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남편의 소망

전통시장에 가서 아내가 먹을 팥죽을 사왔다
전통시장에 가서 아내가 먹을 팥죽을 사왔다

- “당신이 입원한 아흐레 동안 내 마음은 얼마만큼 까맣게 타들어 갔는지 아시나요? 입원하고 이튿날 수술실에 들어가는 당신 모습을 보면서는 한참을 오열했습니다. 빙기옥골(氷肌玉骨)의 꽃보다 고왔던 당신을 만난 건 우리가 십 대 말이었지요.

태양보다 뜨겁게 열애를 나누다가 내가 군 복무를 마친 뒤 우리는 부부가 되었지요. 그러나 지독한 가난은 물귀신보다 끈질기고 악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두 아이를 가르치자니 박봉의 내 급여만으로는 도무지 감당이 어려웠지요.

이때 당신은 말 그대로 수호천사(守護天使)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결국엔 당신을 고삭부리 아낙으로 만드는 단초임을 왜 나는 몰랐을까요? 그래요. 온종일 백화점에서 주부 사원으로 일하던 당신은 항상 서서 근무했지요.

그 바람에 시나브로 골병이 든 당신은 급기야 허리수술까지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후 전업주부 노릇만으로도 힘이 달리는 당신을 보면서 나는 참 많이 슬펐습니다. 아무튼 어제 당신은 마침내 퇴원을 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빈 집에 활기가 돌더군요. 당신이 돌아와 안방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문득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요. 가정에는 ‘내무부장관’인 당신이 있어야만 비로소 모든 게 잘 돌아가는 법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당신, 다시는 아프지 마세요!” -

공공근로를 하여 밥벌이를 하는 나는 월요일인 어제 아내의 퇴원 관계로 휴무를 신청했다. 그랬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하루 종일 비가 올 거라고 했다.

예상대로 공공근로장의 담당 주무관은 “오늘은 우천 관계로 휴무입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생각지 않았던 휴일이었기에 전통시장에 갔다. 장을 보던 중 소문난 팥죽집이 보였다.

아내를 위해 아침 일찍 콩나물국을 심심하게 끓였다
아내를 위해 아침 일찍 콩나물국을 심심하게 끓였다

전화를 하니 아내도 먹고 싶다며 사오라고 했다. 포장된 뜨거운 팥죽을 들고 시내버스에 올랐다. 위에서 소개한 내용은 어제 퇴원한 아내를 보며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쓴 편지다.

그렇지만 우편으로 부치거나 직접 전달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내 마음속의 편지로 그치고 만 셈이다. 열애 당시 나는 천안, 아내는 대전에서 살았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었기에 유일한 소통 수단은 단연 편지였다.

내가 서너 통의 편지를 보내야만 그제야 비로소 한 장의 편지를 보낼 정도로 아내는 편지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녀가 혹시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나 싶어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당시에도 아내는 건강이 안 좋았다. 툭하면 잔병이 드러눕기 일쑤였단다. 이런 사실을 알고부터 그녀를 더욱 아끼고 배려했다.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올해로 어언 41년이다.

아들과 딸은 비슷한 시기 결혼을 하여 외손녀와 친손자가 각각 네 살이다. 신기한 것은 외손녀는 딸과 같은 1월생이고, 친손자 역시 아들처럼 8월생이라는 사실이다. 하여간 아내와 결혼하여 지금껏 고생만 시켰다.

다 무능한 내 탓이다. 더 노력하여 여전히 나만 바라보고 사는 가련한 아내에게 반드시 호강시켜주고 싶은 게 부족한 이 남편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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