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의 삶에 모범 답안을 써가는 사람

본 기자는 대전시 서구 흑석동 안물안마을에 위치한 <홍진 아카이브>라는 다소 생소한 구경거리를 찾아 나섰다.

앞쪽으로는 갑천 물을 막아놓은 장평보가 있고 뒤로는 구봉산 줄기에서 곁가지를 남쪽으로 뻗어 내린 옛부터 연화부수(蓮花浮水,연꽃이 물에 떠있는 형상)라는 명당으로 알려진 산자락 아래에 자리를 잡은 이 또한 명당이다.

<홍진 아카이브>는 정재홍 씨와 부인 김순진 씨가 간직해온 소중한 기록물들을 전시해 놓은, 보기 드문 개인 기록관으로 지난 11월 3일 가까운 지인들의 축하 속에 조촐하게 개관을 하였다.

두 사람의 이름 끝 자를 따서 ‘홍진’이라 했고, 기록관이란 의미의 아카이브를 더해 <홍진 아카이브>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주된 전시물로는 1963년 9월 1일에 발행된 박정희 대통령의 자서전 ‘국가와 혁명과 나’를 비롯해서 1921년 7월부터 9월까지의 100년 전 동아일보 축쇄판,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금강산 식물조사서 등 아주 옛날에 발간된 귀중한 자료를 담은 다수의 서적들이 눈길을 포박한다.

그리고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까지의 성적표와 각종 상장들, 또 정재홍 씨의 중학교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의 일상을 기록한 8년 간의 일기장과 가까웠던 친구들로부터 받은 500여 통의 젊은 날 손편지들 역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그중에는 염홍철 전 대전시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유창종 전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받은, 각각 50통 넘는 분량의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의 편지들을 개인별 파일로 간직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손편지가 사라진 요즈음 아쉬움을 달래주는 이 편지들은 정 관장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본인의 인터뷰기사 등이 실려 있는 수십 권의 시사저널 誌와 신문들, 그리고 그의 지금까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사진 등을 비롯하여 모든 이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적지 않은 기록물들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를 다녀간 분들의 공통적인 말씀으로는 “어떻게 이 많은 자료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파트 문화가 보편화 되면서 웬만한 것은 모두 버리는 상황에서 정말 놀랍다는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정재홍 관장은 “나누면 행복하다”는 기본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2000년부터 대전시청 직원들에게 일본어 재능기부 강의를 시작한 이래 20년 넘도록 여러 기관을 다니며 일본어 재능기부를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거쳐 간 제자는 무려 3,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당초 1만 명 목표를 정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그 목표 달성은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것이라 하며 틈틈이 익힌 중국어도 가르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정재홍 관장은 또한 사회적 기업 <모두의 책 협동조합>의 제안을 받아 들여 관저동에 있는 본인 건물의 1층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어 그동안 개인이 수집한 옛 물건들과 주민들의 기증품을 전시해 놓은 <관저마을 역사관>을 2020년 12월 8일에 개관, 무료 개방을 해오고 있는데 오는 12월 8일이 개관 2주년 기념일이라고 한다.

본 기자는 이 <관저마을 역사관>에 읽힌 이야기를 취재하여 대전광역시 발행 월간지인 <대전이즈유> 2021년 3월호에 소개한바 있다.

정재홍 관장은 또 안물안 집 앞에 있는 텃밭 500여 평을 30여 가구에게 주말농장으로 무상 분양하여 농사체험을 통한 흙 사랑과 생명존중 마음을 몸소 실천하도록 하고 있는바, 이곳이 바로 <안물안 행복농장>이다.

정재홍 씨는 대학에서 식품을 공부하고 해태음료회사에서 써니텐 등의 과즙 음료를 개발, 해태유업으로 전출되어 유제품연구를 하면서 기술연구소장직에 오른 후 1992년에 의원퇴직하였다.

중앙그룹으로 옮겨 중앙전자 대표이사 중앙정보처리학원 원장 직을 끝으로 서울생활을 마감하고 2000년에 고향 대전으로 귀향하여 안물안에 둥지를 틀었다.

2008년에는 구봉신협 이사장에 선출되어 7년간 근무하고, 2014년 농협 조합장 선거에 도전하다 실패한 후부터는 자연인이 되어 자유를 만끽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집 앞 논을 연못으로 만들어 연을 심고 해마다 연꽃을 감상하며 살던 중, 기러기 다섯 마리를 사다 연못에 풀어 기르기 시작한 것이 자연 부화하여 이제 오십 여 마리로 식구가 크게 늘었다.

그들이 연못에서 물살을 가르며 노는 모습, 모이를 달라고 따라다니는 아름다운 모습에 몸도 마음도 늙을 줄을 모른다고 한다. 함께 나누며 자연과 어울려 여유롭게 사는 그의 황혼 삶이 기자는 한없이 부러웠다.

한편 그는 힐링 셀프카페 <안물안연가(蓮家)>를 운영하고 있는데 피곤한 생활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영혼의 치유를 드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카페에 앉아 연못에서 기러기들이 헤엄쳐 노는 모습을 관조하노라면 복잡한 머리가 말끔히 씻어지는 듯하다.

본인이 커피를 내려 마시고 정다운 사람과 담소하면서 도시에서 찌든 마음에 평온을 얻어 가시라고 권유한다.

커피 값도 자유로 빈 그릇에 놓고 가시면 되는, 참으로 여유를 얻어 갈 수 있는 정겹고 색다른 카페이다.

부인 김순진 여사는 초등학교 교사로 40년을 근무하다가 2013년에 정년을 마쳤다. 지금은 적십자 기성동봉사회 회장, 흑석동 새마을부녀회장, 기성동 주민자치위원, 구봉신협 이사 등으로 왕성한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즐겁게 여생을 살고 있다.

슬하에는 사회중견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진휘. 진혁 두 아들과 커리어우먼으로 활동하고 있는 두 며느리, 그리고 손주 둘을 두었다.

정재홍 관장은 은퇴 후의 삶에 진정 모범 답안을 써가는 사람이었다.

■ <홍진 아카이브> 관람 문의 (예약 전화) : 010 - 4420 - 2998

내비게이션(카카오맵)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흑석동574-1

저작권자 © 한국시민기자협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