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겹게 어울려야 숲이 된다

착잡할 때마다 서점을 찾아 마음을 다스린다
착잡할 때마다 서점을 찾아 마음을 다스린다

상식이겠지만 자신이 잘하는 걸 하면 즐겁다. 반대로 못하는 걸 억지로 하자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내가 힘겨운 공공근로를 하는 게 딱 그렇다. 소위 ‘노가다’에 다름 아닌 중노동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면 마치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다. 노동 강도의 세기도 세기려니와 더욱 참을 수 없는 부분은 함께 일하는 사람 중 일부가 너무나 저급(低級)의 마인드를 갖고 있어서다.

입만 열었다 하면 욕지거리로 범벅이고, 남의 흉은 또 어찌나 잘 보는지 정말이지 뒷담화(남을 헐뜯는 행위. 또는 그러한 말)와 ‘욕쟁이 대회’가 있어서 나가면 단박 챔피언 감이다. 그래서 그들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자연스레 대화가 단절되었으며 유일하게 나누는 말이랬자 업무에 국한될 따름이다. 영천세이(潁川洗耳)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중국 전설상의 성천자(聖天子)인 요(堯)임금은 허유(許由)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허유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산으로 들어가 버리자 다시 그에게 구주(九州)의 장(長)을 맡아달라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뒤 허유는 산 아래에 있는 영수강(潁水江)에서 귀를 씻었다.

그때, 허유의 친구 소보(巢父)가 강가로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러 왔는데, 허유에게 왜 귀를 씻고 있는지 물었다. 허유는 소보에게 왕위와 벼슬을 거절한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며 "깨끗하지 않은 말을 듣고 어찌 귀를 씻지 않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소보는 깨끗하지 않은 말을 듣고 귀를 씻은 물도 더럽혀졌으므로 송아지의 입도 더럽혀지겠다고 비웃으며 소에게 물을 먹이지 않고 가버렸다. 내가 꼭 그런 기분으로 억지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물수건으로 귀를 씻는다. 이렇게 안 좋은 기분으로 일하는 것도 이제 다음 달 말이면 종착역에 닿는다. 백방으로 다른, 좋은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함흥차사여서 답답하다.

퇴근을 앞두고 있던 즈음, 내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 언론사의 단톡방에 의미심장한 글과 자신이 올라왔다. 자타공인 최고의 서예가님께 취재를 왔는데 한문을 기가 막히게 잘 쓰셔서 감탄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존경하는 모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고수미음 독목불림(高樹靡陰 獨木不林)이 떠올랐다. 이는 중국 고전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말로 ‘위로만 크는 나무는 그늘을 만들지 못하고, 홀로 서 있는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자신만 알고 남은 무시하는 행태는 꼭 내가 일하고 있는 현장을 투영하는 듯싶었다. 내가 취재를 갔더라면 ‘고수미음 독목불림’을 꼭 써달라고 했을 게다. ‘영천세이’와 유사한 것으로는 세이공청(洗耳恭聽)이 있다.

남의 말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귀담아 듣는다는 뜻이다. 사람은 인품을 지키며 정겹게 어울려야 비로소 화목한 숲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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