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효도 기획 상품 덕분에

지상 100층 마천루(摩天樓)의 위엄은 역시 대단했다. 그것도 해수욕장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부산 해운대였다.

지상에서 무려 100층이나 되는 마천루 ‘부산 엑스 더 스카이’에 오르면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일본의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했다. 그 명성의 ‘부산 엑스 더 스카이’를 찾은 건 오로지 효자 아들 덕분이었다.

이틀 간격으로 생일인 우리 부부를 위해 착한 아들이 ‘효도 기획 상품’을 선물한 것이다. 덕분에 첫날엔 별이 다섯 개나 되는 해운대 파라다이스 특급호텔에서 하룻밤까지 자는 호사도 누릴 수 있었다.

마천루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아주 높은 고층 건물을 말한다. 마천루 ‘부산 엑스 더 스카이’는 해운대를 찾으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휘하에 두 건물을 거느리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보통 높이가 아니다.

그런데 상식이겠지만 ‘부산 엑스 더 스카이’처럼 하늘도 낮다며 기고만장한 빌딩은 나처럼 소시민은 감히 함부로 범접하기 어렵다. 그래서 입장료가 필요하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인한 뒤 안내원의 지휘(?)를 받으면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초고속 E/V답게 채 1분도 안 걸려 마침내 100층에 올랐다.

바로 앞에는 직진하면 일본에 닿을 수 있는 망망대해(茫茫大海) 남해(南海)가, 좌측으로는 기장과 울산으로 나가는 쪽 도로와 집들이 마치 성냥갑처럼 오밀조밀 한눈에 수집되었다.

우측으로는 해운대 해수욕장의 모든 시설물과 주변의 고층 건물, 심지어 1시간 이상은 족히 걸리는 부산항대교까지 일제히 부복(仆伏)하기에 이르렀다.

순간, 부(富)에 대한 강렬한 열망(熱望)이 거센 파도로 다가와 가슴을 때렸다. ‘그래,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이런 데서 살아야지! 그래야 모양새가 나고 아랫사람들도 나를 더 존경하며 고개를 숙일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러한 망상은 잠시 후 거대한 암초에 부서진 파도처럼 소멸했다. 100층 높이 ‘부산 엑스 더 스카이’의 내부 복도는 건물 아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바닥이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평소 고소 공포증(高所恐怖症)이 있는 나로서도 그 바닥을 건너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았다. 어떤 할머니 관광객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며 고군분투하셨다.

오죽했으면 동행한 가족에 의해 질질 끌려가다시피 하여 가까스로 그 공포의 바닥을 통과하기까지 했다. 98층으로 걸어 내려오니 커피숍이 있었다. 아내에게 커피를 시켜준 뒤 저 멀리 바다를 응시했다.

오늘도 만선의 꿈을 안은 채 바다로 나갔던 어선들이 회항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래, 맞다. 대저 우리네 삶이란 저런 것이다. 저 배에 탄 고달픈 어부들의 일상 또한 어쩌면 나와 오십보백보 아니겠는가.

누군가는 마천루가 어울릴지 몰라도 나는 역시 100층짜리 초호화 건물보다는 차라리 이름 모를 잡초와 겸손한 땅을 딛고 사는 장삼이사(張三李四)다운 초가삼간(草家三間)이 더 어울린다. 100층까지 올랐다고 해서 화려한 별이 나한테 더 가까이 오는 건 아니니까.

세삼 그 교훈을 안고 ‘부산 엑스 더 스카이’를 내려왔다. 겨울 강풍이 세차게 ‘부산 엑스 더 스카이’를 때리고 있었다. 빌딩풍이라서 체감온도는 더욱 매서웠다.

인근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열린다는 '제17회 부산불꽃축제'를 보려고 전국에서 인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천신만고(千辛萬苦)에 다름 아닌 ‘버신철고’(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한 탈출법의 비유적인 작위적 사자성어) 끝에 가까스로 부산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윽고 집에 도착했다. 비록 초가삼간일망정 내 집이 역시 제일 편하고 좋았다. 모처럼 편하게 숙면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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