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대로는 치열한 삶이 담보되었을 때라야만

= “한 잔의 술을 마신다 술잔 속에 그녀가 보인다 / 긴 머리 치렁치렁 수정 닮은 큰 눈 해오라기 따라 날렵한 여름비 후두둑 - 스치며 갈대밭을 달린다 / 희디 흰 섬섬옥수 손짓하는 그녀가 술잔 속에 보인다 / 또 한 잔의 술을 마신다 비 오는 날 선술집에서” =

김성식 시인이 첫 시집 <그리움의 강가에서>(오늘의 문학사 刊)를 냈다. 주옥같은 시들 중 위에서 소개한<비 오는 날>(P.110)을 먼저 꺼낸 건 이 책을 보면서 문득 사랑하는 아내가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열정의 10대 말에 만나 40년 이상 애오라지 아끼며 살고 있다. 돈은 지지리도 못 벌면서 허구한 날 술에 취해 귀가하는 엇절이(됨됨이가 변변하지 못하고 덜된 사람) 남편을 하지만 아내는 초지일관 곁에서 호위 무사로 지켜왔다.

어제도 존경하는 형님을 만나 낮술에 거나하게 취하여 귀가했다. 아무렇게나 퍼질러 잤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깨끗한 이부자리로 바꿔 나를 덮어주었다. 참으로 고맙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자기합리화의 궤변이겠지만 대저 술꾼은 비 오는 날이면 더더욱 술이 당기는 법이다. 더욱이 그 술을 나누는 대상이 절친한 친구 내지 형님이라고 한다면 우음마식(牛飮馬食)조차 부족하다.

열애 시절, 긴 머리가 치렁치렁했던 아내는 수정을 닮은 큰 눈으로 내게 다가왔다. 빙기옥골(氷肌玉骨)에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내 곁으로 오라”며 손짓하던 그녀는 딱 나의 러브 로망(love roman)이었다.

김성식 시인의 첫 시집 <그리움의 강가에서> P.20~21에 등장하는 ‘꽃길’ 역시 마음까지 선뜻 포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계룡산 꽃길을 예찬하며 “우리네 인생도 꽃길만 걸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메타포(metaphor)로 은유(隱喩)하고 있다.

‘꽃길’은 비단 꽃으로 장식된 길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순탄하고 순조로운 경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더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람은 누구나 꽃길을 동경한다.

그러나 ‘꽃길’이라는 탄탄대로(坦坦大路)는 생각과 바람과는 달리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정적 삶이 담보되었을 때라야만 비로소 샐빛(날이 샐 무렵의 빛)처럼 잠깐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김성식 시인은 대전에서 출생하여 국가공무원으로 36년을 우직하게 봉직했다. 대통령 상 등 표창도 수두룩하게 수상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장래 희망이었던, 자신이 대학 강단에 서는 꿈을 이뤄드리고자 늦깎이 공부에도 치열하게 몰두한 ‘효자’이다.

그 결과, 충남대학교 법학박사까지 취득하고 각 대학에서도 명강사로 명망을 떨치고 있다. 누구나 ‘그리움의 강가’는 있을 터. 이 책을 통해 그 그리움의 강가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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