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저널리스트대학교육원 일본교수회 부학장 강신영/한일문화교류학 교수

한일문화교류학 강신영(姜信英 ) 교수
한일문화교류학 강신영(姜信英 ) 교수

 

∼「노포(老鋪) 강국」 일본 노포 기업의 비밀 ∼

일본에는 창업 100년, 200년이 넘는 노포 기업이 부지기수로 존재한다. 제조업 강국으로 알려진 일본과 독일은 100년 기업이 각각 3만 곳, 1만 곳에 이른다. 그중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578년 백제에서 건너온 유중광(柳重光)이 세운 오사카의 건축회사 곤고구미(金剛組)다. 41대에 걸쳐 14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일본 증시 상장사 중에는 스미토모금속광산(1590년), 요메슈제조(1602년) 등 수백 년 업력을 자랑하는 업체가 즐비하다. 반면 한국에서 100년 이상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은 두산, 동화약품, 신한은행 등 10여 곳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기업인들은 “한국도 일본·독일처럼 제조 중소기업이 산업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기업인들이 대대로 가업을 이어가며 책임 있는 경영을 하기 어려운 시스템이어서 100년 기업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국제 경쟁의 맥락에서 볼 때, 전통과 신용을 바탕으로 한 부가가치와 브랜드파워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오래된 노포기업들은 경영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흔히들 노포라고 하면 대를 이어 내려온 장수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 존속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으로부터의 신뢰와 지역사회에서의 높은 평가일 것이다. 2019년 제국데이터뱅크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는 창업 100년이 넘는 가게와 기업들이 약 3만 3000개에 달하며, 그 중 200년이 넘는 가게와 기업은 약 4000개에 달한다고 한다. 노포기업의 수로는 일본이 전 세계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전통 있는 기업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왔다. 최근 100년만 보더라도 전쟁(제1차, 제2차 세계대전), 금융-경제 위기(거품 붕괴와 리먼 쇼크), 자연재해(고베 대지진, 동일본 대지진), 세계적인 전염병(신종 코로나19 사태) 등을 그때마다 극복해 왔다. 즉, 전통 있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시대와 환경의 변화 속에서 파산을 피하고 오랜 기간 살아남은 조직으로서 배울 점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영리기업이면서도 단기적 이익보다는 장기적 생존과 영속성을 중시하고, 지역사회와의 조화와 상생,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자세가 강하다는 특징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사회와 경제의 지속가능성,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 ESG 등이 기업 경영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로 주목받고 있지만, 일본에는 오미상인(近江商人)의 상술의 극치인 ‘산포요시’(三方良し)를 비롯해 오래전부터 이러한 사상과 문화가 존재해 왔다. ‘산포요시’란 사는 사람, 파는 사람, 그리고 세상이 다 같이 좋아야 한다는 뜻이다. 오미상인들은 에도시대에 머리에 갓을 쓰고, 줄무늬 가방을 둘러메고, 어깨에는 짐을 앞뒤로 나눠 짊어진 저울을 메고 다니면서 활약했다. 16세기 후반에 등장해 오사카상인, 이세상인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상인으로 성장했는데 판매자와 구매자는 물론 그들이 속한 사회까지 모두 만족시키는 기발한 상술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함께 중시하는 전통 기업을 중시해 온 이러한 사상은 일본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전통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가업=가족기업’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는 몸집을 키우기 위한 투자와 장기적인 생존을 중시하는 경영 태도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인구 구조는 가업의 존속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후계자 부재이다. 많은 전통 기업 경영자들이 고령화되어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스타트업에 의해 인수되어 전통의 명맥을 잃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 일본 전통기업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전통 기업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 혹은 설령 전통기업이 가업으로 존속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회문화적, 경제적 가치를 일본 사회로 계승할 수 있을 것인지가 향후 일본 사회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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