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니 당연히 그래야지요”
아내와 결혼을 한 것은, 내 나이가 한창 물오를 때인 스물세 살이었다. 경험하지 못한 모정까지 그리웠기에 비교적 조혼(早婚)한 것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장손이었기에 초라하게 식을 올렸다.
신혼집이라고 해봤자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반지하보다 더 깊은 지하 1층의 누옥이었다. 친정어머니인 장모님께서는 애지중지했던 딸이 시집간다며 목화솜으로 만든 이불을 선물하셨다.
그 정성 덕분이었으리라. 낮에도 전등을 켜야 하는 지하 1층의 셋방(貰房)이었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두툼한 목화솜 이불은 장모님의 정성과 ‘사위 사랑’이라는 온정의 덤까지 추가됨으로써 엄동설한에도 우리 부부를 굳건히 지켜주었다.
사진은 내가 일하는 양묘장에서 키우는 목화(木花) 나무이다. 목화는 면화(綿花)와 초면(草綿)이라고도 한다. 열대지방 원산이 많으나, 섬유작물로서 온대지방에서도 널리 재배하고 있다.
꽃은 백색 또는 황색이고, 개화 후 점차 분홍색으로 변해간다. 열매는 삭과(蒴果)로 달걀 모양이며 끝이 뾰족하다. 삭과가 성숙하면 긴 솜털이 달린 종자가 나오는데, 털은 모아서 솜을 만들고 종자는 기름을 짠다.
지금과 달리 과거엔 목화를 정성으로 키워서 여기서 솜을 추출했다. 그리곤 친정엄마의 정성으로 결혼하는 딸에게 줄 선물로 이불을 만들어 주곤 했다. 따듯하긴 이를 데 없지만, 목화솜 이불은 꽤 무겁다.
하지만 이불집에 가면 가볍게 만들어준다. 때론 한 채의 이불이 두 채로 변하는 신기함까지 경험할 수 있다. 처서가 지나면서 무더위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가을은 이미 폭염의 위세를 격퇴하고 본격적 상륙을 준비 중이다.
이어선 겨울이 온다. 한겨울이면 다시금 장모님께서 만들어 주셨던 목화솜 이불이 그리워진다. 문득 장모님이 보고팠다. 그래서 잠시 전 장모님과 전화를 나눴다. 입원하여 여전히 병원에 있는 아내가 화두로 등장했다.
“수술은 잘 되었나?” “네, 다음 주면 퇴원할 듯싶습니다. 오늘도 제가 병원에 또 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코로나 땜에 마음대로 면회도 갈 수 없어서 여간 답답한 게 아니라네. 아무튼 큰 수술을 잘 마쳤다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구먼. 자네가 수고가 많네.”
“남편이니 당연히 그래야지요.” 통화 말미에 장모님께서는 아내가 애틋하였는지 울음기가 담긴 음성으로 이 사위까지 울렸다. 그래서 덩달아 나도 울먹거리면서 통화를 마칠 수 있었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전생에 울보였는가 보다. 아니면 울다 만들었든가. 아내가 퇴원하면 다시금 처갓집을 찾을 것이다. 목화솜 이불보다 두껍고 포근한 선물을 준비하여. 장모님 건강하십시오! 살아보니 건강이 제일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