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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커피’ 전 충남 논산 소방서 이건용 소방경, "한옥 카페 오픈.”
‘홍커피’ 전 충남 논산 소방서 이건용 소방경, "한옥 카페 오픈.”
  • 정칠임
  • 승인 2022.08.09 17: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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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째 살던 고택, 서까래 살려 한옥 커피숍으로 리모델링
홍커피 홍혜지 이건용 대표 부부
홍커피 홍혜지 이건용 대표 부부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100여 년 된 고택에서 5대가 이어 살아왔다. 아버지, 그의 아들, 손자까지. 집터는 도로변에 자리해 입지가 좋고 ‘노성’ 버스정류소 앞이라 할아버지는 다방을 하셨고 겸해 차표도 팔았다.

“너네 집도 리모델링해 한옥카페 한 번 해보지?”

그의 아내는 우연한 기회에 서까래가 드러난 멋진 한옥 카페를 방문했었다. 바리스타 자격까지 있던 아내에게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한옥카페 창업을 권유했다. 아내는 당시 소방경 퇴직을 앞두고 있던 그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 집 지붕에도 서까래가 있을까?”

홍커피
홍커피
홍커피
홍커피

그가 집 천장의 흙덩이가 떨어진 부분을 살펴 뜯어보니, 오래돼 새까맣게 그을린 서까래가 드러났다.

2018년 봄, 소개받은 논산 업자에게 고택을 카페로 리모델링 의뢰했다. 천정의 부자재를 뜯어내자 드러난 즐비한 서까래는 울퉁불퉁한 곡선을 만들었는데, 그 고풍스런 모습에 부부는 반해버렸고 마냥 설렜다. 그러나 리모델링 중 업자로부터 예상 못한 난관을 전해 들었다.

“집채가 뒤로 기울어져 있어서 리모델링은 어렵습니다. 차라리 전체를 허물고 새로 지어드릴게요.”

“아니요! 지금의 한옥 그대로 살려주세요. 새로 지어서 카페를 여는 건 의미 없어요. 돈이 더 들어도 좋아요….”

홍커피
홍커피

그는 세월의 흔적으로 때가 묻고 그을렸지만, 본래 모습을 지켜 한옥 특유의 편안한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 그의 요구대로 카페는 한옥 뼈대와 자재를 그대로 살려 완성됐다. 두 달여 뒤 모습을 드러낸 카페에 부부는 쾌재를 불렀다.

“역시, 한옥을 살린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서울 강남 터미널 옆 꽃시장 3층에는 카페에 필요한 물품들이 많아 그곳에서 카페 집기를 구입했다. 그릇은 동대문 시장, 티테이블은 대형마트, 목공소에서 맞추기도 했다. 공사 기간 동안 그는 아내와 발품을 팔아 집기를 장만했다.

 

홍커피
홍커피

 

“한옥 카페 편안하고 아늑한 멋… 하루 종일 머물러도 질리지가 않아”

2018년 6월, 노성면 노성로 583-1에 30여 평의 ‘홍커피’를 오픈했다. 손님들이 난리가 났다. 카페를 보고는 포근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좋다며 곳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카페를 연 계기를 물어오는 사람도 많았다. 그의 아내 홍혜지 씨가 말했다.

“장사가 잘되는 것보다, 손님들이 이 공간을 좋아하니 더 반가웠죠. 너무 잘했다,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됐죠. 4년을 이 카페에서 일해도 한옥의 편안하고 질박한 멋 덕분에 질리지가 않아요.”

그는 카페에 있으면 어머니, 아버지 냄새가 나서 고향의 정취를 느낀다고 했다. 손님들은 “논산시 노성면에 오면 딱히 갈만한 데가 없었는데 여기 카페가 있어 줘서 무척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해 왔다.

그가 거주하는 논산시 노성면은 노성산, 노성향교, 민박도 있고, 파평윤씨 학당으로 이름 높은 종학당 등이 자리해서 방문객이 이어지고, 방학이면 학생들이 많이 와 머무는 곳이다. 홍커피는 조그만 시골 면 소재지에 자리잡았지만 찾는 손님의 발길이 잦고 붐비는 시간대도 있다.

홍커피
홍커피

한옥카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홍커피를 모델로 보러오기도 한다. 그는 부부의 체력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욕심내지 않고 손님을 맞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카페를 지켜야 하니 그가 재료와 물품을 조달하는 아내의 심부름꾼이 돼야 한다.

“여보, 과일 재료 좀 사와야겠는데요?”

카페 일과 함께 중요한 그들의 임무는 또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손자 둘을 돌봐주는 일이다. 바쁜 며느리를 대신해 여섯 살, 일곱 살 된 연년생 손주를 어린이집에 통원시켜주고 돌본다. 자라는 모습이 한참 귀여운 시기의 손자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

이건용 대표 부부와 손자
이건용 대표 부부와 손자

34년 대민봉사… 위급한 상황 돕는 소방대원은 내 천직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군대를 다녀와 면장님 관용차를 운전했는데, 3년 정도 하고 나니 다른 일이 하고 싶어졌다. 어느 날 119 소방대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본 순간 ‘이 일이 정말로 내 일이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행사에 참여 중인 면장님을 기다리는 시간에 차 안에서 임용고시 준비를 했고 26살에 119 소방대원이 됐다. 천성적으로 제 욕심 차릴 줄 모르고 남을 먼저 챙기는 것을 좋아했다. 34년 공직생활 동안 이렇다 할 징계 한번 받은 적 없이 성심성의껏 충심으로 일했다. 소방대원은 불만 끄면 되는 줄 알았는데, 다양한 대민봉사 임무도 주어졌다. 사고자 이송, 벌집 제거, 시설물 안전점검 등등.

홍커피 이건용 대표
홍커피 이건용 대표

집안 사정상 결혼 초부터 그가 조부모를 모셔야 했다. 중풍을 앓던 할머니 수발을 위해, 집 가까운 논산의 ‘노성 소방지역대’를 자원했다. 점심시간에 집에 들러 할머니 대소변을 봐 드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 젊은 아내는 노인 병 시중하느라 세월을 인내의 시간으로 삭여냈다.

“나 아파죽겠다! 얼른 좀 와….”

소방지역대가 생긴 초창기라 응급한 일이 생기면 지역대에 연락할 줄 모르고, 동네 잘 아는 젊은이이던 그에게 연락했다. 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뛰어가기를 밥 먹듯 했다. 응급 환자를 이송하고, 구해내는 보람은 그 무엇과도 비교 안 되는 큰 보람이 남았다.

소방사, 소방교, 소방장, 소방위까지 차근차근 밟아 올라 소방경의 자리에서 정년퇴직을 맞았다.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아들도 아버지가 보람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대학을 졸업하더니 소방대원이 되고 싶다 해서 흔쾌히 수락했다.

홍커피
홍커피

주야로 돌아가는 근무, 밤낮없이 대기하는 궂은일의 연속이지만 그는 지난 직장생활에 대해 자긍심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소방가족입니다. 정말, 저는 다시 태어나도 대민 봉사하는 소방직을 할 것입니다. 가정에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기에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직장생활은 잘했다고 자부합니다.”

“카페는 3D업종, 차라리 소방대원으로 불 끄는 게 나았어요! 하하.”

“카페는 마냥 낭만적인 일인 줄 알았는데 그건 환상이었어요. 막상 해보니 3D업종이에요. 엄청 힘든 일이에요. 아침 9시에서 저녁 9시까지 홍커피를 운영하는데, 차라리 소방대원으로 불 끄는 게 더 쉬웠다 싶어요. 종일 서서 왔다 갔다 하니 발바닥이 화끈화끈합니다.”

이건용 대표 아내 홍혜지 씨
이건용 대표 아내 홍혜지 씨

소방대원 할 때는 의협심과 봉사정신으로 버티며 자긍심과 보람은 남았는데, 지금은 아내한테 잡혀서 꼼짝없이 업무 보조를 하고 있는 셈이라며 농담을 던진다. 물일을 많이 하지만, 번잡한 것이 싫어 장갑을 안 껴서 손바닥이 수세미가 됐다. 종일 종종거려야 해 다리도, 발바닥도 아프다. 식당처럼 브레이크 타임이 따로 없다 보니 식사 시간이 대중없다.

하지만 카페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칭찬하며 다시 찾아주는 손님이 많으니 고맙고 정겹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와 노인 병 수발에 젊은 시절을 보낸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다. 직장에 몰입하느라 제대로 잘 챙겨주지도 못했다. 지금이라도 아내가 힘들지 않게 열심히 돕고 싶다.

홍커피 이건용 대표
홍커피 이건용 대표

홍커피에 앉아 고요한 시간을 즐겨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내 조부모, 부모와 함께 있는 듯이 푸근한 기분이 들고 안정된다. 그을린 천장의 까만 서까래가 은근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카페에 듬성듬성 무심히 서 있는 늙은 기둥들은 ‘괜찮아, 괜찮아.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며 도시에 지친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거는 것 같다.

곱고 섬세한 여사장님과 은발의 배우 같은 ‘왕년의 대민봉사 왕’이 함께하는 한옥 카페. 그들은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그리움의 사랑방’을 연 것이 분명했다.

홍커피
홍커피

홍커피 |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로 5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