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묵배미의 사랑’과 허도세월

-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 포스터
-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 포스터

[우묵배미의 사랑]은 1990년에 개봉한 영화다. 봉제공장 재단사 배일도(박중훈)는 작부 출신의 아내(유혜리)와 변두리 동네인 우묵배미로 이사를 온다.

손재주를 타고난 일도는 그곳 공장 기술자로 취직을 하게 되는데, 첫날부터 파트너로 일하게 된 미싱공 공례(최명길)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래서 은근히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그녀의 반응은 늘 신통치가 않다.

그러나 공례가 아이까지 딸린 유부녀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도는 그녀가 눈에 띄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억세고 드센 아내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맑은 심성과 다소곳한 공례에게 일도는 급속도로 빠져든다.

공례 역시 폭력만 일삼는 무능한 남편보다 일도에게서 마음의 안정을 구한다. 첫 월급을 타던 날, 그들은 밤 기차를 탄다. 비밀스런 인생의 샛길이 시작된 것이다.

그날 밤 변두리 여관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낸 그들은 서로가 떨어질 수 없는 숙명적인 사이임을 확인한다. 여관비가 없으면 비닐하우스를 찾는 등 비밀스런 만남을 갖는 일이 더욱 잦아진다.

그런 가운데 일도의 아내가 이를 눈치채자 아예 집을 나와 동거에 들어간다. 일도 아내는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내고 일도는 아내에게 멱살을 잡혀 우묵배미로 끌려온다.

공례와 헤어진 후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일도는 공례의 연락을 받고 용수철처럼 비닐하우스로 뛰어나간다. 하지만 공례는 이제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는 말만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에 만들어졌다. 영화의 내용에 관해 왈가불가하기보다는, 당시 세 배우의 풋사과처럼 싱그러운 젊음과 탱글탱글한 미모까지 발견할 수 있다는 수확이 더 크다.

32년 전이면 올해 내 나이가 ‘6학년 4반’이니까 정확히 반이다. 잠시 전 죽마고우와 통화를 나눴다. 연신 기침하길래 물으니 보름째 감기가 낫질 않는다고 했다.

“너나 나나 이젠 늙어서 그래.” 문득 허도세월(虛度歲月)이 오버랩 되었다. 이는 ‘하는 일 없이 세월만 헛되이 보냈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지나친 자기 비하이긴 하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 아니었던가!

아무튼 세월과 연관된 사자성어엔 토주오비(兔走烏飛)도 돋보인다. ‘토끼가 달리고 까마귀가 난다’는 뜻으로, 세월(歲月)의 빠름을 이르는 말이다. 추가하자면 화불재양(華不再揚)도 간과할 수 없다.

‘한번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에 올라붙지 않는다’라는 의미심장의 어떤 격언이다. 늙은이가 다시 젊어질 수 없음은 상식이자 불변의 이치이다.

어제 000역 앞을 지나는데 노인들 다수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잡담으로 소일하는 모습을 봤다. ‘나는 저 어르신들 연세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열심히 글을 써야지!’라는 다짐이 견고한 콘크리트로 타설되었다. 나로서는 그게 ‘젊음의 유지’라는 나름 어떤 음양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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