주송정시장, 문화전당, 대인시장,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과 함께 광주의 대표적인 도시 관광지가 됐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팽귄마을’을 찾아 관광을 온 사람들이 많아 마을 주민으로서 기쁘고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의 펭귄마을이 전개되기까지의 이야기와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몇 장의 사진을 통해 추억해 본다.

펭귄마을의 주택은 대부분 1950년대 이후에 지어진 집들이다. 이곳은 골목이 좁아 차가 다닐 수 없고 겨우 두. 서너 명이 걸을 수 있는 좁은 골목들이 주를 이룬다. 화재가 나도 소방차가 들어가서 화재를 직접 진압하기 어렵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광주시에서도 도시재생구획으로 지정하여 도시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몰려드는 관광객들과 관광의 명소로 자리매김 되어 당초 예상대로 도시재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현재의 팽귄 텃밭은 도시재생계획에 따라 소방용 도로가 계획 중 이었다. 그래서 그 땅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이사를 나갔고, 빈 집터에 동네사람들이 농사를 지었다. 쌈 채소들과 야채들을 가꾸어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함께 풀과 잡초도 재거하면서 이웃과의 정을 나누는 소중한 추억의 공간이었다.

텃밭은 텃밭다워야 하는데 지금의 모습은 너무 인위적이다. 주민들이 가꾸어 온 텃밭은 아기자기하고 순수해서 좋았다. 지금의 모습(위 사진)은 너무 인위적이고 복잡하다. 소박하게 돌맹이 하나하나를 주어다가 울타리를 만들고 비뚤비뚤 구부러진 밭고랑이 정겨웠다. 울타리에는 봉숭아와 붓꽃을 심고 안쪽에는 마늘과 시금치 ,상추들이 있어서 보암직스럽고 먹음직스럽고 행복했다.

어느날 갑자기 농촌 진흥원에서 팽귄마을 텃밭을 꽃길로 조성한다고 포크레인이 동원 되었다. 주민들이 애써 만들어 놓은 텃밭을 갈아엎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그냥 보고만 있었다. 주민자치센터에 항의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 곳에 원두막을 짓고 수박과 참외를 심을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필자는 팽귄마을 공방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했었다. 공연도 간간히 했다. 주말이면 오카리나와 함께 합주도 했고,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골목 안에서 소심한 목소리로 불렀던 그 때 그 노래들을 추억해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듣고 함께 흥얼거렸던 소중 한 그 곳이 그 때가 생각난다. 지금은 도시 관광 사업 프로젝트로 많은 손길들이 골목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과거에 없었던 시설물들, 많은 작품들, 내가 살았던 과거에는 그저 시시한 골목이었고 힘없는 노인들과 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주정 대는 낮 익은 목소리, 개 짖는 소리, 부부 싸움하는 소리, 그리고 그곳에서 이웃들과 정담을 나누며 살았던 것, 그 추억들이 생각난다. 기타를 치고 노래했던 그 시절이 그립고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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