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와 예의

취재 요청을 받고 대전외국인학교를 찾았다
취재 요청을 받고 대전외국인학교를 찾았다

취재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모처럼 신사복을 꺼냈다. 넥타이를 맸고 향수도 뿌렸다. 반짝반짝 잘 닦여진 구두 역시 기본옵션이었다. 명색이 기자라고 한다면 이 정도는 예의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아무튼 행사장에 도착하니 <00000 뉴스 기자 홍경석>이라는 표찰이 놓여져 있었다. 이윽고 취재가 시작되었다. 1부 리셉션에서 사회자는 초대받은 인사들을 일일이 소개하여 호명했다. 그 자리에 나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당연히 ‘더 잘 취재해야지!’라는 결심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김행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과정에서 목소리를 높인 MBC 기자에 대해 “예의범절이 없었다”며 “부끄럽다”고 했다.

김 위원은 11월 21일 CBS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18일 이기정 홍보기획 비서관과 언쟁을 한 MBC 기자와 관련해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김 위원은 “제가 대변인 시절에도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인터뷰를 할 경우 모든 출입 기자들이 넥타이도 갖추고 양복 입고 정식으로 의관을 갖추고 대했다”고 돌아봤다.

반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에 대해 “좁쌀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박 전 원장은 페이스북에 “‘도어스테핑’에서 MBC 기자가 슬리퍼를 신었다는 부대변인의 응대는 좁쌀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수반이며 국가원수다. 기자는 1호 국민”이라며 “국민은 갈등을 풀어가는 통 큰 대통령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선 (한미) 동맹을 이간질하는 MBC 기자의 탑승을 거부한 것은 헌법수호라 하신다. 우리 헌법 어디에도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조항은 있지만, 비판적 기자를 전용기에 태우지 말라는 조항은 없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 말이 옳은 걸까? 전자의 주장이 맞는다고 본다. 일국의 대통령 앞에서 슬리퍼를 신고 등장한 기자의 무례도 결례이거니와 더욱이 팔짱까지 끼고 쏘아보는 행태는 더 이상 기자가 아니라는 시각이다.

흔히 언론을 일컬어 행정, 입법, 사법에 이어 ‘제4의 권부’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그러려면 기자는 응당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게 기본 아닐까.

상경하애(上敬下愛)는 위로는 공경(恭敬)하고 아래로는 자애(慈愛)함을 말한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자'라는 뜻이다. 모름지기 기자라고 한다면 이 정도는 기본 준칙이 되어야 한다.

사적 영역이지만 나는 집 밖 지척의 마트엘 가도 반드시 면도와 세수까지 하고 간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간다는 것 또한 내 사전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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