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역사문화연구소, 정읍지역 근,현대 민족운동사 발간 및 강의

사회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고성중 기자]동학역사문화연구소(소장 유종국, 전북과학대 교수)가 주관한 '정읍지역 근,현대 민족운동사' 발간 및 강의가 지난 15일 (사)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이사장 이갑상) 사무실에서 열렸다.

유 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책자 발간의 뜻은 근,현대 기간 동안 정읍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분야에 있어서의 역사적 사건을 고찰하여 위대한 민족운동의 정신과 정의로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사료의 발굴과 정리에 그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논문을 집필한 9명 중에 조광환, 유종국, 곽형주 세 사람이 발표자로 나서 차례로 강의를 진행했다.

조광환(연구소 부소장, 학산중 교사)는 '기해(己亥)정읍농민봉기'는 "1899년 4월 18일 정읍 입암면 왕심리에서 최익서를 중심으로 박정집, 손병규, 홍계관 등 농민 300여 명이 보국안민과 외세배격을 외치며 제2의 동학농민항쟁을 일으킨 사건"이라며 "갑오년의 역사만이 아닌 기해년의 역사도 바로 알 수 있게 기해농민봉기 120주년을 기념하는 상징조형물을 입암 왕심마을에 세울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유종국 소장은 '병오창의(丙午倡義)와 무성서원(武城書院)'에 관해서, "1906년(병오년) 6월 4일 정읍 칠보면 무성서원에서 면암 최익현 선생과 돈헌 임병찬 장군을 중심으로 의병 800여 명이 항일투쟁을 일으킨 거사가 병오창의이다"며 "면암과 돈헌의 병오창의는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민족을 노예로 만들지 않아야 하겠다는 구국의 일념으로 호남지방의 의병활동에 씨를 뿌렸다는 데에 그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곽형주(고사부리문화연구회 회장)은 '영주정사(瀛州精舍)와 민족운동'에 관해서, "1903년 정읍 흑암리에서 창암 박만환이 유교에 기반을 둔 '영주정사'라는 교육기관을 설립, 1만권의 책과 인쇄목판을 쌓아두고 6년 동안 후학을 양성했으며, 그의 아들 박승규는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한 '승동학교'를 세워 후학을 양성했다"며 "우리나라 근세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이 곳에서 배출됐다"고 밝혔다.

그 밖에 이진우(연구소 운영위원)은 '3.1운동과 박준승'에 관해서, "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은 임실출신으로 동학접주, 천도교 교구장을 역임했으며 1915년 정읍 산외면으로 이사를 하여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여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19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으며 선생의 묘지는 정읍 충렬사 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고 전했다.

송은숙(정일여중 교사)는 '정읍지역의 항일운동가'에 관해서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중 한말에 의병 운동을 전개해 건국훈장을 받은 정읍지역과 관련된 인물은 임병찬, 고용진, 이창호 등 27명이고,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관련 건국훈장을 받은 이는 박준승, 백정기, 나용균, 최민식, 유학규 등 29명이다"며 "정읍 지역에서는 병오창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의병활동이 시작됐으며, 정읍과 태인의 독립만세운동, 보천교, 증산교 등 종교 단체를 통한 군자금 모집 등으로 독립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김재영(전 정주고 교사)는 '일제강점기 보천교(普天敎)의 민족운동'에 관해서, "보천교는 1909년 정읍 입암면의 차경석에 의해 창시된 신종교로 한국종교 사상 유례 없는 극적인 흥망을 보여준 종교다"며 "한 때는 수 만명이 모이는 등 교세가 확장되자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고, 1923년 언론, 출판사업, 자급자족운동, 대중문화운동, 교육사업, 기산조합 활동 등은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으나 친일 행위와 사이비 종교라는 인식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박래철(정읍중 교사)는 '이승만의 정읍 발언과 박재표 순경의 환표폭로사건'에 관하여, '1946년 6월 3일 정읍을 방문한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공식으로 주장,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발언을 정읍에서 했으며, 또 하나의 사건은 1956년 8월 13일 도의원 선거 시 정읍 소성면의 투표함을 이송 도중에 사복경찰관이 투표용지를 자유당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바꿔치기한 일명 부정환표사건이다. 당시 소성지서에 근무한 박재표 순경(25세)이 "국민의 양심으로 이와 같은 사실을 보고 그대로 직장에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결연히 경찰직을 사직하고 국민 앞에 죄과를 범한 것을 사죄한다"라는 성명서를 가지고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사를 찾아가 사건경위를 증언함으로써 조직적인 부정선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당시에 비겁한 공무원들이 부정선거에 협조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나 젊은 순경 박재표씨의 양심적이고 용기 있는 행동은 놀랍고도 존경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라고 기술했다.

정승룡(전 정읍시 시의원)은 '정읍 민주화운동사(1980년 이후)' 발자취를 뒤돌아봤다.

1985년 카톨릭농민회정읍협의회(카농),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정읍민주청년연합회(정민청), 1988년 동신학원 정상화 투쟁, 최덕수 열사 분신, 1989년 정읍시민주화운동협의회 창립, 책사랑 서클, 전교조 설립, 1990년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1992년 녹두사랑청년회 창립, 1995년 정읍경실련 창립, 1998년 정읍시노동자협의회 결성 등을 실었다.

한명수(새정치민주연합 도당 고문)은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탄생 비화'에 관하여, 1928년생인 한명수 고문은 "동학혁명은 지구상에 가장 위대한 인간해방의 발상이다. 동학혁명은 나의 이념적 종교다"라는 신념으로 1956년 정읍지역 각계인사 14명과 함께 '동학혁명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킨 후 수년 간 활동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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