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통계보고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2021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5천달러를 넘어섰다. 통상적으로 국민의 생활수준을 의미하는 지표인 1인당 국민총소득은 연간 명목 국민총소득을 인구수로 나눈 값이다. 1994년도에 1만달러를 넘어섰고, 12년이 지나서 2006년에 2만달러를 넘어섰다. 그리고 11년만인 2017년 3만달러를 돌파했다. 코로나라는 악재가 겹쳐 2019~2020년은 연속 감소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2021년에 반등에 성공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나 일본이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국민 우울증이나 자살률이 줄기는 커녕 훨씬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2006년이후 꾸준히 자살률은 증가했고, 2010년도부터 대중매체를 포함한 언론은 자살률 문제의 심각성을 연일 보도하곤 했다. 행복감을 유지하는데에는 너무 많은 경제적 자유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경제적 빈곤을 느끼기 쉬운 2만달러 정도의 수준이 3만달러 시대보다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 안녕감이나 삶의 만족도가 차라리 높다고 할 수 있다.

나는 2000년도부터 속리산 장고개 인근에 웰빙코칭아카데미를 세우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웰빙세미나를 시작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웰빙이라는 개념조차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2003년경 이상구 박사가 귀국하여 언론과 상업주의가 결탁하여 삽시간에 웰빙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한동안 전국의 수많은 정육점이 연쇄 도산할 지경으로 왜곡된 웰빙문화 때문에 대한민국의 웰빙산업이 흘러가 버렸다. 2000년대 대한민국은 상업화에 붙들린 비정상적인 웰빙이 점령한 이상한 시대였다. 간판에도 온통 웰빙이라는 단어가 덕지덕지 붙는게 유행이 되었고 어린애들부터 노인들까지 웰빙 상표를 주목하던 시대였다.

이렇게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 갑자기 웰빙족들의 우상이 되어버린 이상구 박사의 영향력 때문에 저만치 떠 밀린 나는 2000년대 중반부터는 웰빙과 힐링을 합친 즉 힐빙세미나를 열기 시작했다. 온통 돈좀 있다는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값비싼 무농약 농산물을 사 먹고 건강기능식품 보따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들떠 있을때, 나는 그들에게서 정서적 정신적 박탈감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무농약 농산물을 먹는 것이 몸에는 좋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삶의 가치를 망각하고 오직 몸뚱아리를 잘 보존하기 위해 먹고 쳐바르는 집단일탈성을 치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너무 앞선 까닭에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섭섭함을 해소하기 위해 대형바이크를 한 대 사서 틈만 나면 두둥거리며 타고 전국을 유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0년이 되면서 수년간 틈틈이 즐겨타던 대형바이크를 처분하고 속리산 장고개 한적한 서재에 들어앉아 진정한 행복에 대하여 고민을 시작했다. 웰빙이나 힐링만 갖고는 몸뚱아리 보신과 치장에 치우치고 있는 그릇된 집단지성의 일탈을 막아야 되겠다는 나름대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겠다는 내가 스스로 세운 철학 때문이었다. 결국 내 전공인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비롯되는 철학적 인간학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10여년간 자연치유학이나 건강의학 등과 같은 실용학문의 추종자로 있다가 다시 석박사 철학과 시절과 대학교수 시절의 기본적 의문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인간이란 도대체 누구인가?' '인간은 왜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잘 살다가 잘 죽는 비결은 무엇인가?' 등과 같은 근원적 질문이 나를 끌어당겼다. 돈벌이에 환장한 장삿군들의 교활한 속임수에 넘어가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며, 평소에 성실하게 땀흘려 번 돈주머니를 백주대낮에 탈탈 털리고 있는 가련한 군중을 구출해야 되겠다는 나만의 거룩한(?) 기사정신이 춤추었던 시절이었다.

2010년도부터 내가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 추상명사의 정점인 '행복'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렇게 내 손에서 탄생된 국내 최초의 행복교과서들이 '행복지도사' '행복교육사' '행복상담사' '행복 코디네이터' '행복 코디네이터 실습교재' 등과 같은 행복한 삶과 관계된 전문서적이었다. 내가 이 책을 출판할 때에 서점에는 온통 웰빙이나 힐링관련 서적들이 범람했으나, 행복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서적은 아주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내 저서들을 출판함과 동시에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민간자격으로 이들을 포함하여 9종목을 등록시켰다.

그리고 2011년도부터는 내가 갖고 있는 컨텐츠를 대중에게 전달할 강사를 육성하기로 계획했다. 연세대를 거점 학습공간으로 설정하고 명품강사아카데미를 설립하여 매달 명품강사들에게 1박 2일씩 2년간 교육을 실시했다. 이 때부터 국내 최초로 행복지도사 3급, 행복교육사 3급, 행복상담사 3급, 행복나눔사 3급, 나눔지도사 3급, 행복경영사 3급, 유머지도사 3급, 행복 코디네이터 3급과 2급 등의 자격과정도 이들에게 전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격과정은 생소했던 까닭에 석박사급 고학력자들이나 성직자 등 지성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다. 내게서 훈련받은 명품강사들 중에서는 행복자격과정의 대리점권을 받으려고 수백만원을 아까워하지 않고 단번에 납입했다. 하루에 5천만원 정도의 수입이 된 적도 있었다. 명품강사들과 함께 했던 이 시기는 내 인생에 돈맛을 알게 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나는 2년 과정의 명품강사아카데미에 점을 찍고 3년 과정의 대한민국명강사개발원을 시작했다. 외부 전문가들을 강사로 세우고 나와 함께 강사양성과정을 진행하다보니 기본철학이 약화되고 잡학다식한 강사육성 프로그램으로 본래 의도와 달리 진행되어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번째로 다시 연세대를 빌려 설립하게 된 대한민국명강사개발원에서는 3년간 외부강사를 세우지 않았다. 오직 내 혼자서 명강사 200여명을 대상으로 원맨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나는 대한민국명강사개발원에서 3년간 철학적 관점에서 기초를 잡은 행복인문학을 소개했고, 명강사들과 같이 토론하며 대한민국이라는 컨텍스트를 들여다 보는 훈련을 했다. 그런데 이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명품강사 프로그램은 경영학박사들이 많이 참여한 까닭인지 수입도 제법 많았고 외부 강의도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명강사 과정은 테크니컬한 부분보다는 이론적 부분으로 치닫다 보니 체감되는 부분이 적었고 학습과정도 이론적이라 어려웠던 까닭이다. 당연히 나의 인기는 명품강사때보다 훨씬 못했다. 정신과 의사들보다 정형외과 의사의 돈벌이가 더 쉽다는 것처럼 말이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매달 지출되는 교육장과 강의실과 연예인들의 차량으로 알려진 1억 2천만원에 구입한 쉐보레 밴도 과감히 정리했다. 2018년부터 나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른바 이 시대를 국민행복감과 정신건강 증진을 핸드링하는 행복전문가를 육성해야 되겠다는 확고한 비전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육성했던 명품강사, 명강사, 행복강연센터장, 한국강사총연합회 전임강사 육성과정 등과 같은 프로그램 갖고는 전문성이 결여된 대중강사 정도만 육성함에 그친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이런 정도의 방식으로는 땜쟁이 육성에 내 인생을 허송세월하고 말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 나이 55세가 되기 전에 시작한 것이 바로 내 인생의 꽃이고 대한민국의 활력 비타민이 될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 육성과정'이다. 55라는 숫자! '오오!'라는 감탄사가 생각나는 숫자가 아니든가? 

이 과정을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행코 책임교수 과정에 등록한 예비 책임교수들과 같이 한 방에서 먹고 자면서 2박 3일간 심화학습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금은 온라인 학습 시스템으로 방식을 바꾸고 훨씬 더 많은 량의 교육내용으로 바뀌어졌지만 간혹 그 때가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오오!'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다. 할리 같은 대형바이크나 쉐보레 밴과 같이 땅바닥을 의지하는 수단을 넘어, 내가 만든 행복여객기의 기장이 되어 내가 설정한 항로인 마이웨이를 힘차게 이륙하고 있다. 이제 대학교 현직교수들과 겸임교수, 외래교수를 포함하면 제법 작은 대학교 하나 정도를 세울 만큼 쟁쟁한 지식인들도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 100여명 안에 합류하고 있으니 행복여객기는 이미 순항을 시작한게 분명하다.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당신이 보기에도 안그런가?

나는 행코 책임교수 100명이 되는 싯점인 지난 2022년 11월 5일과 6일 서울대학교병원 인재원에서 개최된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 전략 워크숍'에서 행코 책임교수의 주된 진로인 투 트랙을 수퍼비전과 핵심역량의 목표로 선포했다.

첫번째 트랙은 기존의 대학교에 내가 갖고 있는 행복관련 강좌, 과목, 학과 개설을 시도하는 일이고, 장기적으로는 존폐위기에 내몰린 대학교를 독지가를 만나 사들이거나 또는 아예 행복대학원대학교를 신설하는 비전이다. 그러기 위해서 석박사 학위자로서 대학교 정교수 혹은 강의경력자들로 행코 책임교수단을 채워가고 있다. 이 일에는 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 현직 교수인 최태선 박사가 앞장서서 전현직 대학교수들을 합류시키고 있고, 최근에는 자문위원장 장헌일 박사의 추천을 받은 신한대학교 현직 교수인 최에스더 박사도 101호 책임교수로 합류했으며, 우송대 김영란 박사, 중원대 조민희 박사, 강동대 오승하 박사, 그리고 내년 1월 9일 행복 코디네이터 조교수로 승진하게 될 조옥성 박사와 우석대 고선옥 박사 등도 이 분야에 뜻을 함께하고 있다.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트랙은 6~7년 전 박근혜 정부 등장 직전부터 유력 정치인들과 입법 논의를 시작했던, 가칭 마을리더 행복멘토 육성법안을 되살려 가는 일이다. 그런데 국가조찬기도회 사무총장으로서 13년동안 섬겨오며, 한국공공정책개발연구원 원장으로서 국회와 정부에 정책제안을 오랫동안 해오신 정책입안자인 장헌일 박사께서 행코교수단 자문위원장이 되시면서 이 일을 발벗고 뛰어주시고 있으니, 하늘과 대세가 나를 밀어주고 있음을 느낀다. 이 법안이 입법이 된다면 1개면마다 100명 이상이나 되는 마을리더를 행복지도, 행복교육, 행복상담, 행복 코디네이터 등으로 훈련받는 행복멘토가 되도록 행복멘토링 기법 교육을 포함한 정기적인 직무보수교육을 자치단체와 협업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 1천명으로는 이 일을 해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교육 수용인원이 차고 넘치게 된다.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내 나이 4,50대 알짜배기 청춘 20여년을 나는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비록 지금은 대형바이크를 타지 않아서 잠시 잊은듯 하지만, 그래도 1800cc 대형바이크의 머플러에서 터져나오는 중저음의 둔탁한 울림이 온 몸을 전율케 하는 듯한 짜릿한 쾌감이 나를 이 새벽에 더 행복하게 한다.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 20번까지는 명품강사 혹은 명강사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2017년도부터 책임교수를 육성했다고 하더라도 엄밀히 따지고 본다면 그 이전부터 만났으니 4~5년은 걸렸다고 볼 수 있다. 40번대까지 채우느라 또 2년 정도 걸렸다. 그리고 속도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40번대 이후는 거의 2020년도부터 3년만에 육성된 분들이다. 불과 3년만에 100번대를 넘어선 것이다. 탄력이 붙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제는 김용진의 행복 브랜드, 국제웰빙전문가협회의 행복 브랜드가 대한민국의 행복 명품으로 선점되고 명품화 되어가고 있다는 확실한 시그널이 아니겠는가?

나는 2023년 말까지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 숫자가 200명이 넘어갈 것이고, 2024년 말까지 300명은 무난히 돌파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왜냐하면 입법절차 완성년도인 2025년이 되면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퇴출당한 대학교수 상당수가 평생교육의 일터로 최고인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행코교수단으로 몰려들 것이기에 행코 책임교수가 1천명 시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확신한다. 

책임교수 1천명 시대가 되면 행복대학교를 설립하거나, 또는 마을리더 관련 법률안을 입법하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 된다. 책임교수 1천명이 행복 코디네이터 인턴을 각자 100명씩만 육성해도 삽시간에 행복 코디네이터는 10만명이 되고, 그 때까지 각자 1000명씩만 누적 육성해도 대한민국에는 100만명의 행복 코디네이터가 탄생하게 되고, 이들이 국회의원들의 표심을 사로잡고 행복국가 경영에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직능단체가 되기 때문이다. 숫자가 늘면 답이 보이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 만물이 조용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지금까지 걸어온 걸음을 뒤돌아보며 몇 년 뒤를 앞당겨 놓고 관조하며 이 글을 쓰는 순간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벽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흥겨운 축제를 알리는 전주곡으로 들려온다. 2000년도에 대한민국은 웰빙신드롬으로, 2010년도에는 온통 치료를 목적으로 숯가마 같은 곳을 찾아다니던 힐링신드롬으로 대한민국이 출렁거렸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시대의 이단자가 되어 10년 뒤를 바라보며 행복을 이야기했고 행복을 프로그램화 했고, 더 나아가 행복멘토를 육성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크게 인기몰이를 하지 못했지만 세월이 지나 2020년대가 되자 사람들은 행복한 삶으로 시선을 모으며 행복멘토링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니 조만간 행복신드롬이 봇물처럼 대한민국을 휩쓸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

지금은 짚신이나 나막신이나 고무신을 붙들고 있을 때가 아니다. 활동에 편한 기능성 신발을 붙잡는 시대이다. 이쯤에서 질문하나 던져 보자. 지금 당신 손에는 어떤 도구가 들려있는가?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당신의 인생이모작은 어떻게 펼쳐갈 것인가? 현재의 유행을 붙잡지 말고 미래의 유행을 앞당겨 붙잡는 사람이 더 현명한 사람이다. 정말 웰빙, 웰에이징, 웰다잉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인생의 최고 목표인 행복 프로그램을 붙잡는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가 된다면 어떨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국제웰빙전문가협회와 김용진 교수가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가 될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다면? 당신은 인생 최고의 로또를 당첨받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당신은 정성을 다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 로또를 파는 로또 명당에 가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그리고 주머니를 열어 로또복권을 아낌없이 사라. 김용진 교수가 이끌고 있는 국제웰빙전문가협회가 바로 대한민국에 유일무이한 행복로또명당이지 않는가? 큰 설레임으로 기대하라! 비행을 마친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들의 화려한 착륙이 있을 그 몇년 뒤를!

 

<글> 김용진 교수, 전)한남대학교 철학과 강의교수,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협회장, 행코교수단 단장, 행복 코디네이터 창시자, 유튜브 '인생이모작 행복 코디네이터' 크리에이터, 뉴스포털1 전국방송취재본부장, 공보뉴스 칼럼니스트로서 국제웰빙전문가협회를 통해 행복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투 트랙(대학교에 행복교과목 또는 행복관련학과 개설 등 지원, 마을리더 행복멘토 직무교육 의무화 입법 추진)을 실현해 가는 중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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