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동안 발간한 네 권의 저서가 강사 진출의 교두보가 돼 주었다
그동안 발간한 네 권의 저서가 강사 진출의 교두보가 돼 주었다

나의 첫 강의는 네 번째 저서의 출간 후 논의가 회자되었다. 대상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공부가 직업인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나의 강의는 그 어떤 강사보다 설득력과 흡입력까지 강력한 동인(動因)이 될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중학교는 문턱도 밟지 못했다. 하지만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다짐과 각오로 책을 만 권 이상 읽었다. 덕분에 시민기자에 이어 작가로까지 입문할 수 있었다.

자식농사에도 성공하여 주변의 부러움이 격하다. 그랬는데 그만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것이었다. 그 바람에 예정되었던 중고교 강의가 돌연 수포가 되었다.

실망이 컸지만 하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말미암아 직장을 잃은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던가... 또한 소규모 자영업자 역시 직격탄을 피하지 못한 경우는 얼마나 부지기수였던가.

준비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때는 다시 온다는 믿음을 가지기로 노력했다. 독서에 더 열중하고 틈만 나면 강의하는 방법을 읊조렸다. 그런 와중에도 또 다른 강사로 활동할 기회는 드문드문 찾아왔다.

신입 시민기자를 대상으로 ‘글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뿌듯했다.

드디어 이번 주 금요일에 나는 대학원에서 강의를 한다. 고작(?) 한 시간 강의지만 나는 이를 위해 숱한 날을 고민하고 준비했다. 주제는 ‘당신도 기자와 작가가 될 수 있다’이다.

정말? 충분히 가능하다. 나처럼 고작 초졸 학력의 가방끈이 짧아도 너무 짧은, 소위 ‘흙수저’ 출신도 버젓이 강의를 하는데 대학까지 나온 당신은 왜 못 하는가? 문제는 자신감이다.

나는 그동안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남이 아니라 나라는 믿음을 견지하며 살아왔다. 언젠가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는 책을 읽었다. 맞다. 없을수록 미래의 유토피아(Utopia)를 꿈꿔야 한다.

혹자는 ‘유토피아 증후군’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는 실력은 없으면서 꿈만 꾸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폄훼의 표현이다. 유토피아 증후군이란 원하는 정도의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거나 혹은 인정하지 못해 집요하게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증상을 말한다.

그런데 이 또한 나에겐 적합하지 않다. 나는 그만큼 이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동안 준비한, 오는 금요일에 강의할 내용과 ‘홍경석 강사의 프로필’을 담당 교수님께 이메일로 보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했다. 꼭 나를 비유해서 한 말이지 싶다.

 

저작권자 © 한국시민기자협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