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체면에 죽고사는 사무라이 정신

목숨보다 체면에 죽고사는 사무라이 정신

한국저널리스트대학 일본 교수회 부학장/전통발효식품학 교수 강신영한국전통음식학술연구소,자르끄르 요리연구소  대표 /전통발효명인  제2023-명인-0086
한국저널리스트대학 일본 교수회 부학장/전통발효식품학 교수 강신영 / 한국전통음식학술연구소,자르끄르 요리연구소 대표 /전통발효명인 제2023-명인-0086

일본이란 국가는 체면과 명분을 목숨처럼 중시하는 사무라이가 지배했던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체면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태평양전쟁의 서막을 열었던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의문이 남아있다. 왜 일본은 질게 뻔한 전쟁인줄 알면서도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미국에 무모하게 도발했을까하는 점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국은 일본의 기습공격에 대해 거의 준비를 하지않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은 일본이 이기지못할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며, 실제로 미군의 레이더에 일본 항공기가 포착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애써 무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일본이 그토록 무모한 전쟁인줄 알면서도 미국을 공격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일본의 체면을 손상케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80%정도 석유수입을 의존하고 있었고, 중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석유는 생명수와도 같았다. 미국은 중국을 침략한 일본을 압박하며 석유수출 금지와 해상을 봉쇄하는 강수를 둠으로써 일본을 극도로 자극했다. 석유를 공급받을 수 없게된 일본으로서는 전쟁이 불가능했으며, 전쟁에 패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사실이었다.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장기화되면서 궁지에 몰린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해상봉쇄 조치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조치였고 체면을 손상당한 일본은 이대로 앉아 죽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전쟁이라는 도박에 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으로 사무라이의 좋지못한 습성이 나타났는데 국민의 안위를 생각하기 보다는 개인의 체면과 명예를 앞세운 결과가 전쟁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전함 야마토함(大和艦)이 최후를 맞이하는 과정에서도 체면과 명분을 우선시하는 일본해군의 적나라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일본 해군 장교중에는 야마토함의 출동에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했는데 이유는 거대전함 야마토함이 미군의 공중공격에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군 수뇌부는 이를 무시한채 “야마토함이 온존하게 보존된채로 전쟁에 패한다면 해군의 체면이 걸린 문제다”라며 출전을 강행했다고 한다. 예상한 대로 출전의 댓가는 파국으로 돌아왔는데 야마토함은 처참하게 침몰했고 2,700여명의 군인들은 수장되었다. 일본군은 1905년 쓰시마해전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한 이후 전함 중심의 해군전략을 고수하고 대형 전함 건조를 무모하게 밀어붙였다. 1941년 12월 길이 263m, 폭 39m에 달하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인 야마토함을 완성했는데 배수량에서 미국의 아이오와함, 독일의 비스마르크함보다 20%이상 능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야마토함은 2차대전 말기인 1945년 오키나와전투에서 미국 전투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당시 해상전의 주력은 전함이 아니라 항공모함의 함재기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거함거포(巨艦巨砲)주의’의 상징인 야마토함은 전투기의 도움을 받지 못하자 단지 거대한 고철 덩어리게 불과했다. 이처럼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허황된 체면과 명예를 내세운 나머지 꽃다운 나이의 젊은 군인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일본인들의 마음속에는 전함 야마토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역사소설과 오락게임, 영화 등에서 이 전함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는 사무라이의 DNA를 물려받은 일본인들의 체질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일본 민방 TBS에서 방영되어 최고 시청율 42%를 기록했던 「한자와 나오키」(半沢 直樹)란 드라마가 있는데 직장내 파벌간 암투를 리얼하게 묘사해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 매년 높은 시청률로 유명한 NHK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의 시청률이 40% 전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일본 국가대표 본선 시청률이 40%대임을 감안하면 이 드라마가 얼마나 높은 인기였는지 짐작할수 있다. 복수를 위해서 메가뱅크인 舊 산업중앙은행(現 도쿄중앙은행)에 입사한 나오키는 엘리트의 대명사였던 은행원이 되어 남부러울 게 없었지만 버블경제의 붕괴와 함께 은행원 생활이 숱한 우여곡절을 겪게된다. 자신의 복수와 은행원으로서 출세를 위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망을 지닌 주인공이 은행내부의 파벌 다툼과 비리에 맞서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나가는 줄거리가 리얼하게 묘사된 드라마이다. 드라마속 나오키가 남긴 명대사가 공전의 히트를 쳤는데 그것은 “당한 만큼 반드시 2배로 돌려준다”(やられたらやり返す)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상대로부터 굴욕을 당한 사무라이가 자신이 당한 만큼 철저히 응징한다는 사무라이의 근성을 나타낸 것으로 마치 주인공이 샐러리맨 사무라이같은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일본사회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에도시대 사무라이가 지녀야 할 덕목가운데 가장 소중히 내세운 것은 명예를 목숨보다 무겁게 여기고 체면이 손상되었을 경우에는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되갑아 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는 지금도 일본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상대방의 체면을 훼손하는 행위로서 욕설을 들 수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일본사회는 우리와는 다르게 상대를 모욕하는 욕설과 관련된 단어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일상에서 그다지 욕설을 들어본 적이 없고 TV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에서 가벼운 욕설은 들어보았겠지만 실생활에서는 거의 들을 기회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껏해야 「치쿠쇼」(畜生)정도가 있는데 우리말로는 「김승같은 놈」으로 해석되는데 일본에서는 가장 심한 욕설가운데 하나이다. 이외에도 「바카」(馬鹿, 바보),「야로우」(野郎, 놈),「사이테이」(最低, 아주 최하의 인물)등이 있을 뿐이다. 일본에서는「치쿠쇼」혹은「바카야로」등의 욕을 상대방에게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만약에 상대방에게 그러한 욕설을 내밷는다면 상대와의 결별을 각오할 결심이 섰을 경우에 하는 것으로 이러한 각오없이는 좀처럼 욕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에는 친구들사이에 친근함의 표시로 욕설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심하지 않는 경우에는 대부분이 농담으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일본의 경우에는 상대방이 욕을 하면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매우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일본사회에서 욕설이 발달되어 있지 않고 일본인들이 욕설을 거의 안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략적으로 “일본인들이 겁이 많아서” 혹은 “상대방과 부딪히기 싫어하니까”등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면 왜 일본인들은 욕설을 하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는 사무라이문화의 단면이 숨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에서 사무라이들이 활개치던 시절에는 상대방에게 모욕을 당하거나 체면이 손상될 경우, 명예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무라이들로서는 이를 묵과하지 않고, 반드시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했다. 따라서 상대를 자극하지 않도록 언행에 극도로 주의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술자리에서 친근함의 표현으로 욕설이 흔하지만 일본에서는 술을 마시더라도 욕설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유는 기분나쁜 언행으로 상대방을 자극하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언행에 극도로 주의하게 되는 것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는 부자지간에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경제력이 부족한 자식이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평생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에도 체면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어 왠만해서는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각별히 신경을 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울 경우일지라도 부모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를 매우 꺼려한다. 반대로 부모도 자식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도움을 줄 때에도 조심스럽게 대하게 된다. 예를들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자식이 자녀들을 데리고 본가를 방문한후 귀가하려 한다고 치면 부모는 주변의 눈을 피해 자식을 몰래 불러 애들 맛있는 거 사주라면서 봉투를 슬쩍 건네주는 식이다. 비록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이긴하나 자식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다.

일본사회에서 자존심과 체면을 중시하는 사례가 있는데 우리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란 단어가 있다. 「혼네」는 진짜 속마음을 일컫는 것이고 「다테마에」는 상대에게 겉으로 드러내는 마음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충돌을 피하기위해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실제와는 다른 말로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일본인들은 상대방을 대할 때 「혼네」와 「다테마에」를 구분해서 행동하는데 여기에는 사무라이문화가 유래한다. 사무라이가 활약하던 센코쿠시대(戰國時代)에는 전쟁이 일상화되면서 자연스레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고 그러한 약육강식의 환경하에서는 적인지 아군인지 확실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삶의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에도시대(江戶時代)에 접어들면서 전쟁이 사라지고 오랜동안 평화가 정착됨에 따라 센코쿠시대처럼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드러낼 경우 인간관계에 있어 분쟁을 초래하게됨에 따라 점차 속내와 겉마음을 분간해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풍조는 사무라이 세계에서부터 정착되기 시작해 사회전반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속마음을 들키면 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혼네」를 말하는 대신 「다테마에」를 통해 상호간의 갈등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혼네」와 「다테마에」문화는 지금도 일본사회에서 흔히 볼수 있는 풍경이다. 일본인의 「다테마에」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이 있는데 바로 교토(京都)이다.

교토 거리(출처 : 언스플래쉬)
교토 거리(출처 : 언스플래쉬)

교토는 고대 일본의 수도로서 보수적인 전통이 매우 강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인지 상대방에게 싫은 내색을 하지않고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려는 속성이 타지역보다 훨씬 강한 것으로 정평이 있다. 교토에서 유행하는 「쿄우노 오차즈케」(京のお茶漬け)란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교토 사람들의 이중성을 잘 나타내는 용어이다. 예를 들어 교토의 길거리에서 오랜만에 지인과 조우할 경우 대개에는 인사치레로 “우리집에 가서 차라도 한잔 하실까요”라고 권하게 된다. 이때 상대방이 이를 진심인양 받아들여 “네 그럴까요”하고 응하면 권유한 사람은 속으로「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이야기를 빗대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냥 인사치레로 말했을 뿐인데 상대방이 그것을 진심으로 생각해 받아들이면 오히려 당황한다는 것으로 교토사람들의 양면성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다. 한편, 대체적으로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일본사람들은 친절하고 상냥하기로 유명하다. 소위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는 일본인들이 외국인을 맞을 때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서 세계적으로도 일본인의 친절한 태도를 설명할 때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인의 친절은 중세시대부터 이어져온 사무라이문화의 유산이라는 일설이 있다. 말하자면 검(劍)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사무라이의 무서운 칼날을 피하기위해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위한 퍼스먼스라는 해석이다. 물론 전적으로 맞다고는 하기 힘들지만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20여년전 일본을 처음 방문했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와는 다른 일상 풍경에 문화적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가장 당황했던 것은 지인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방문하기위해 엘리베이트를 탔는데 먼저 타고있던 사람이 “오하요우 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리가토우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라고 얼떨결에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일본에서는 엘레베이트 등 공용공간에서는 초면이라도 먼저 상대방에게 가벼운 인사 정도를 건네는 것이 관례인데 필자는 당황한 나머지 인사를 받은데 대한 답례로 고맙다는 말로 대신한 것이었다. 그후로는 필자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오하요우 고자이마스”라고 먼저 인사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고객을 대하는 종업원들의 모습도 상당이 인상적이었다. 1980년대 우리나라 모 재벌 백화점의 직원들이 고객들이 입점할 때 두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그런데 처음 일본에 와서보니 서비스 업계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접객태도가 매우 친절해 속으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복과 모자를 단정히 차려입은 택시기사는 물론 버스 운전기사들도 차량 정차위치 안내 및 안전 유의사항을 수시로 마이크로 안내해주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언젠가고베(神戶)의 일본 전통여관에 묵었던 적이 있는데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직원이 무릎을 꿇어앉은채 정성스레 녹차를 따라주었다. 식사를 하고 온천욕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이불을 정갈하게 깔아주고 취침요령과 조식 코스에 대해 꼼꼼히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적쟎이 감동을 받았다. 물론 한편으로 생각하면 월급을 받는 종업원으로서 고객에게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필자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모습이었기에 그렇게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일본인들의 친절이 직업정신의 발로이긴 하나 이전부터 내려오는 사무라이문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몸에 익숙해진 것이라고 한다면 왠지 마음 한구석에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사무라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상대방에 먼저 인사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필자는 실제로 그러한 경험을 했다. 어느날 필자는 오사카 근처의 시골마을을 둘러본 적이 있는데 마침 인적이 드문 촌락에서 약간 오르막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노년의 여성이 필자에게 갑자기 “곤니치와(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걸어오는 것이었다. 순간 필자는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아는체 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그 노인은 이후에는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이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필자는 그 노인이 지인이라서 인사한 것이 아니라 지나치는 행인에게 의례적으로 인사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 노인이 생면부지의 인물에게 인사한 것은 혹여나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서 상대방에게 험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선의를 표명한 것으로 이는 사무라이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그이후에도 필자는 비슷한 상황에서 상대방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장면을 수차례 경험했는데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고 나서부터는 필자도 한적한 길을 걸을때는 상대방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는 웃지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되는 동물이라고 했는데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작권자 © 한국시민기자협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