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골 초상화드골은 왜 언론인과 언론사를 모두 처단했나?
드골 초상화
드골은 왜 언론인과 언론사를 모두 처단했나?

한국 사회에 언론사가 3만여 개를 추격 중이다. 노래방이 4만 5천개, 교회가 6만여 개, 머지않아 언론사가 1위를 탈환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무슨 이유로 언론사가 많아지는가?

민주사회가 반대로 가는 사회에서 왜 언론사는 성장하는가?한국시민기자협회, 한국저널리스트대학교육원 설립자 고성중
민주사회가 반대로 가는 사회에서 왜 언론사는 성장하는가?한국시민기자협회, 한국저널리스트대학교육원 설립자 고성중

민주사회가 반대로 가는 사회에서 왜 언론사는 성장하는가?

언론은 객관적 사실을 써야 하는 것이 책무다. 언론사가 모두 주관적인 돈벌이에 집착하여 사회를 망가트리는 민주사회를 폭삭 망하게 만드는 1순위 역할에 돈이 최고인 사회가 조성되고 있다.

많이 배운 지식인이 사회를 망치는 구조에서, 언론이 권력과 금력에 낙지 빨판을 대고 시민의 피를 빠는 공리사회의 적이 되는 사회현상에 시민은 할 말을 잃어간다.

드골은 대통령이 되어 독일군과 한편을 먹었던 언론인들을 모두 처단했다.

민주주의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왜 언론인과 언론사를 모두 처단해야 했을까?

샤를 드골 [1890.11.22 ~ 1970.11.9.] 80년을 살았다.

프랑스의 군인·정치가. 알제리민족자결정책, 알제리 독립 가결로 알제리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프랑스 경제의 가장 큰 장애를 제거했다. 드골 체제를 일단 완성시킨 후 나고 자란 고향으로 가서 살았다.

그곳이 박물관이 됬었다.

샤를 드골 기념관은 프랑스 북동부 샹파뉴아르덴 주 오트마른 데파르트망의 콜롱베-레-되-제글리즈에 있는 기념관이다.

이름 그대로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샤를 드골 (Charles de Gaulle, 1890~1970)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2008년 개관했다.

드골은 2차 세계대전을 지휘한 프랑스의 군인이자 총리와 대통령을 지낸 정치인이었다. 전쟁 때에는 특히 전차전 지휘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전쟁이 끝난 뒤 총리를 거쳐 1959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정권을 잡았을 때 나치 독일에게 협력했던 언론사와 지식인들을 심판대에 올리는 등 가차 없이 과거사를 청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위대한 프랑스’를 기치로 핵무기 개발, 나토의 탈퇴, 미국의 베트남 전쟁 반대, 중공의 인정 등 미국과는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이끌었다. 2005년 프랑스 국영 2TV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샤를 드골 기념관이 세워진 건물은 드골이 1934년 구입한 집으로, 그가 여생을 보낸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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