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프지 말아요

아내가 입원한 모 대학병원
아내가 입원한 모 대학병원

“어이구 아파 죽겠네!” 바로 곁에서 들리는 다른 환자의 고통스러운 신음(呻吟)이었다. 병원의 5인용 다인실 병실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그러나 워낙 지근거리인지라 심지어는 숨소리까지 들렸다.

특히 심야에는 더더욱이나. 순간, 아들의 말대로 2인용 병실로 옮길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또한 돈으로 연결되는지라 아내는 여전히 손사래였다. 아들이 힘들게 번 돈을 의식한, 엄마의 어쩌면 당연한 논리의 주장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부자는 마치 대궐처럼 넓은 1인용 병실도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서민은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다른 환자의 힘에 겨운 숨소리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연결했다. 마침맞게(?) 양희은의 <당신만 있어 준다면>이 흘러나왔다.

= “세상 부귀영화도 세상 돈과 명예도 /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 세상 다 준다 해도 세상 영원타 해도 /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죠 /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세월 /

이젠 알아요 그 추억 소중하단 걸 / 가진 건 없어도 정말 행복했었죠 / 우리 아프지 말아요 먼저 가지 말아요 / 이대로도 좋아요 아무 바램 없어요 / 당신만 있어 준다면 / 당신, 당신, 나의 사람/ 당신만 있어 준다면 ~” =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어떤 죄책감과 회한이 복합된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동안에도 고삭부리였던 아내가 모 대학병원에 입원한 건 지난 일요일이다.

이튿날 수술을 받았다. 노심초사하면서 병구완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문제는 24시간 아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제한이었다.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귀가해서는 빨래도 해야 하는 등 졸지에 ‘홀아비’가 되고 보니 할 일이 태산이었다.

오래전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똑같은 고난의 시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절감했지만, 사람에게 있어 건강처럼 중요한 건 또 없다. 쥐뿔도 없는 빈가(貧家)의 장손에게 시집온 지 어언 41년.

무능한 가장 때문에 입때껏 한 번도 호강 한 번 누린 적이 없는 가련한 여인은 그저 속절없이 늙고 병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아내는 한 번도 이처럼 부족한 남편을 원망하거나 폄훼하지 않았다.

되레 두 아이를 보란 듯 잘 길러 주변의 칭찬과 부러움이 여전히 무성하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새벽 3시도 안 돼 일어났다. 밤새 아내는 또 얼마나 지독한 통증에 시달렸을까...

퇴원 때까지 금식이라는데 먹지 못하는 그 간절함은 뉘라서 알까... 달랑 둘이 살던 집에서 아내가 부재중이고 보니 무기력증에 빠지는 건 남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뭐라도 한술 떠야 또 일을 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식욕을 잃은 지 오래인지라 라면 따위로 대충 때우고 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냉동된 밥이 수북했다. 남편이 툭하면 지인과 밖에서 밥 내지 술을 먹고 오는 날에도 아내는 항상 내가 먹을 분량의 밥을 짓고 기다렸으리라.

그러면서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다시금 아내가 가여웠다. 해동한 밥에 물을 넣어 끓인 뒤 깻잎장아찌로 대충 배를 채우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깻잎장아찌 역시 어쩌면 오늘날과 같을 때 먹으라고 선견지명(先見之明)을 지닌 아내가 만들어 둔 ‘비상식량’이었을 게다. 깻잎장아찌를 먹는데 주책없이 또 눈물이 났다.

여보 ~ 세상 그 어떤 부귀영화도, 돈과 명예도 당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이대로도 좋아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아무 바람 없어요. 부디 하루빨리 훨훨 털고 일어나시구려!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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