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소식으로 세상을 밝히는 정기자, 네번째 이야기
-삶 속에서 만나는 주님

정진철
정진철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둔 아내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민혜(첫째 아이)를 수술해서 낳았기에 둘째도 당연히 수술해서 낳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몇 명의 자매님들이 아기를 낳는 부분에 하나님 앞에 은혜 입은 간증을 들으면서 나도 하나님 앞에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사도행전 8장 1절에 스데반이 죽임 당함을 사울이 마땅히 여기는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머물면서 아이 출산하는 문제를 두고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는 내 마음이 보여요. 삶 속에서 인간적인 생각을 따라 당연히 여기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요. 둘째아이 출산하는 것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자연분만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이런 일 앞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면해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한숨이 나왔다. 왜냐하면 첫째아이 출산할 때를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청년 때, 교회 안에서 붙은 별명은 '황소' 였다. 황씨 성을 가졌고, 눈도 크고, 다른 자매들보다 힘도 세었기에 황소라는 별명은 딱 맞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결혼을 한 후 나도 그런 아내를 보며 한편 든든해하기도 했다.

감기나 몸살 정도는 약도 먹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내는 아내의 모습과 감기 낌새만 있어도 약을 먹고 몸조심하는 나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그런나를 보며 아내는 ‘감기 하나도 못 이기냐?’며 핀잔을 주기가 일쑤였다. 건강에 대해 자신 있어 하는 아내에게 나는 "당신도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어서 건강한 거지, 만약 은혜를 입지 못한다면 당신도 건강을 잃을 수 있어!' 하고 대꾸했다.

그러면서도 병 앞에 너무 두려워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첫째 아이 출산을 한 달 앞두었을 때, 아내는 교회 근처에 있는 어느 병원에 서 출산하겠다고 했다. 그 병원은 출산만 하러 오는 산모에게는 수술을 시킨다는 좋지 못한 소문이 있어서 아내에게 다니던 병원에서 출산하라고 애기했지만, 교회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아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내는 진통을 시작하였고, 병원에서는 첫아이라며 무통분만 하기를 제의했지만 거절했다. 아내의 신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거의 실신할 정도까지 되었다.

의사는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는다며 수술을 권유했다. 나는 더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아내는 고통을 참지 못해 울부짖었고 의사는 당신이 책임이라며 각서까지 쓰라고 나를 다그쳤다.

순간 의사에 대한 불신이 일어났고, 건강에 대해 자신 있어 하던 아내가 아이도 제대로 낳지 못하는 것이 불평스러웠다. 첫째아이를 수술하면 둘째아이도 수술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떻게든 자연분만하기를 원했다.

시간은 새벽 2시. 결정은 해야 하는데 내 주변에는 상의할 부모님도 형제 자매님들도 없고 오직 혼자였다. 너무나 막막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부르짓기도 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수술하지 말고 강행하고 싶었지만, 한편 마음에서는 두려움이 있었다.

‘너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았냐? 믿음도 없으면서 믿음을 경험하려다 아내를 잃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아?’

그 순간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건강에 대해 자만하지 말라고 충고해 주던 나였는데, 나도 어느새 아내의 건강만 믿고 순산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 저는 믿음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생명을 담보로 믿음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차라리 부끄러운 자로 남겠습니다."

나는 수술하기를 결정했고 아내의 배를 찢을 때 내 마음도 찢어졌다. 또 아내가 건강하다는 생각도 찢어졌다. 그렇게 얻은 아이가 민혜였다. 아들이 귀한 집안에 딸을 낳았다고 상심하는 아내에게 나는 패전병과 같은 내 마음을 숨기고 아내를 위해 꽃다발을 선물해 주었다.

2년이 지난 지금, 둘째 아이를 자연분만해서 낳자는 아내에게 나는 얘기했다.

"당신이 하고 싶다고 다 돼? 당신에게는 그것을 결정할 결정권조차도 없잖아!

그 일을 진행하자면 먼저 당신 보호자인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고, 내가 결정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담당 의사의 도움도 입어야 하는 것이고, 의사가 아무리 도와 주려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헛수고 밖에 안돼. 혹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당신은 죽을 수도 있는데 죽을 준비는 돼 있어?"

내 마음에도 첫아이를 수술해서 낳았기에 둘째 아이도 수술해서 낳는 것을 마땅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에 무모한 시도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신앙하는 사람으로 혹시나 교회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전도사님이나 형제님들에게 물어봤더니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라고 했다. 그 날 이후 며칠 동안 우리 부부는 하나님 앞에 그 일을 두고 기도하게 되었다.

하루는 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가 겨루는 내용을 읽었다.

바알 선지자들은 하루종일 몸을 상해가면서 바알을 찾았지만 응답이 없었다.

엘리야는 제단에 물을 붓고 또 붓고 또 부어서 바닥까지 흘러 넘치게 해 놓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불로써 응답해서 도랑의 물을 다 핥아 버렸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휘발유라도 뿌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불로 응답받았다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엘리야가 물을 뿌려 인간적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했을 때 그 일을 이루신 하나님이 더 크게 영광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첫째아이를 수술해서 낳았는데 둘째아이를 자연분만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겠다!'

비로소 내 마음도 마땅히 여기는 마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자연 분만을 하겠다고 부모님께도 알렸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알렸다. 한편 염려하는 음성도 들렸다. 통뼈를 가진 산모는 자궁이 열리지 않아 옛날에는 많이 죽었는데 병원진단을 받아보고 시도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첫아이를 출산한 병원은 몇 차례의 부도로 완전히 문을 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가기로 한 병원은 종교재단이기에 웬만하면 자연분만을 유도한다는 얘기를 듣고 아내에게 가보라고 권했다. 진단을 받고 온 아내는 '요즘은 의사들의 파업으로 진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 했다. 병원을 의지했던 마음이 내려지게 되었다.

출산예정일을 일 주일 앞둔 주일 아침에 아내는 진통을 시작했다. 불안해하는 아내는 전도사님께 안수라도 받고 병원 가기를 원했지만 예배시간 때문에 바로 입원하게 되었다.

오전 예배를 마치고 전도사님, 사모님과 함께 병원에 갔다. 전도사님은 "임산케 하신 이가 해산하는 힘을 주시나니..." 라는 말씀을 전해 주시며 아내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셨다.

​분만대기실에 다른 산모는 진통이 와도 잘 참는데, 내 아내는 유달리 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했다. 때때로 팔과 다리에 쥐가 나서 주물러 주기도 했다. 고통당하는 아내가 애처로워서 무통분만이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전도사님은 기뻐하지 않았다. 출산할 때 엄마도 힘써서 아이를 낳으려 하지만, 아이도 그에 못지않게 힘이 생겨서 나오려고 애쓴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믿음을 가지지 못했지만 믿음을 가진 분이 옆에 있기에 큰 힘이 되었다.

아내는 너무 괴로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사모님은 소리만 지른다고 아이를 낳느냐며 크게 심호흡을 해보라고 했다. 아내는 사모님의 말씀대로 따라하게 되었고 소리도 지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을 본 나는 믿음의 삶도 이와 같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출산을 먼저 경험한 사모님이 늦게 경험하는 아내에게 어떻게 할 것을 가르치듯이. 하나님 앞에 믿음을 먼저 경험한 인도자에게 마음만 열고 있으면 쉽게 믿음을 경험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 지난 후 아내는 자연분만에 성공하게 되었다. 강도 만난 자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그를 도와줄 선한 사마리아인이나 주막주인을 만난 것처럼, 아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사모님이나 의사, 간호사의 도움을 입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모든 이의 마음을 흡족히 하시며 자연분만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일어났다

둘째아이도 딸이었다. 아들이 아니어서 우울해 하는 아내에게 하나님이 최근 나에게 주신 마음을 전하게 되었다.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 같이 하며"(고전 7:30)

​구원받기 전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즐거워했는데 대학생활은 내가 상상한 것같이 낭만적이지 못했다. 하나밖에 없던 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혼자 짊어진 자처럼 슬퍼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복음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기쁜 일이 있으면 그 것이 전부인 것처럼 기뻐하며, 슬픈 일이 있으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슬픈 자처럼 괴로워하며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난 후 하나님이 바꾸시면 지금 우는 자도 울지 않는 자가 될 수 있고, 지금 기뻐하던 자도 기뻐할 수 없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일들 앞에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어떻게 인도하실지에 대한 소망이 조금씩 일어나게 되었다.

두 딸의 아비가 된 지금, 한편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지만 하나님이 이 일로 도리어 기뻐할 수 있는 일을 허락해 주시겠다는 마음이 있다.

아내는 아기를 출산하면서 자신이 정말 연약한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높아있는 마음을 낮추시며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이끄신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기쁜소식 2001년 3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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