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달 저자 최순덕
그 밤에
차가운 기운에 쏠려 물이 한 곳으로 기울었습니다
달이 붉게 차오르기 시작한 때부터였다고 기억합니다
제멋대로 눕혀진 마른 갈잎들 사이에서 잠시 걸린 바람
흰 발목 묶인 채 달 아래 섰습니다
차분한 그대 움직임이 달빛처럼 정갈하던 그 밤에
11월의 찬 서리가 강변에 내렸습니다
나무가 만들어 놓은 사람의 집
엉긴 치즈같은 삶의 고리들이 구푸려 들어앉고
어쩌면 초대받은 그대가
그대가 달의 아들로 태어나는 그 밤이었습니다
서걱서걱 밤의 한 귀퉁이가 寒氣에 잘려나가더니
이윽고 겨울이 노래보다 먼저 그네를 탑니다
눈에 가득했던 혼란스런 이야기
태생을 알지 못해 곤혹스럽던 손가락
언젠가 누군가의 자리로 뒤 바뀌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네 것과 내 것이 될 수 없는 경계
북적이는 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가을
분명 강물이 아님에도 출렁이는 계곡아래로
헛된 세월 한 묶음 몰래 풀었습니다
충분하지 않아 애닳던 사연들이 어쩌면 나무인 체, 바람인 체
아! 눈물
그림처럼 천천히 내 생애 위를 흐릅니다.
고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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