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출신 최초 與 반도체특위 위원장 활동 한 달

국회, 반도체 강화 법안 초당적 통과 부탁

관련 부처만 10곳 컨트롤타워 절실

대통령이 반도체 패권전쟁 중심에 서야

[웨이퍼(반도체 재료가 되는 원판)를 들고 반도체 산업 국가적 육성 및 지원 필요성을 설명하는국회 유일한 ‘반도체 전문가’인 반도체특위 위원장 양향자 의원(21대 광주 서구을 무소속)]

8월4일 'K-CHIPS ACT(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법)' 상정을 마지막으로 반도체특별위원회 활동 시즌1을 마무리한다. 특위 위원들과 자문위원들, 그리고 여러 관계자들의 헌신 덕에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법안까지 도출해낼 수 있었다.

이번 위원장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담이 큰 자리였기에 더욱 전력을 다해 달렸다. 야당 출신 인사에게 여당 특위의 위원장을 맡긴 건 파격을 넘어 헌정사 최초의 일이었다. 산업계 또한 초당적 협력을 통해 획기적인 반도체 산업 지원책이 나와 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컸다. 그만큼 우리 반도체 산업이 절박한 상황에서 출범한 특위였다.

특위는 어찌 보면 출발선에서 목표지점이 비교적 또렷이 보이는 단거리 달리기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하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매우 명확했다. '반도체는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죽고 사는 문제'라는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이 컸고, 또한 올해 초 통과된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아쉬움 내지는 반성이 우리 정치인들에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국회내 유일하게 민주당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 부위원장에 이어 국민의힘 반도체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양향자 의원]
 

정치가 언제까지 미래의 걸림돌 될 것인가

그렇지만 이번에도 정치가 문제였다.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반도체 산업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막상 정치적 유불리와 지자체·조직의 이해득실이 걸린 사안에서는 이러한 사실들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듯 거국적이지 않은 논쟁이 이어졌다. 반도체 인력 부족의 경우,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술인재 저변을 확대해야 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절대적 인력 부족 상황에서는 모든 대학의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가 필수다. 그러나 비수도권 의원 중 몇 명이나 총선을 의식하지 않고 이에 선뜻 동의할 수 있을까.

대만은 지난해부터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의 입시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대학에 1년에 두 차례나 신입생을 뽑는 특혜를 주고 있다. 미국은 이공계 해외 유학생과 전문가들이 자국에 더 오래 쉽게 머무를 수 있도록 비자 정책을 완화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정원 증원 하나 해결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인력 가뭄으로 반도체 연구소와 공장이 멈출 수도 있다. 국회의원들부터 반도체 산업의 중요함을 인식한다면 지역구를 초월해 거국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다음 '내 선거'보다는 국가의 안위를 더 높은 목표 레벨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14년째 제자리걸음에 멈춰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지자체 간 갈등에 미래 산업이 발목 잡힌 대표적 예다. 관로 설치로 인한 농업용수 고갈과 개발 제한 등의 불이익을 우려하는 여주시와 클러스터가 들어설 용인시 간 대립으로 아직 첫 삽도 못 뜨고 있다. 길고 지난한 협의 끝에 접점을 찾은 것처럼 보였으나, 지난 6월 선거로 바뀐 여주시장이 협의 내용을 백지화하면서 착공은 또다시 무기한 미뤄지고 말았다. 과거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을 건설할 때도 이른바 '송전탑 갈등'으로 착공이 5년 이상 지연된 적이 있다. 반도체 경쟁은 속도가 생명이다. 지자체 간 갈등으로 5년, 10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을 보면 나는 애가 타고 피가 마르는 듯하다.

산업계 당사자는 오죽할까. 당장 하루가 급한 기업이 두 지자체 사이의 접점을 찾아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보지만, 중앙정부는 그저 뒷짐 지고 남 일처럼 구경하는 모양새다. 얼마 전 특위 회의에 정부까지 참여시켜 '당정협의회'를 개최했는데, 핵심 관계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장관이 현장에 가본 적도 없다고 대답해 듣는 위원들이 절망스러워하기도 했다. 정부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기업에 맘껏 투자하라고 하면서, 나머지 부담과 짐들까지 모두 기업에 떠맡기고 있다. 부처 간 칸막이 없는 정책 추진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거시적인 국가 산업 전략을 위해 부처 간 협업하기보다는 저마다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한 각자도생의 계획만 난무하는 형국이다.

진흙 속에서도 꽃을 피워야 한다

여야 내부 사정은 더 복잡하다. 알력 다툼에 눈이 가려져 그야말로 '무엇이 중한지' 잊은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산업계가 느끼는 절박성을 과연 정치는 함께 느끼고 있는지, 현실을 알고자 하는 의지는 있는 것인지, 국회의원인 필자는 답할 자신이 없다. K-CHIPS 법안 상정으로 반도체특위는 1차 미션을 완수했다. 굳이 '1차'인 이유는, 반도체 패권국으로 가는 여정은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더 담대하고 빠르게 임해야 한다.

이번 특위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더욱 명확해졌다. 우선 금번 여당 특위에 그치지 않고 정당을 초월한 국회 차원의 상설 반도체특위 설치가 필요하다. 국회 차원이 되어야만 정파 다툼과 같은 특정 정당의 내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입법 논의가 가능해진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반도체 경쟁 지형하에서 전지전능한 단 하나의 지원법은 있을 수 없다. 산업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실시간으로 논의하고 입안하는 시스템을 통해 반도체 강화법 시즌2, 시즌3가 꾸준히 나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범부처 컨트롤타워도 절실하다.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정부 부처가 10개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부처별 입장과 해법이 다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예산 낭비와 정책 집행의 비효율이 곧 반도체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짐은 말할 것도 없다. 각 부처 사업들이 중복되다 보니 '눈먼 돈 따먹기'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리기도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 반도체 로드맵을 수립하고 그 로드맵 아래서 세제, 인재 양성, 규제 혁신 등의 정책을 총괄 집행하면 국정운영의 효율성이 대폭 향상됨은 물론, 부처 이기주의가 반도체 경쟁력을 가로막을 위험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 패권전쟁에 대응할 하나의 사령탑이 필요한 이유다. 대통령이 그 중심에 서야 한다.

[초당적으로  K-CHIPS 법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에 힘을 모아주실 것을 촉구하는 양향자 반도체특위 위원장]

우리는 국가의 명운이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있다. 정부와 국회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기업에만 모두 떠맡기는 구태와 과오를 반복할 수는 없다. , 대한민국의 새판을 짠다는 사명감으로 반도체 강화법을 바라봐주기를 동료 의원들과 정부 부처에 호소드린다. 당장 K-CHIPS 법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에 힘을 모아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 이 법안 너머의 희망을 함께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특위의 탄생은 그 자체로 여야 협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러한 협치 모델은 반도체를 넘어 제2, 제3의 첨단산업이 바르고 빠르게 구축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아울러 미래 산업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구조 대변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변혁해 나가는 힘은 국민에게 있다. 정치인들이 미래만 바라보고 일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들이 관심과 채찍을 가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한편 이전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자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키고 빠르게 공식 출범을 하는등 코로나19사태 만큼은 빠르게 대처했다

그간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었던 질병관리본부를 독립된 조직인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키고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를 직접 찾아 정 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질병관리청을 감염병 대응의 '콘트롤타워' 역할로 삼아 대통령이 직접 대처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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