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과 진수성찬

지인이 춘천 소양도서관에서 대여한 필자의 저서
지인이 춘천 소양도서관에서 대여한 필자의 저서

지난 6월, 열여덟 살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이 화제의 무대 위로 올랐다. ‘괴물 신인’도 부족하여 ‘천재 피아니스트’와 ‘신들린 연주’라는 등의 찬사가 잇따랐다.

임윤찬 군은 그러한 칭찬에 어긋나지 않게 세계적 권위의 피아노 대회와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60년 역사상 최연소로 우승을 차지했다. 세상엔 그 어떤 것도 공짜가 없다.

임윤찬 군은 7살 때부터 동네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대회 기간에는 보통 하루 12시간씩 연습을 했다고 한다. 역시 명인은 그에 걸맞은 노력과 연습을 하기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레퍼토리를 정복하고 싶다는 임윤찬 군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상당하다. 확신으로 가득한 단단한 연주, 흔들림 없는 성숙함은 그의 강점으로 꼽힌다. 몰입도도 굉장하다고 알려졌다.

손민수 피아니스트는 “음악에 몰입해 사는 모습이 18~19세기에 사는 듯하다”며 그에게 ‘시간 여행자’란 별명을 붙여줬다. 임윤찬 군이 앞으로 건반으로 연주할 역사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대단하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나는 필아니스트’로 잡았다. 피아니스트(pianist)는 피아노를 직업적으로 연주하는 사람이다. 반면 나는 ‘필(筆)아니스트’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는 나의 작위적(作爲的) 표현이다.

붓 필(筆), 그러니까 글을 쓰는 작가라는 의미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이 만날 피아노를 친다면 나는 매일 글을 쓴다는 차이가 있다. 20년 내공 덕분에 작가가 되었고 기자에 이어 강사까지 하고 있다.

기자를 하다 보니 취재 요청이 잦다. 최근에는 모 음악회를 취재했다. 피아노 연주가 주를 이루는 무대였기에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었다. 덕분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더욱 또렷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 손처럼 작은 손에서 어쩜 그렇게 멋진 음률(音律)이 흘러나올 수 있을까에 연신 탄복을 금치 못했다. 피아니스트들의 멋진 연주에 부러움이 장마철 강 이상으로 범람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람은 십인십색(十人十色)이다. 그에 걸맞게 잘하는 게 있는가 하면 못하는 건 더 많은 법이다. 내가 잘하는 것은 글쓰기뿐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도 ‘새벽마다 피아노를 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피아노’는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건반(鍵盤)을 두드리는 것을 모방한 표현이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지만 나는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쓴다. 새벽은 몰입도가 최상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건반(乾飯, 국이 없이 반찬만으로 먹는 밥)의 초라한 처지이지만 앞으론 반드시 성공하여 진수성찬(珍羞盛饌)으로 상을 받으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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