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당 문화원에서 느낀 비애

성심당 문화원 입구
성심당 문화원 입구

나에게 불행은 너무 일찍 찾아왔다. 어머니가 가출한 것이다. 그것도 핏덩어리에 불과한 고작 생후 한 살의 이 아들마저 내팽개치고. 원인은 아버지와의 극심한 불화 탓이었다고 훗날 아버지에게서 들었다.

아무리 그렇다곤 하되 어찌 엄마가 되어 자식을 방기한단 말인가! 그럴 거면 왜 아이를 낳았던가? 아무튼 나이가 차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비록 엄마 없는 아이였지만 공부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했다.

시험만 보면 백 점이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등을 질주하자 담임선생님께서 “너는 이담에 반드시 서울대 갈 놈”이라며 칭찬하셨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허구한 날 실의(失意)와 좌절, 자학의 술만 마신 아버지 때문이었다.

당신은 ‘내 인생의 첫 돈까스’를 언제 경험하셨나요?
당신은 ‘내 인생의 첫 돈까스’를 언제 경험하셨나요?

급기야 멀쩡했던 집까지 처분하고 셋방을 전전했다. 알코올에 포로가 된 아버지는 술이 없으면 못 살았다. 작은아버지가 가져오신 내 중학교 등록금마저 술과 바꿔 마실 정도로 탕진했다.

중학교 진학이 수포로 대두되면서 세상살이가 싫어졌다. 극단적 선택을 몇 번이나 했지만, 저승사자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소년가장으로 구두닦이 등 별의별 간난신고를 경험하던 중, 작은아버지께서 찾아오셨다.

커다란 숙박업소를 운영하려는데 경리 책임자로 일을 봐달라고 하셨다. 흔쾌히 승낙하자 아버지도 동의하셨다. 관광지로 유명한 O읍의 호텔로 이동한 나는 철두철미(徹頭徹尾)한 업무 처리로 작은아버지의 사랑과 칭찬을 톡톡히 받았다.

모형(模型) 돈가스
모형(模型) 돈가스

매니저로 승진 후엔 세무 기관으로부터도 우수업소라며 표창까지 받아 더욱 고무된 작은아버지께서는 내 인생에 있어 첫 ‘돈까스’를 사주셨다. 입에서 살살 녹는 듯한 맛의 황홀한 식감과 더불어 풍성한 야채까지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라니!!

거기에 밥까지 푸짐하니 진시황조차 부럽지 않았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돈까스를 경험했다. 사족이지만 내가 못 간 서울대는 내 아이들이 ‘해결했다’.

오늘 성심당 문화원 역사관을 찾았다. 중구 은행동의 성심당 건물 바로 앞에 위치한다. 그 건물의 지하 1층에서 [내 인생의 첫 돈까스] 전시회(9월 8일~12월 31일까지)가 열리고 있어서 구경했다.

‘방문 후기를 부탁해’ 프로모션 중
‘방문 후기를 부탁해’ 프로모션 중

지금과 달리 과거엔 돈이 많은 부자든가 특별한 경우, 이를테면 자녀가 상장을 받거나 부모님 생신 등이 아니면 돈까스(정식 표기는 ‘돈가스’가 맞지만)를, 그것도 시내 중심가에나 있는 가게까지 찾아와 먹는 일이 드물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쉽게 맛볼 수 있다. [내 인생의 첫 돈까스]를 관람한 뒤 돈까스를 먹으려고 다시 성심당을 찾았다. 인산인해를 이룬 인파들에 질린 나머지 하는 수 없어 근처의 백종원 프랜차이즈 [역전우동]에서 파는 돈가스 덮밥으로 대신했다.

성심당을 이용하려면 줄을 서시오
성심당을 이용하려면 줄을 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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