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67) 대덕면 상운마을

▲상운마을과 운암저수지
▲상운마을과 운암저수지
▲마을 앞 승강장
▲마을 앞 승강장
▲상운 마을회관
▲상운 마을회관

대덕면은 산이 많고 기온이 낮아 비닐하우스 농사가 맞지 않기 때문에 천혜의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있다. 

대덕면 운산마을 같은 경우는 전통적으로 약초 재배를 해왔던 곳으로 작년에는 약초 농사에 관한 사업을 지원받아 약초에 관심 있는 대덕면과 기타지역 사람들이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약초 동아리에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어떤 분이 “김치 담글 때 시누대 이파리를 김치 위에 덮으면 곰팡이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서 이분을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분이 사는 상운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5백여 년 전 천안전씨와 평산신씨가 마을 뒤 만덕산 기슭 아래 북촌(北村)에서 살다가 식수 부족으로 현 마을 위치로 옮겨 터를 잡은 것이 상운마을의 기원이 되었다. 

이 마을 이름은 만덕산 아래 구름이 떠다닌다고 해서 운행동(雲行洞)이라고 했다가 조선시대에 운암동(雲巖洞)으로 개칭, 해방 후 행정구역변경에 따라 상·하운(上·下雲)으로 다시 구분했다. 상운마을은 이전에 주민들이 퇴비증산에 열성적이어서 1993년 퇴비증산경진대회에서 입상해 받은 당시 시상금 1천만 원으로 360년 넘은 느티나무 앞에 만월정(萬月亭)을 지을 정도로 단합이 잘되는 마을이다. 현재 이 마을은 25가구 중 절반가량이 이주민이다. 

▲만월정
▲만월정

상운마을은 마을 입구에서부터 초록색 이끼가 낀 오래된 돌담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집집마다 500년 묵은 돌담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골목길을 돌아서 정태희 씨 집으로 갔다. 정원을 텃밭처럼 만들어 가지각색의 농작물과 꽃들을 심어놨다. 올해 같은 장마에도 노란 국화 같은 멜람포디움(꽃말: 평화·순진)’이 생글생글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이 꽃은 멕시코 원산으로 더위와 장마 그리고 햇빛과 그늘에서도 잘 자라며 개화기가 길고 번식은 씨앗으로 하며 병충해에도 강하고 꽃차도 만들 수 있으니 풀이 많아 걱정되는 땅에 한 번 심어볼 만하다고 정태희 님이 알려주었다. 작은 해바라기라고도 불리는 이 꽃의 효능으로는 해열·이뇨·류마티스·관절통·말라리아·복통·어지러움·황달·부종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마을이야기를 들려준 이장님과 마을주민들
▲마을이야기를 들려준 이장님과 마을주민들

정태희 씨는 연세에 비해 키가 크고 체격이 단단한 느낌이 든다. 여쭤보니 이전에 인천 ‘동일방직’ 배구선수 생활을 6년 했는데, 당시 사람들 앞에서 ‘여자가 짧은 바지와 짧은 팔의 옷을 입고 운동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신 어머니의 만류로 그만두게 되었단다. 그 후 다시 광주 체신청에서도 감독·코치·선수를 겸한 생활을 10여 년 했다. 

상운마을로 이사 온 정태희 씨는 송강 정철의 26대손으로 남면 지실리에서 태어나 전주 이씨 양녕대군의 후손인 외가에서 자랐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외증조모, 외조모, 모친에게 한과를 배워 4대째 대이음을 했다. ‘키다리 아줌마’ 한과 공방을 운영하면서 폐백용 구절판(구절판: 목각 구절판에 육포·키위 정과·밀감 정과·곶감 초·잣 솔·호도 초·도라지 정과·부각·은행 등 9가지 음식을 채운 것)을 비롯해 다식(茶食)·약과(藥果)·과일전·떡·목감함(7가지 음식) 등 다과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먹어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 정태희씨는 77세로 정원 가꾸기와 운동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 “지인들이 구절판 만드는 체험을 하고 싶다고 하면 가르쳐주실 건가요?” 물으니 “당연히 가르쳐주지요.” 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상운마을 이장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 물어보았다. 이전에 벼농사와 소를 키웠는데, 농사만으로는 소득이 너무 적어서 대덕면 ‘흥국조경’에서 10년 일했고, 그때 노하우가 생겨서 30년 전부터 조경수 생산·판매·식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장님 댁을 비롯한 몇몇 집들의 정원수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장님과 정태희 님과 같이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마을주민 한 분이 더 오셨다. 

이전에 광주에서 유명했던 ‘자연생활 채식뷔페’ 사장님이었다. 이야기 나누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이 사장님께서 정태희 님과 나를 초대했다. 이야기도 더 나누고 싶고 저녁도 한 끼 대접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하도 맛이 좋아 요리법을 물으니 마늘과 얇게 썬 돼지고기를 볶다가 텃밭에서 막 딴 호박을 넣어 육수를 만들었다고 했다. 국수에 양념장을 끼얹어 먹으니 맛이 환상 그 자체였다. 저녁식사 후 약초 동아리에서 기른 작약꽃차를 마셨는데 찻잔에서 작약이 피어나 한들거리는 작약 꽃차는 사람의 마음을 녹여버릴 것 같았다. 작약 꽃차까지 곁들이니 포만감과 건강을 동시에 선물 받은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에 맑은 날에 한 번 더 방문해서 마을 입구에는 1941~44년에 완공된, 천연기념물 327호 원앙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운암저수지’를 감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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