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功보다는 역사적 사실과 팩트에 의하지 않고
늘 친일파 반민족 독재자 등의
부정적 폄훼 하에 어두운 過만 부각하는 내용만 듣고 성장하였음을'

[건국전쟁! 더 버스 오브 코리아 The Birth of Korea]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음이 그 얼마나 행운인 줄 아십니까!"

"우리는 자유대한 국민임이 그 얼마나 자랑스러운 줄 아십니까?"

"우리는 둘로 나누어진 한반도 땅, 박정희 김일성 두 지도자 하에서 박정희 대통령님의 탁월한 리더십 지도력 아래 년 10% 이상 고도성장의 경제발전 등 그 얼마나 영광인 줄 아십니까?"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늘 투쟁만 앞서는 사람들, 북한땅에서 단 일주일만 살으면 자유의 소중함이 어떤것인지, 국가의 소중함을 무엇인지 스스로 깨우치는 시간이 될것입니다."

​20년 前 북한땅 개성공단에서 3년 동안 먹고 자며 북한 출신 여직원과 함께 근무 북한 체제를 직접 체험한 입장에서, 격주 주말 오후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유 대한민국으로 입경 후 만나는 동료나 친구 등과 소주잔을 부딪치며 늘 했던 말들이다.

 끝까지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죽으면 죽었지 이 나라를 떠날 수가 없다. 
 끝까지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죽으면 죽었지 이 나라를 떠날 수가 없다. 

 

 

오늘 '建國戰爭' '더 버스 오브 코리아'(The Birth of Korea) 다큐멘터리 영화를 시청하고, 박정희 대통령님의 '잘 살아보자 하면 된다'의 신념으로 오늘 날 G7 대열에 진입 한것도 따지고 보면 위대한 건국대통령 이승만 대통령님이 계셨기 때문임을 정확히 인식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이다.

​솔직히 이승만 대통령님 대해 아는바가 많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동작동 국립묘지 방문시 몇번 추념했던 시간 외 아쉽게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님에 대해 "功보다는 역사적 사실과 팩트에 의하지 않고 늘 친일파 반민족 독재자 등의 부정적 폄훼하에 어두운 過만 부각하는 내용을 많이 듣고 성장했음이 사실이다. 그 過의 원천 주장이 김일성 정권에 의한 시작이었으며 역사적 맥락과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추종세력 건국 이승만대통령님의 공을 지우려는 자들의 세뇌였음을 정확히 인식한 소중한 기회였다.

특히나 1945년 해방 후 북한은 공산주의 나라, 남한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경제 번영과 선진국의 길로 들어선 자유 대한민국 국가로 같은 언어, 같은 민족, 같은 형제였던 하나의 나라가 소련에 의한 분단국가가 된 역사적 사실, 지난해 제주 경제인 포럼에서 당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원동력은 농지개혁을 통한 빈부격차를 해소에서 시작되었다고 특강을 하셨는데 그 개혁조치가 이승만 대통령이었음을!​

자유의 횃불을 드는 이유.....
자유의 횃불을 드는 이유.....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이승만 대통령님은 뉴욕을 방문하셨고 맨해튼 '영웅의 거리'에서 신생국 대통령에 대한 카퍼레이드 하는 모습에서 미국은 독립을 위해 건국을 위해, 투쟁 또 투쟁한 이승만 대통령님을 인정하였음을 당시의 뉴스 다큐멘터리 본 영화의 팩트를 통해 이해하면서 이제 반대론자들은 더 이상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한학 공부 후 미국 죠지워싱턴대, 하버드대석사, 프린스턴박사 등 수학 후, 나라의 독립은 미국을 움직이는 정치 수뇌부임을 인식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그들의 인식을 바꾸게 하는 등 명석한 두뇌로 오직 독립운동 최전선에서 활약하신 분, 나라사랑 애국애족 상해정부에서 항일운동과 반공정신, 정전 후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에서 전쟁 포로에 대해 미국과 협상하지 않고 본인들의 희망대로 선택권을 부여 석방했던 일,

​오늘날 든든한 한미동맹, 대한민국이 공산주의 세력 침략으로부터 안전하게 지낼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당당하게 성장을 만든 한미 상호방위조약, 6.25 전쟁 후 경제 원조 등 수많은 악조건하에도 미국과 협상을 이끌어낸 일 등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님이 아니고는 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이 나라 경제와 국가안보에 디딤돌 초석을 딛게 만들었던 대통령이셨음을 그래서 다큐영화는 영화의 제목을 '건국 전쟁'이라고 작명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역사의 중심에 이승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중심에 이승만이 있었다

 

교육발전 측면에서도 깊은 생각을 갖게 한다. 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을 일일이 찾아 교민을 격려하시며 교육에 필요성을 역설하셨다. 특히 여자아이를 낳으면 길거리에 버려져 고아가 된 아이들을 모아 학교를 세워 공부시키는 등 여성에게도 남녀 똑같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참여 확대와, 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 부여 등 그것은 오직 이승만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또한 영화에서는 옷가지와 트렁크 두개 들고 온 이승만 대통령은 돈이 없어 불가피하게 교민집에서 검소하게 사신 모습, 그동안 하와이 한인사회의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업회의 요청에 대한 이상한 사람들의 흔적 지우기, 각국의 건국 대통령에 대한 동상 등 추념사업이 그리 활발함에도 오직 매도만 했던 나쁜 사람들의 정치모습에서 다행히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부정적 인식의 이승만 건국대통령님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수 있는 중요한 다큐 영화였다고 판단되기에 기억나는 대로 기술해 본다.

서두에 북한 땅에서 숙식하며 그들의 체제에 대해 목격했고 고도성장기 취직을 하고 저축을 하며 아이들 키우며 오늘날 G7대열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의 무한한 자긍심을 간직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삶을 영위함의 가장 기초는 시발은 초석은 오직 건국 이승만 대통령이었음을, 왜 그들은 그렇게 過만 부각시기고 부정하였는지, 오늘 이승만 대통령님의 활동이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투쟁이었음을 인식하게 한 영화 '더 버스 오브 코리아'(The Birth of Korea)는 국가건설 전쟁이었음을 꼭 아이들 손잡고 감상하시기를 말씀드려 본다.​

이승만 건국대통령님!

이제 우리들의 이승만 대통령님은 외롭지 않습니다.

전임 대통령의 자제분들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았고 국민들도 한마음으로 동화되고 있습니다.

광화문 옆 숭인동에 건국대통령님의 기념관도 건립할 것입니다. 늘 평안하시길 기원드리며 '건국전쟁' 영화에 잔잔히 삽입된 대통령님이 좋아하셨다는 노래 '매기의 추억'과 동요 '반달' 가사 한마디 적어봅니다.​

'추억 어린 경치를 바라보려고 오늘 나는 언덕에 올라가 보았소, 매기. 개울과 낡은 물레방아, 먼 옛날에 두 사람이 서로 얘기를 나누던 그곳에 가장 먼저 피는 데이지 내음 풍기는 곳. 푸르른 나무는 언덕에서 사라졌지만, 개울의 흐름도 물레방아도 그대와 내가 젊었을 때 그대로였소.

지금은 늙어서 백발이 된 두 사람, 인생의 시련도 종말이 가깝군요. 옛 나날의 노래를 부릅시다.두 사람이 젊었던 무렵의 노래를. (매기의 추억)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반달)'

가까운 날 동작동 국립현충원 이승만 대통령님의 묘소를 찾아 큰절 올릴 생각이다.​

박정희 기관차는 이승만의 레일 위를 힘차게 달렸다. 
박정희 기관차는 이승만의 레일 위를 힘차게 달렸다. 

끝으로 영화를 만든 김 덕영 감독께서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 옮겨본다​

"2021년 초부터 약 3년에 걸쳐 '건국전쟁'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 며느리 조혜자 여사를 포함한 주변 인물과 국내외 전문가들의 인터뷰 등으로 구성됐다. 김 감독은 미국 주요 도시와 하와이 등 이 대통령의 행적이 깃든 곳을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대한민국을 건국한 세대에 '감독으로서 마음은, 한마디로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건국 세대 전체에 대한 죄송한 감정이었죠.'라고 평하셨다.​

페북의 어떤 분은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계시지 않았다면 혹은 초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 나라와 우리 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며 국운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라고 평하셨다.

북한 땅, 개성현지에 3년간 체류한 사람으로써 건국 이승만 대통령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경제발전 박정희 대통령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자랑스러운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은 어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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