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친구’가 되자면

친구와 마시는 술에는 진심이 담겨야 한다
친구와 마시는 술에는 진심이 담겨야 한다

= “파란 하늘 맴도는 비둘기 날개처럼 우리들의 마음은 하늘을 날아가요 / 서로 다 같이 웃으면서 밝은 내일의 꿈을 키우며 살아요 / 오~ 영원한 친구 오~ 행복한 마음 오~ 즐거운 인생 예 ~ / 오~ 영원한 친구 오 행복한 마음~ 오~ 즐거운 인생 예~” =

가수 나미가 1986년에 발표하면서 단숨에 히트곡으로 끌어올린 [영원한 친구]라는 노래다. 영원(永遠)하다는 것은 어떤 현상이나 형편, 모양 따위가 끝없이 이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또는 시간을 초월하여도 변하지 아니하는 상태까지 말한다.

그러나 세상엔 과연 그렇게 영원한 게 있을까. 입추를 지나면서 가을이 더욱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을 가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처럼 계절과 인생조차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다.

하물며 친구라고 한다면 여기에 응당 ‘영원하다’는 수식어의 동원은 사실은 불편한 현실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100%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이 같은 주장은 경험으로도 쉬이 체득한 ‘팩트’다.

한때는 절친했던 친구가 인근의 S시로 이사 간 경우가 적지 않다. 한데 그들은 하나같이 그로부터 영원한 친구가 아니라 도리어 ‘영원한 안녕’이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점점 사이가 멀어짐을 이르는 말인 거자일소(去者日疎)가 어쩜 그렇게 딱 맞는지 정말로 기가 막혔다. 이제는 전화조차 오지 않는 현실에서 ‘과연 영원한 친구라는 함의(含意)는 어디까지가 유효기간일까?’라는 생각에 마음마저 불편할 때가 있다.

이 풍진 세상을 60년 이상 살다보니 각양각색(各樣各色),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사람을 두루 만났다. 개중(個中)에는 관계가 더욱 진전되어 친구로 발전하는 경우도 다발했다.

사람 마음이 넓은 때는 바다도 부족하지만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안 들어간다
사람 마음이 넓은 때는 바다도 부족하지만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안 들어간다

그렇다면 당연한 상식이겠지만 친구는 ‘영원’(永遠)과 결부되어야 한다. 하지만 종종 표리부동(表裏不同)으로 악화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속으로 가지는 생각이 다르니, 물과 기름처럼 겉돌 수밖에.

요컨대 나한테 어떤 일이 잘되면 겉으론 칭찬하면서 막상 뒤돌아서서는 뒷담화로 흉을 보는 경우이다. 전형적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소인배라는 지적이다. 표리부동과 같은 맥락인 면종복배(面從腹背)와 같다.

이러한 현상은 일상 주변의 특정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나의 면전에서는 칭찬하고도 다른 곳에서는 험담을 하는 경우이다. 이럴 때 감각의 레이더에 포착되는 불쾌감은 금강 물을 다 동원해도 씻어내기 힘들다.

오래전, 딸이 명문대에 합격하여 직원들에게 한턱냈다. 참석자 모두 칭찬하면서 밥과 술로 배가 보문산보다 커졌다. 이튿날 출근하자 지사장님께서 봉투를 주셨다. “덕분에 어제 참 잘 먹었네. 그리고 정말 축하하네!”

진심까지 담긴 그 봉투에는 전날 내가 지출한 음식값보다 더 많은 액수가 담겨있었다. ‘친구’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3년 가까이 볼 수 없었던 막역한 친구들을 곧 만난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아예 배제되는 친구가 있었다.

굳이 지적하자면 표리부동과 동이불화, 면종복배를 아우르는 소위 ‘표동면 3종 세트’ 친구라고나 할까. 물론 주인공(?)인 그 친구는 이처럼 자신만을 왕따시키는 현실을 알 수 없다.

결론적으로 ‘표동면 3종 세트’의 핵심은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말(言)이다. 말은 세상에 뿌리는 씨앗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지만,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영원한 친구’가 되자면 말조심부터 하고 볼 일이다.

고착된 편견은 바위보다 무겁다
고착된 편견은 바위보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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