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68) 담양읍 오계리 오실마을
집집마다 공무원 자녀 1~2명, 안동장씨 집성촌
마을-남산리 간 도로신설 오랜 숙원사업

▲마을전경
▲마을전경

오현마을은 이 마을 주민 장장환 님의 요청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막상 방문해보니, 내가 사는 대덕면에서 담양읍으로 갈 때 주로 이용하는 도로(무정로)에 인접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도로변에서는 ‘계동(桂洞:옛날에 계수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마을 표지석만 보이고 안쪽으로 1km 정도를 더 들어가야 오현(오실)마을이 나온다. 그래서 옛날에는 피난지였다고 한다.

오현(五絃: 거문고 비파 등의 줄)마을은 지형이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구슬처럼 아름다운 선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현마을은 1430년경 장흥고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그 후 달성서씨·파평윤씨·전주강씨·순천 김씨·안동장씨가 거주하며 200여 호에 달하는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순조 7(1807)년에 인동 장씨가 들어와서 현재는 이 성씨가 많다. 마을회관 앞에 도착하니 마당에 들깨를 말리고 있어서 고소한 향이 코끝을 스쳐 기분을 좋게 했다. 회관 안에는 여자 어르신 네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 어르신들께 마을 자랑을 해달라고 했더니 ‘공무원이 많이 나오는 마을’ 이라고 했다.

오현마을은 옛날 대바구니가 생업일 때는 60여호 정도가 살았는데 현재는 33호가 살고 있고, 그중 10여호는 이주민이다.

▲장순환, 장장환, 장금환, 장은환님
▲장순환, 장장환, 장금환, 장은환님

이날 이장님은 바빠서 만날 수 없었고 장순환·장장환·장금환(노인회장)·장은환 님들과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분 모두 700~1,500평 정도의 적당한 양의 농사를 짓고 계신다고 했다. 어르신 모두 건강한 표정이 보기 좋았다.

어르신들이 희망 사항이 있다고 해서 들어봤다.
오현마을은 도시가스·상수도·하수도 설비가 다 되어 환경개선은 완료되었다. 하지만 외지로 나가려면 마을에서 무정로에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1km 이상을 걸어서 나가야 한다. 경제성을 이유로 버스가 끊겼기 때문이다. 또 마을 뒤쪽이 산으로 막혀 있다. 사방이 막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이 마을을 ‘막창마을’ 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1,000원 택시를 월 3회 이용할 수는 있지만, 매일 병원에 다녀야 하는 어르신일 경우는 참으로 난감하다고 했다.

▲돌담
▲돌담

그래서 마을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오현마을에서 남산으로 넘어가는 길을 만들어 버스가 다니게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담양읍 사람들이 남산에서 산책이나 운동을 많이 하는데, 남산으로 올라가는 여러 등산로 중에 오현마을에서 올라가는 길이 가장 완만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등산객들이 이 마을을 통해서 남산을 오가고 있는 상황이라서 이곳에 도로가 생기면 바로 ‘메타 프로방스’로 연결이 되어 마을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마을 안길이 좀 좁은 편이라서 자동차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만큼 길을 조금 더 넓히고 빈집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자방아
▲연자방아

다른 어르신들은 바빠서 먼저 가시고, 무릎이 가장 튼튼하신(?,어르신들 표현) 장순환 님께서 마을 입석과 연자방아, 그리고 마을 분들이 도로가 났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을 뒤 등산로를 안내해주셨다. 회관에서 가까운 거리에 사람 키 높이의 입석이 있었다.

장경환 할아버지께서 가져다 놓으셨다고 하는데, 마을 분들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원래 마을 수호석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다음은 노거수가 한그루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연자방아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연자방아와 받침석 2/3가 도로 밑에 깔려있었다. 마을 여러 곳을 다녔지만, 받침석까지 남아있는 곳은 아주 드물다. 연자방아가 하루빨리 복원되면 멋진 마을 분위기 조성에도 크게 도움 될 것 같았다.

▲주택 개발 부지
▲주택 개발 부지

동네 앞길을 따라 남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가봤다.
차가 다닐 만큼 넓은 길이 조성되어 있었고, 산허리에는 운동기구도 다양하게 설치돼 있었다. 이 운동시설을 이용하는 사람 수가 적지 않음이 느껴졌다. 마을과 등산로를 돌아보면서 장순환 님께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여쭸다. 장순환 님은 농사일을 하면서 농한기에도 쉬지 않고 목수·숲 가꾸기·경비 등의 일을 해서 자식들을 가르쳤다. 덕분에 자식들은 케이티(KT)에 다니거나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장순환 님 이야기를 들으니, 10대 어린 시절부터 남의 집 일을 해가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신 나의 아버지가 생각나 가슴이 뭉클해지고 존경심이 우러났다.

산을 내려 오는데 3천 평 정도의 주택지가 눈에 들어왔다. 20여호 정도가 입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마을을 들어올 때도 주택공사현장을 보았는데, 시골마을 규모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 인구가 유입된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젊고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온다면 더 많은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다. 도로가 개설되어 오현마을을 통해 등산 또는 산책이나 운동하러 남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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