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가슴 뛰는 까닭

바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바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소풍(逍風)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이다. 학교에서, 자연 관찰이나 역사 유적 따위의 견학을 겸하여 야외로 갔다 오는 것도 포함된다. 이에 견주면 관광(觀光)은 소풍의 상위 개념이다.

관광은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함을 뜻한다. 관광이라? 여전히 살벌한 코로나 시대에 가당찮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과 추석에도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상봉이 무위에 그쳤거늘 팔자 좋게 무슨 관광이란 말인가.

따라서 요즘의 소풍과 관광은 한마디로 화중지병(畵中之餠), 아니 그야말로 화중지관(畵中之觀)으로 추락하기에 이르렀다. ‘그림 속의 볼거리’라는 의미다. ‘화중지병’이 그림 속의 떡은 먹을 수 없다는 의미이듯 ‘화중지관’ 역시 실제로 이용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얼마 후엔 그동안 오매불망했던 제주도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나도 드디어 바다를 건너는 것이다.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한 건 20년도 더 되었다. 고향 친구들과 제주 여행계(契)를 결성했다.

차곡차곡 모은 회비가 꽤 되어 제주도에 가기로 날을 잡았다. 그런데 아뿔싸! 장인 어르신의 회갑연과 맞물린 게 아닌가. “나는 못 가지만 너희들은 잘 놀다 오거라.” 친구들은 제주에 다녀오면서 미안하다며 옥돔을 선물했다.

고급 어종으로 쳐주는 옥돔은 제주에선 몰라도 내가 사는 대전과 같은 내륙지방에선 귀한 대접을 받는다. 두 번째로 기회가 닿을 수 있었던 제주 여행 역시 변수가 생기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었다.

이러다가 죽을 때까지도 제주 여행은 여전히 ‘화중지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크지도 않은 국가 면적이거늘 엄연히 대한민국 영토인 제주도도 한번 못 보고 죽는다면 염라대왕님조차도 탄식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싶었다.

“그럼 너는 생전에 어딜 그렇게 쏘다녔냐?” “그냥 집에서 직장만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는디유.” “어이구, 못난 놈(이순재 버전으로).”

지금과 달리 과거엔 화양연화(花樣年華) 시절이 존재했다. 돈도 꽤 벌었기에 소풍은 기본이었다. 툭하면 가족을 차에 태우고 전국 여행도 즐겼다. 아무튼 나도 이젠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제주도에선 청정해역에서 잡아 올려 펄떡이는 싱싱한 갈치회까지 먹을 수 있다는데 정말 사실일까?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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