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만세운동 제105주년 기념 광주3·10독립 만세운동 재현행사

지난 38일 오후 광주수피아여고와 3·1만세운동길, 양림오거리에서 재현행사와 더불어 시민과 학생 등 천여 명이 참여하는 만세행진 등 3·10독립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있었다. 행사가 개최 된 수피아여학교는 1919310일 광주만세운동 군중의 맨 앞에서 만세운동을 이끌다 일본헌병에게 왼팔이 잘려나간 중에도 오른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당시 수피아여학교 학생, 의혈지사 윤형숙 열사를 비롯한 23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 1937년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를 당하는 아픔을 겪은 학교이다. 하여 선배이자 독립운동가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행사는 독립운동 후손들과 후예들의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삼창으로 그날의 울림을 재현, 대형태극기를 필두로 시민, 학생들이 당시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수피아여고 만세운동 기념동상에서부터 출발한 만세행진은 거사 5일전 독립운동을 모의했던 광주 만세운동의 발상지 남궁혁 장로 자택이 있던 곳을 지나, 아리랑을 노래하며 행진했던 아리랑고개를 방탄소년단(BTS)이 삼일절 기념으로 제작한 아리랑을 부르며 지나, 전교생이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25명이 투옥된 독립운동의 산실 옛 숭일학교터와 양림동의 상징적인 도로 양림오거리로 이어졌다. 광주3·1운동 기념사업회는 기념사업회 <1회 광주3·10독립 만세운동 >을 올해 처음으로 제정하여 첫 수상자로 광주의 아버지, 광주 정신의 지주 독립운동가 오방 최흥종선생에게 서훈했다.  

광주3·1만세운동기념사업회 제공
광주3·1만세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오방 최흥종(1880~1966)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및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며 기독교적 가치관을 직접 실천하는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으로 광주 근대사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19192월 하순. 독립운동준비를 위해 광주에 온 김필수 선생을 만나 38일 광주에서 3.1만세운동의 거사를 결정하고 총책임을 맡는다. 광주거사를 협의하기 위해 상경길에 나선 최흥종 선생은 대한문에서 만세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14개월의 옥고를 치뤘다. 그는 신간회, 건국준비위원회 활동과 광주YMCA설립, 신사참배 반대와 함께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또한 봉선리에 나병원을 설립하여 한센병과 결핵퇴치등 사회복지운동에 힘썼으며, 무등산에 삼애학원을 설립하여 농촌계몽 운동에도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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