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담양담양사람들)/ 담양의 문화예술인(4)
기획특집(담양담양사람들)/ 담양의 문화예술인(4)
  • 장광호
  • 승인 2019.03.1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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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염색가 임춘옥

평범한 주부에서 천연염색 장인으로 ‘우뚝’
딸과 함께 '천연염색 교육장' 운영이 희망사항

▲임춘옥(천연염색가)
▲임춘옥(천연염색가)

임춘옥 천연염색가는 담양이 고향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귀촌을 생각하다가 가끔 들렀던 담양에 둥지를 틀었다. 애초 평범한 주부로 천연염색이 본업은 아니었지만 담양에 정착하면서 왠지 천연염색이 남은 인생의 본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배우고 익히면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다보니 어느덧 장인의 반열까지 오르게 됐다. 뒤늦게 천연염색을 배웠지만 전국의 내로라하는 공예대전에서 연이어 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의 진가도 인정받고 있다.

담양에서 안온함을 느꼈어요.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표현한 ‘수구초심’ 이란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가 되면 자기가 살았던 언덕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는 말이다. 동물도 그렇게 고향을 그리워 할 텐데 사람인들 오죽하랴.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보니 50% 넘는 분들이 귀향·귀농·귀촌하고 싶다는 결과가 나왔다. 표면적 수치상으로는 2명 중 1명이 시골살이를 꿈꾸는데 도시에서 태어난 분들을 제외하면 시골 출신 대다수가 시골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임을 엿볼 수 있다. 시골살이를 꿈꾼다 해도 고향이나 지인이 있는 곳을 먼저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임춘옥 천연염색가는 달랐다.

임춘옥 명인은 진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남편은 고흥 출신이다. 부부는 결혼 후 여수와 전북에서 잠깐 살았으나 주로 광주에서 살았다. 그들도 대다수 국민처럼 귀촌을 꿈꾼다면 고향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둘 다 바닷가를 끼고 살았으니 당연히 바닷가에 제2의 둥지를 틀고 싶었을 것이다. 남편은 고흥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고 그녀는 진도가 그리울지 모른다. 진도가 아니라면 친정이 현재 인천에 있으니 터전을 옮긴다면 인천과 가까운 곳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와 남편의 연고가 아닌 낯선 담양으로 터를 옮겼다. 그렇다고 지인이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런 담양에 터를 잡은 건 운명인지도 모른다.
“귀촌을 꿈꾸던 남편이 자주 귀촌하자고 했어요. 남편이 유통을 했는데 귀촌할 자리 물색 겸 겸사겸사 따라다녔어요. 담양을 자주 오갔는데 다른 곳과 달리 안온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담양으로 결정했지요.”
담양에 대한 느낌이 좋아, 남편이 꿈꾸는 귀촌 생활도 즐기고 공방도 만들고 싶어 그렇게 담양에 둥지를 틀었다. 담양에서 백양사 가는 쪽에 있는 월산면 홍암마을이었고, 2008년에는 온 가족이 담양으로 이사했다.

작업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그녀는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었다. 틈틈이 뜨개질을 했고 취미로 구슬공예도 만드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언니네 집에 놀러갔다. 언니는 천연염색을 하고 있었다.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한 터라 천연염색이 재미있어 보였다. 그녀는 채 1초도 되지 않아 천연염색에 ‘필’이 꽂혔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직업학교에 등록하여 염색을 배웠다. 그곳에서 1년 간 천연염색의 기초 과정을 배웠다. 재미를 느껴 열심히 배웠지만 기초를 아는 것에 불과했다. 더 배우고 싶어 신라대학교 전통염색연구소(현:한국전통염색교육원)를 통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각양각색의 천연염색 원단
*각양각색의 천연염색 원단

취미로 배웠지만 손재주 때문인지 팔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녀는 자신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천연염색에 뛰어들기로 결심을 굳혔다. 살고 있는 집에서 작업했는데 좁아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천연염색의 원재료는 자연에서 구해야 하는데 원재료를 집에서 보관하고 있자니 집이 지저분했다. 공방의 필요성을 느꼈다. 남편도 자주 귀촌을 언급했으니 자연스럽게 터를 알아보러 다니다가 담양에 반해 담양에다 둥지를 튼 것이었다.
공방이 생기니 세상을 얻은 듯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만들고 색상을 창조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몸이 힘들었다. 기계 염색을 하지 않고 전적으로 수작업을 한 탓이었다. 작업을 오래 하고 나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고, 눈이 침침했다. 몸은 방전된 듯 서 있는 것조차도 버거울 때가 많았다. 그렇게까지 작업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그냥 즐거웠습니다. 구상하고 만들어 내는 자체가 좋아,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처럼, 녹초가 되는지도 모르고 작업에 몰두했어요.”
그냥 즐기는 것과 즐기면서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녀는 그냥 즐겁다고 했지만 즐기면서 천연염색에 빠졌다. 거기에 힘을 얻어 2008년에는 ‘자연나드리’라는 간판을 걸고 공방운영을 시작 했으며 즐기면서 했던 결과는 다양한 수상으로 이어졌다. 2009년에 열렸던 제2회 대한민국 황실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더니 내리 3년 간 상을 받는 영예를 얻었다. 2010년에는 제3회 대한민국 황실대전에서 입선, 2011년에는 제41회 대한민국 공예품 대전 전라남도 대회 특선을 수상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전시회도 열었다. 2018년에는 제7회 대한민국 황실공예대전의 ‘초대작가’라는 인증도 받았다.

남편의 외조가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상을 받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사위원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심사하기에 결코 운만으로는 상을 받기 어렵다. 완성도가 떨어진 작품이라면 심사위원이 낙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작품이 우수하였기에 수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고 해서 온전히 염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귀촌을 꿈꾸었던 남편인데 퇴근 하고 나면 쉬지도 못하고 늘 제 일을 도왔어요. 저에게 크고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신선한 야채라도 마음껏 잡숫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텃밭에 채소를 심었는데, 장난이 아니더군요. 풀과 전쟁을 치르느라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풀 외에도 힘 든 건 또 있다. 체험장과 펜션을 겸하고 있는데, 관리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마음으로야 좋아하는 공방에만 전념하고 싶은데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겸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힘든지 딸에게 넌지시 물었다. 천연염색을 배우면 어떻겠느냐고. 당시 딸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손끝이 여물고 염색하기를 좋아해 공무원도 좋지만 공예가의 길을 걷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딸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천연 염색이 재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딸에게 수순을 밟아 나가라고 조언했다. 그녀에게 간단한 기초를 배웠으니 직업학교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딸에게 바로 신라대학교 전통염색연구소(현:한국전통염색교육원)에 입학할 것을 권했는데 딸이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딸에게 천연염색을 권했지만 선뜻 받아들이니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천연염색 초기에는 몸으로 때우느라 힘들었고, 현재는 대중화 되었다지만 인터넷에 너무 정보가 많아 천연염색 제품을 너무 가볍게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정성껏 만들었는데 중국산이 아니냐, 기계로 만든 게 아니냐, 가격이 너무 비싼 게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거든요.”
그럴 때면 속이 상하고, 딸에게 괜히 권했나 하는 후회도 생긴다. 그런 우려를 남편과 단골 고객들이 위로해주곤 했다. 고창, 전주, 해남 등 꽤 먼 곳에서 잊지 않고 찾아주는 고객 분들이 계시기에 시름을 덜 수 있었다.

천연염색은 막내딸과 같습니다.

▲천연염색 작품
▲천연염색 작품

그녀에게 자식은 딸이 유일하다. 유일한 혈육이니 금이야 옥이야 해도 모라랄 터다. 그래서 그녀는 딸만큼 천연염색에도 많이 사랑의 손길을 준다.
“천연염색이 막내딸과 같아요. 내리사랑이라고 하잖아요? 딸만큼 천연염색이 좋으니 자식과 같지요.”
그는 힘이 닿는 날까지 천연염색을 할 것이다. 주위에 지천으로 깔린 모든 것이 소재가 될 수 있으니 소재 구하기 쉽고, 화려하지 않지만 자연스러움이 넘쳐나고, 재염색이 가능하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녀는 눈을 뜨면 강아지와 고양이를 잠깐 보살피고, 야생화를 둘러보고 나서 식사를 마치자마자 상쾌한 기분으로 공방에 들어간다. 그녀와 딸이 의기투합하여 옷, 스카프, 이불, 방석, 모자, 가방 등 다양한 제품이 탄생되어 세상에 나온다.
이 제품들은 납품처로 나가고, 택배를 통해 전국으로 퍼질 것이다. 천연염색이 아무리 막내딸 같다지만 큰 딸도 중요하다. 딸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힘든 일 하지 말고 다른 일 찾아보라고 했다. 그때 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바라던 대로 나중에 입으로 풀어먹으려면 실전 경력이 필요한 거 아냐? 딸도 천연염색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딸을 위해 천연염색 교육장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책임의 무게가 얹힌다.
하지만 그녀는 두렵지 않다. 든든한 외조자 남편이 있고, 즐기면서 일하는 딸이 있으니 두려울 턱이 없다. 그러니 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녀와 그의 딸의 야무진 손끝에서 또 어떤 작품이 나올까. 천연염색이 마냥 즐겁다는 그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강성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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