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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칼럼] 육십 대 경비원을 울린 곡절
[홍경석 칼럼] 육십 대 경비원을 울린 곡절
  • 홍경석
  • 승인 2022.08.28 07: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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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개와 3만 원의 감동
두부 오징어 두루치기
두부 오징어 두루치기

7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원래 갑(甲)인 아파트 주민들이야 그렇다손 쳐도 정작 문제는 같이 근무하는 을(乙) 신분의 경비원들이었다.

그들은 십인십색의 성품답게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애먼 화풀이를 하는 이도 많았다. 일종의 ‘수평폭력’이었다. 참고로 수평폭력은 프란츠 파농이 제시한 사회 이론이다.

사회의 계층 사회에서 하류 계층이 상류 계층으로부터 압력과 공격을 받으면서 쌓인 증오 감정을 같은 하류 계층에 풀려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컨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말과 같다.

본질을 찌르지 못하니 다른 쪽에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화풀이가 아니면 강자의 것을 나눠야 하지만, 그것을 나누는 것은 리스크(risk)가 크니 약자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지분을 올리는 것이라는 개념이다.

아무튼 그래서 경비원 입문 후 많이 힘들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가장인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처자식을 떠올리면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더욱 이를 앙(怏) 악물고 그런 고통을 극복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나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경비원으로 오늘도 모 임대 아파트에서 일한다. 하루는 아파트 거주민 할머니께서 부침개를 갖고 오셨다.

“늘 친절하시고 편히 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도 오고 그래서 부침개를 만들어 봤어요. 맛이 없더라도 성의로 받아주세요.”

인사를 드린 후 부침개를 받았으나 그날따라 속이 안 좋아서 먹을 마음은 사실 눈곱만큼도 없었다. 고민하다가 쓰레기통에 버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천벌을 받을 듯싶어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부침개를 들러싸고 있는 비닐 포장을 뜯었다. 순간,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부침개 바로 밑에는 접혀진 봉투에 담긴 3만 원이 비뚤비뚤 메모와 함께 은거(隱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침개를 주신 할머니가 직접 쓴 글씨는 그예 육십 대 경비원 아저씨를 울리고 말았다. - “아저씨, 오늘도 힘드시죠? 저도 이 세상을 살아보니 세상사에 안 힘든 건 없더군요. 그렇지만 힘내세요! 사노라면 반드시 좋은 날은 올 겁니다.” -

그 글을 보면서 경비원은 내가 헛살지 않았다며 펑펑 울었다. 퇴근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아내도 덩달아 눈물을 뺐다. 이후로 그 경비원은 더욱 주민들에게 바짝 다가오는 견고한 친절 마인드를 철옹성으로 정립했다.

물론 당시 할머니에게서 받은 돈 3만 원은 차마 쓸 수 없어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어제 지인의 친구인 현역 경비원과 두부 오징어 두루치기로 술을 먹으면서 나눈 대화이다.

재작년에 그만두었지만 나 또한 8년간의 경비원 경험이 있다. 결국 새로 온 상사의 갑질에 분개하여 사직했지만. 이 풍진 세상을 사노라면 때론 억울한 일도 왕왕 발생한다.

그럴 적마다 “왜 접니까?”라고 적대감을 보이기보다는 “하긴 왜 저라고 아니겠습니까!”라는 순응(順應)의 마인드도 필요하다. 갑질 없는 사회의 착근과 소위 ‘진상’ 아파트 주민이 없어지길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