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의 악행을 참는 까닭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가 아스라하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가 아스라하다

며칠 전 조생귤을 두 박스 샀다. 한 박스는 장모님께 드리려고 처갓집을 찾았다. 수척하게 야윈 사위의 몰골(?)이 안타까우셨을까. “왜 그렇게 말랐어?” “네, 과로가 겹치다 보니 그만 이렇게 되었네요.”

처가를 나오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그 누구도 나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는 없었다. 이따금 절친한 친구나 선후배라면 또 몰라도. 따라서 ‘그래도 장모님이 최고야!’라는 생각에 그만 그렇게 기분이 상승했던 것이다.

어제는 아내가 처가에 다녀왔다고 했다. “가지 탕수육을 만들어 드리려고 갔었지. 그런데 엄마가 당신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 심지어 날 보곤 신랑한테 찬밥 주지 말고 더운 밥 챙겨 먹이라고도 하시더라니까.”

가수 배일호의 히트곡에 <장모님>이 돋보인다. = "화초처럼 곱게 곱게 기른 딸을 나에게 내어 주시며 / 내 몸처럼 아끼고 잘살아가라던 장모님의 그 말씀이 귓전에 맴돌아 / 하루에도 열두번 참고 살아가지만 어찌하면 좋을까요? 나의 장모님 / 정말로 달라졌어요 아내는 지금 / 그렇게도 상냥하고 얌전하더니 너무나도 변했어요 무서워졌어요 / 어찌하면 좋을까요? 장모님 우리 장모님" =

가사가 자못 신파조(新派調)다. 이는 창극(唱劇)의 형식과 전통에서 벗어나 당대의 세상 풍속이나 사람들 사이의 슬 픈 이야기 등을 소재로 하여 만든 통속적인 연극에서 사용되는 말투나 분위기를 뜻한다.

그렇긴 하되 나 역시 마누라가 무섭긴 매한가지다. 어쩌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세상 남편들의 공통된 애환이라 하겠다. 더욱이 돈까지 잘 못 버는 처지이다 보니 마누라의 뚝별씨(걸핏하면 불뚝불뚝 성을 잘 내는 성질, 또는 그런 사람) 잔소리는 이미 만성이 된 지 오래다.

언제나 변치 않는 바다처럼 사랑할 터
언제나 변치 않는 바다처럼 사랑할 터

약간 농담까지 섞어서 괜스런 푸념을 했다. 나는 올해 기준으로 어언 41년째 아내와 부부로 살고 있다. 명심보감에서 이르길 ‘그 사람을 알려면 주변 사람을 보라’는 글이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내를 잘 만난 덕분에 장모님께서는 여전히 세 사위 중 둘째사위인 나를 가장 아끼신다. 그러니 이어지는 가요 <장모님>의 2절 가사인 ‘귀민 머리 하얗고 잘살아가라던 장모님의 그 말씀이 귓전에 맴돌아’ 하루에도 열두 번이나 마누라의 악행(?)을 참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아내는 하늘이 보내주신 진귀한 보물이었다. 쥐뿔도 없는 빈가(貧家)의 장손에게 시집온 지 어언 41년. 무능한 가장 때문에 입때껏 한 번도 호강 한 번 누린 적이 없는 가련한 여인은 그저 속절없이 늙고 병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아내는 한 번도 이처럼 부족한 남편을 원망하거나 폄훼하지 않았다. 장모님께서 둘째 딸을 참 잘 기르신 덕분이라 믿는다. 올해도 얼추 다 갔다. 2023년 새해가 되면 나는 65세, 아내는 64세가 된다.

말 그대로 더욱 ‘꼰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아내를 처음 만나 화려한 연정의 꽃을 피웠던 십대 말에 정류(停留)하고 있다. 아울러 조생귤처럼 달콤하고 상큼한 마음 또한 불변하다.

장모님과 아내가 모두 무병장수하길 기원한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달리 나를 믿었고 사랑까지 해 준, 하늘이 맺어준 참으로 고마운 인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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