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기 총재(1955년생)
사단법인 국제휴먼클럽
(주)휴먼월드 대표

평생 봉사하는 삶… 선행의 씨앗은 부모로부터 심어졌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자란 백 총재. 아버지는 한학의 대가셨고, 어머니는 18살에 시집와 아버지께 한글을 배우며, 일편단심 아버지를 존경하는 집안의 분위기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봉사를 대전 KT충남본부장 퇴직 이후 사단법인 국제휴먼클럽 총재직 수행으로 지금까지 어어 와, 평생 이웃을 돌보고 봉사하는 삶으로 채워왔다.

평생 봉사, 그 비결을 여쭈니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부잣집에서 도둑질하다 쫓긴 도둑이 뒷문으로 도망을 치게 됐다. 공교롭게도 뒤 곁에 있던 대나무를 베어놔, 칼같이 날카로운 대나무 밑동을 도둑이 밟게 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상황이었다.

주인은 순간 도망치는 도둑에게 소리쳤다. “여보게! 거기 대나무를 베어 놨으니 조심하게!” 그 말을 들은 도둑이 도망가다 말고 주인에게 소리쳤다. “주인 양반, 거기 부엌에 닭 삶아놓은 그릇으로 지네가 지나가며 독을 뿌린 것 같으니 먹지 마시게!”

도둑 덕분에 주인은 목숨을 살렸고, ‘화(禍)’라고 생각했던 일도 도리어 복(福)으로 돌아왔다. 내가 측은지심으로 진정성 있게 상대를 대하면 재앙마저도 복으로 바뀔 수 있다는 짧지만 큰 교훈이 있는 그 이야기는 그의 삶 전체를 관조하는 지침이 된 듯하다.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한학자 아버지

남다르게 지혜롭고 덕성스러운 부모의 영향을 받아 그는 남을 돕는 일에 항상 앞장섰다. 고등학교 때는 4H 클럽에서 리더로 봉사했다. 시골에 비 오고 홍수 나면, 도로 평탄 작업을 했고, 여름이면 제초작업을 자진해서 수행했다.

노인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팔면 다른 소리 못하고 다 사 오는 그다 보니, 누나는 왜 그리 물건을 비싸게 사 오냐고 타박했다. 그가 “노인들이 파시는 건데…….” 라며 말끝을 흐리면 옆에서 듣고 계시던 부모님이 “우리 은기 참 잘했다.”라고 인정해 주었다. 그런 부모님의 가르침은 고스란히 그의 마음속에 양식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도리를 잘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골백번도 더 듣고 자라 세뇌가 될 정도였다. 다른 형제들은 싫은 티도 냈는데 그는 ‘아버지의 그런 가르침이 오히려 나를 사랑하는 표현일 것’이라 여기며 새겨듣는 모범생이었다.

아버님 회갑잔치
아버님 회갑잔치
군 유격훈련 도중에
군 유격훈련 도중에

국제휴먼클럽과 (주)휴먼월드 양 날개로 이웃과 자연을 내 몸같이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가 대전에서 KT의 영업국장을 할 무렵, 당시 국제휴먼클럽 총재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퇴직 직전에 사회봉사의 의지와 책임을 느낀 그는 국제휴먼클럽 총재를 이어받았다. 국제휴먼 클럽은 사회적 약자 구제 활동 및 봉사, 캠페인, 저소득층, 결손가정 지원, 장애인생활지원, 다문화가정 지원 및 교육사업 등이다.

(주)휴먼월드는 그가 퇴직 이후에 설립했는데 사회적기업으로 종합유통 및 관광여행 사업으로 수익금을 내어 휴먼클럽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된다. 그 외에도 국제휴먼클럽은 회비, 성금 등으로 봉사를 행한다. ‘나와 이웃과 자연은 하나, 이들을 내 몸같이 존중하고 사랑하자’는 정신을 가진 이 클럽은 대전이 본회며 산하단체로 파랑새휴먼지역아동센터와 러시아국제본부가 있고 서울‧경기에 지역 본부가 있다. 전체 조직의 회원은 300여 명이 넘는데 실제 회비를 내고 활동하는 인원은 7~80여 명. 후원회원이 120여 명이다.

그의 아내는 그의 사회 봉사활동을 지지하고 적극 협조한다. 클럽은 백 총재가 취임하면서 크게 활성화되었는데 11년의 재임 동안 그의 노고를 엿볼 수 있다.

백두산
백두산

38년 직장생활… 해불양수, ‘끌어안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자세로 직장에 임했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 총무처 공무원 채용 공고를 보고 시험을 쳤는데 덜컥 합격했다. 체신부(지금의 정보통신부) 산하 공무원이 돼 첫 발령은 충남 홍성우체국으로 받았고 대전 KT충남본부장을 거쳐 자회사 사장직까지 수행하고 퇴임했다.

“38년 한 직장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회사에서 받은 혜택이 참 많다. 평생 일하고, 자녀 학자금까지 지원받고. 재직하면서 서울대학교 MBA과정을 수료하는 기회도 얻었다. 그 외에도 행운이라 생각될 만큼 회사로부터 받은 특혜가 많아 감사하다.”

38년 직장생활 동안 힘든 점을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해불양수(海不讓水)다. 바다는 어떠한 물도 사양하지 않아 다양한 물을 받아들이고 온갖 물고기와 해초류를 기른다며 그 포용력을 강조하는 말이다. 장단점 없는 사람이 어딨나? 조직 생활에서 누군가 술 먹고 시비 걸어도 내가 져주려 했다. ‘끌어안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바다의 포용력을 닮고 싶었다. 하지만 일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권태적이면 용서 안 하고 엄하게 대했다.”

그는 직장생활 중 봉사의 단초를 만나기도 했다. 그가 모셨던 국장님과 술좌석에서 우연히 듣게 된 말이 계기였다. ‘동생이 걸인이 돼 음성 꽃동네에 들어가 있다’며 울먹이는 상사의 이야기를 듣고 ‘내 가족 중에는 그런 분들이 없어 다행이다. 나라도 그 어려운 분들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그때부터 음성 꽃동네에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부 젊은 시절
부부 젊은 시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칭찬하면

“사회생활을 할 때는 상대방의 장점은 물론이고 단점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서로 품어 안아 상생 발전하는 선순환구조를 지향한다. 부자지간에도 격의 없이 고언을 해야 한다. 다만 예의 있고 조리 있게 표현하는 전달 방식은 중요하다. 칭찬하면 누구나 좋아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칭찬하면 결례라 생각하는 데 그건 아니다. 누구나 칭찬하면 좋아한다. 아부가 아니다. 잘하는 점을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직장생활에서도 상사의 좋은 점을 인정해 주라고 했다. 처세술이 아니고 그것이 기본적인 인간관계라고 말했다. 상사가 고생 많고 힘들 때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라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피곤하시면 약도 사다 드리고, 시간 나면 모시고 여행 가듯이 상사를 내 부모 대하듯 해야 한다. 상사가 당연히 부하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사무실 화장실 벽면에는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라는 유명한 외국 속담이 적혀 있어 사연를 물었다.

아이들 고등학생시절
아이들 고등학생 시절

“돈‧권력‧명예는 죽을 때 호주머니에 넣어갈 수 없다. 항상 마음을 열고 손바닥 움켜잡지 않고 펴고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조금 아까 주문을 받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욕심이 올라오더라. 사는 날까지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알아도 문득 욕심이 생기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신화를 보면 신도 욕심이 있는데 사람이니 더하지. 김수환 추기경이 말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 걸렸다’고. 나도 사람이다 보니 계속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욕심을 내려놓는 게 필요하다.”

평생 봉사를 실천하며 이타적인 삶을 멀리하지 않은 백 총재. 하지만 그는 지금도 자기 검열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긴장된 선 위에 서 있었다. “봉사는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다. 봉사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슴에서 사랑이 싹트니까.”라는 마지막 권유로 봉사를 전파하는 ‘천업(天業)’ 또한 잊지 않은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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