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성품, 인맥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최산두(崔山斗)
화순은 적벽을 상탄(賞歎)한 최산두에게 부채의식 가져야

망미정 마루에 앉아 바라본 노루목 적벽

 화순군 이서면 적벽 이야기

 적벽의 아름다움은 알아도 최산두(崔山斗)는 모른다. 적벽 이야기는 대개 김삿갓으로 시작한다. 방랑 생활로 바쁜 와중에도 세 번이나 찾았단다. “무등산이 높다 하되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고,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를 흐르더라.“​는 시구(詩句)는 귀에 딱지가 않을 정도다. 아름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라지만 최산두가 훨씬 더 낫다. 솔직히 김삿갓이 화순 인심이 좋아서 온 김에 들른 것인지, 정말 풍광 자체가 좋아서 온 것인지 그건 알 수 없지 않은가.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화순 능주로, 최산두는 동복으로 귀양 왔다. 최산두도 천리 밖으로 쫒겨 났으니 조광조와 무게감은 그리 다르지 않았나 보다. 조광조는 한 달을 못 채우고 사약 마시고 죽었지만 최산두는 적벽 바라보며 10년 넘게 유배생활을 했다.

​ 이곳 풍광이 꽤 위로가 되었나 보다. 적벽이라 이름 붙이고 정(情) 붙이며 살았다. 소식[소동파, 중국 북송시대 시인]의 적벽부에서 이름을 따와 노루목[장항(獐項)] 적벽 또는 망미 적벽이라 하였다. 삼국지에 나오는, 주유 제갈량 방통이 한편 먹고 조조와 삼 대 일로 박 터지게 쌈박질했던 그 적벽과 닮았다 한다.

 국가 명승 112호로 지정되었고, 화순 8경 중 제1경이며, 그리고 천하제일경이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는 적벽은 순전히 최산두 덕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금방 죽어 큰 인연을 맺지 못한 조광조는 화순을 대표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진 반면, 화순제일경을 만든 일등공신 최산두는 화순 분들조차도 생소하다. 문장에 뛰어나 윤구(尹衢) ·유성춘(柳成春) 등과 함께 호남의 3걸(傑)로 알려졌으니 그는 당시의 적벽 홍보대사였던 셈이다.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자리 잡은 적벽은 노루목, 창랑, 물염적벽 세 곳이다. 창랑과 물염적벽은 언제든 볼 수 있지만 대표격인 노루목 적벽은 제한 관람만 가능했다. 동복댐 안에 위치하고 있어서다. 화순 땅이지만 관리주체가 상수원으로 쓰고 있는 광주광역시였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말, 화순군의 염원과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화순군(구복규)이 광주광역시로부터 관리권을 찾아왔다. 내년(2023년)부터는 상시 개방으로 아무 때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적벽은 화순의 대표 관광자원이다. 이를 개발하고 널리 알린 이는 최산두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적벽하면 최산두를 먼저 떠올리자. 그에게 진 빚을 이렇게라도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 화순밭담(和順田談)은 화순군(和順郡)의 산물(産物) 인물(人物) 문화(文化 음식(飮食) 이야기다. 오늘을 살피어 내일을 다듬는 가칭 '화순군 마을기자단'의 열린 마당이다. 

쿰파니스(cum panis)는 '함께 빵을 먹다'로, 반려(companion)의 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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