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간의 경계를 허물어야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하다

 

주인공이 선반으로 커피그라인더를 가공하는 모습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스티브잡스가 떠올랐다. 훤칠한 키에 짧게 깍은 머리,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그가 개발한 커피 그라인더에 대한 설명회 때였다. 프레젠테이션은 열정적이면서 간결했다. 학창시절에는 전공공부보다 제품개발이나 자동차 튜닝 등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커피 마니아였다. 시중의 커피그라인더는 맷돌 형식의 1단구조라서 분쇄를 할 때 생기는 마찰열 때문에 원두 본래의 맛이 변질되었다. 마찰열 발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그라인더를 개발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찰열을 최소화한 2단 분쇄구조의 그라인더를 개발했다. 특허를 출원했고 직접 선반과 밀링을 돌려 시제품까지 만들었다. 창업을 하고 싶었지만 절차를 잘 모르겠고 창업자금도 부족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만이라도 그를 돕고 싶었다.

주인공이 개발한 전동형 커피그라인더 이미지

중소기업청 예비창업자 모집공고를 보고 창업선도대학으로 지정된 모 대학 창업지원단을 찾았다. 선정되면 창업자금과 교육, 멘토링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른바 국책사업이다. 응모절차에 대해 설명을 듣고 우리가 개발한 아이템을 설명했다. 지원단에서도 좋은 창업 아이템이라며 스카우터로 위촉된 변리사까지 소개해 주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일이 순조로운 듯 보였다.

 변리사 역시 개발 제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특허까지 출원했다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창업지원단에 제출했다. 창업자금으로 1억 원 정도로 추산했다. 그와 함께 창업에 동참할 사람들이 3천만 원을 출연하고 정부지원금으로 7천만 원을 신청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계획서를 검토하던 담당자가 갑자기 계획서를 다시 작성해야할 것 같다며 난색을 표했다. 기술 분야 창업 지원금은 최대 1억 원까지 가능하긴 한데 기술 분야 지원자격 요건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자연과학계열 석사 학위 이상자’라는 요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경제학과 출신이다. ‘아니,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경제학과 출신이라서 안 된다니!’  다시 스티브잡스가 떠올랐다. 그가 자연과학계열의 학위를 갖고 있었던가?

창업 지원자 모집공고

<예비창업자 모집공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자격요건이다. 학자에 따라 정의를 달리하기도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요체는 ‘초 연결과 지능화’다. 초 연결은 모든 경계를 허무는 데서 시작한다. 당연히 학문 간의 융·복합도 필수적이다. 기술창업이라고 기술만 필요한 건 아니지 않는가? 기술에 디자인, 마케팅, 경영 분야까지 결부되어있기에 창업이야말로 종합예술이 아닐 수 없다. 

  ‘차별’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이제까지 우리사회는 여러 가지 차별이 존재해 왔지만 이를 개선하려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학벌이나 경력 등을 따지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도입했다. 게다가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 목소리 또한 높다. 이 기회에 문·이과의 장벽도 허물어야한다.

  계획서를 수정하면서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차별에 대한 분노까지는 아니었으나 얼마간의 좌절과 실망은 읽을 수 있었다. 그가 포기하지 않도록 다독여야 했다. “문과출신이라서 기술창업을 못한다면 공대출신인 나는 문학적 에세이를 써도 안 되고 출판사 창업도 못하는 거 아냐?” 그는 나에게 ‘썩소’에 가까운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계획서는 기술창업을 일반창업으로, 정부지원금은 7천만 원에서 3천만 원으로 수정해서 제출했다. 서류심사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며칠 후 있을 발표평가는 그의 몫이다. 선정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그를 계속 응원하고 싶다. 문·이과의 장벽을 비롯해 아직까지 잔존하는 많은 차별이 없어지기를 소망한다. 

<주인공이 개발한 프리미엄 커피그라인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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